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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계의 재택근무 실험] 저출산 극복-생산성 제고 일석이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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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아키오 도요타 사장

일본 재계가 연일 심상찮다. 브렉시트(Brexit)에 따른 엔고(円高) 얘기가 아니다. 최근 일본 열도를 뜨겁게 달구는 재택근무 실험 얘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자동차가 오는 8월부터 직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본격 도입한다고 지난 6월 보도했다. 도요타 본사 직원(7만 2000명, 올 3월 기준)의 3분의 1이 재택근무를 신청할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인사·경리·영업 관련 사무직과 개발 등을 도맡는 기술직으로 입사 5년차 이상이다. 예컨대 컴퓨터를 활용하는 사무직은 8월부터는 집에서 종일 일하되 주 1회 2시간씩 출근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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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타, 본사 직원 2만5000명 실험
비록 공장에서 근무하는 기능직은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일본의 제조 기업으로선 파격적인 규모의 실험이다. 더구나 도요타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1015만대의 차를 판매하며 4년째 세계 1위 자리를 지킨 자동차 메이커로, 일본 재계의 맏형이다. 이런 대기업의 결정은 다른 기업들에도 연쇄적으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도요타 경영진은 임직원 근무시간 관리 시스템을 보완·수정하는 데 한창이다. 향후 도요타 직원들은 업무 시간·장소에 구애되는 대신, 재택근무로 업무의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이 같은 재택근무 실험은 일본 재계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산업계에선 지난해 미쓰비시상사가 육아 중인 여성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보장했고, 기업들의 인재 채용을 중개하는 리쿠르트홀딩스도 전 직원의 재택근무일 상한선을 없애는 파격을 보였다. 올 들어서는 미쓰이물산이 6월에 일본 내 근무 직원 3700명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제를 도입했다. 소비재 제조 기업인 유니레버재팬은 7월부터 직원 약 400명이 직접 근무 장소를 정하도록 했다. 이들은 평일 오전 6시~오후 9시 사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다. 사실상 재택근무제다. 회사 관계자는 “다양성 확보는 우리의 경영 전략 중 하나”라며 “모든 직원이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도 동참했다. 일본 3대 메가뱅크 중 하나로, 자산운용 규모로는 1위인 미쓰비시도쿄UFJ은행이 7월 들어 재택근무제를 시행했다. 본부 내 기획부문 사원 등 4000명이 우선 대상이며 추후 총 3만 명의 정직원이 대상이다. 통상 은행은 소비자의 신용 정보를 다룬다는 측면에서 재택근무제 도입이 어려운 곳으로 여겨졌지만, 이 은행은 이런 선입견을 깼다. 다만 재택근무에 따른 소비자 신용 정보의 누설 등 위험 요소를 없애기 위해, 철저한 보안 대책을 강구한 전용 단말기를 재택근무자들에게 지급했다.

일본 금융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이 은행의 재택근무 실험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다른 은행들도 속속 실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1940년대에 태어난 일본 베이비붐 세대의 최근 대규모 정년퇴직에 일본 은행들은 ‘적은 수의 직원들이 더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케 하는 묘책’을 모색 중이다. 미쓰비시 도쿄UFJ은행은 재택근무제를 그 묘책 중의 하나로 봤다. 올 초 일본은행(BoJ)이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하면서 금융권 전반의 수익성이 악화된 것도 한 요인이다. 인건비 절감에도 생산성은 유지하려면 업무의 효율화가 필수다.

일본 재계의 잇단 재택근무 실험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장려에서 비롯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6월 각의(국무회의)에서 자국 내 재택근무 도입 기업의 비율을 2020년까지 34.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의결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2010년 전체 취업 인구 20%의 재택근무제 활용을 목표로 ‘e-재팬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정부부터 솔선수범하려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초 스마트폰 등의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모든 공무원이 ‘텔레워크(telework)’를 하도록 추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일본 공무원들은 2020년까지 전체 업무의 약 10%를 재택근무 등 텔레워크로 수행하게 된다.
한국도 재택근무제 도입 늘려야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저출산 문제가 일본의 재택근무 실험을 이끌어냈다. 일본은 세계적인 고령화 국가인데다, 저성장이 고착화한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출산율 저하로 노동 가능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출산을 장려하면서 재계에도 여성 인력의 채용을 독려하고 나섰지만 한동안 성과는 미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조성해 눈앞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고, 남성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면서, 더 많은 출산을 유도해 장래를 도모하고자 재계와 손잡고 재택근무제란 칼을 빼든 것이다.

기업들도 더 많은 여성 인력을 활용하려면 재택근무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실제 도요타는 재택근무제의 본격 도입 효과로 2020년 무렵엔 여성 임원이 2014년의 세 배인 3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일본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중은 전체 임원의 11% 수준으로 경쟁 상대인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20~30%대)에 비해 낮다.

노동 생산성의 저하 문제와도 맞닿는 얘기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일본의 잠재성장률 대비 노동 기여도는 1991년 이후 마이너스(-0.3~-0.2%)로 돌아선 채 20년 넘게 반등의 기미가 없다. 이와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전체 근로자 대비 주 50시간 이상 근로자 비중은 22%로 OECD 회원국 중 1위였다. 저출산 자체가 생산성 저하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근로자들의 장시간 근무가 그만큼 비생산적이었단 의미다. 결국 일본 정부와 재계는 재택근무제 확산을 저출산 극복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히든카드로 꺼내들었다.

일본의 재택근무 실험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안긴다. 한국은 ‘저성장 늪’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만큼 경기가 침체됐다. 효율도 안 좋다. 전체 근로자 대비 주 50시간 이상 근로자 비중이 19%로 일본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런가 하면 지난 15년 동안 합계 출산율이 평균 1.3명을 밑돌만큼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사회 각계에서 “한국에도 재택근무 실험을 허(許)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재택근무제 도입률은 3.0%로 일본(11.5%)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런 일본도 2000년 당시엔 도입률이 2.0%에 불과했다. 오늘날 한국은 16년 전 일본과 도입률 차이가 거의 안 날 만큼 일본에 뒤처졌다. 김인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한국은 일본처럼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겪으면서 고전하고 있다”며 “재택근무제 확산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 하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역할론을 강조한다. 일본처럼 정부 차원에서 재계의 재택근무제 도입을 독려하고 나서야만 일본 못지않게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진 한국 재계가 변한다는 얘기다. 한국 기업들도 재택근무제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대한상의의 최근 조사에서 기업들의 92.8%는 ‘재택근무제 등의 유연 근무제 도입이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고 답변했다. 김 팀장은 “정부가 재택근무제를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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