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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수의학과 인간 의학의 운명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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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 산다. 벌써 7년째다. 그런데 얘들 꽤 웃긴다.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사람처럼 기뻐하고 사람처럼 슬퍼한다. 때때로 분노하고 종종 낙담하기도 한다. 게다가 감기부터 위장병까지 사람 걸리는 병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걸린다. 특히 나이 들어 운동 부족 때문에 생기는 성인병도 예외가 없다.

언젠가 강아지들 예방접종 때문에 세 녀석을 데리고 집 근처 단골 동물병원에 들렀다. 그날따라 한가하길래 평소 강아지들 건강과 생활습관에 대해 의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일어설 때가 되어 병원문을 나서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의사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요, 제가 요즘 계속 더부룩하고 가끔 신물도 넘어 오는데 왜 그런 걸까요?” 퓨슉~. 퓨즈가 나간 듯이 순간 정적이 왔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것처럼 보인) 의사가 씩 웃었다. 필자도 예의상 씩 웃기는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분이 영 묘했다. “명색이 의사인데 아는 대로 한마디 해주면 안되는 건가? 강아지와 사람을 차별하는 것도 유분수지, 원.”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지 않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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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병원 이리온의 수의사들이 강아지 수술을 하고 있다.

UCLA 의과대학 교수인 바바라 내터슨-호로위츠(Barbara Natterson-Horowitz)는 동물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다. 본래 그녀는 심장병 전문의인데 인간뿐 아니라 고릴라, 사자, 왈라비(캥거루과 동물)도 치료한다. LA 동물원에 출장 진료를 가기도 하고, UCLA 의료센터에서 수의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인간을 치료하기도 한다. 그녀는 어떻게 하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인간 외 다른 동물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개선될 수 있는지, 혹은 그 반대 방향의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이런 게 진짜 통섭(consilience)이고 융합(convergence)이다.

그녀가 동물과 인간 의학의 경계를 뛰어넘게 된 것은 어느 날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이라고 한다. LA 동물원 수의사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는데, 나이 든 침팬지 암컷의 얼굴 한쪽이 일그러졌는데 혹시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알아봐 줄 수 있느냐는 거였다 (네터슨-호로위츠 교수의 주특기가 심장사진 판독이다). 그녀는 즉시 동물원으로 달려가 진단을 했고, 결국 이 침팬지의 심장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해 줬다. 그 후로 그녀는 고릴라의 대동맥 상태를 점검하고, 앵무새의 심장에 혈류 장애가 있는지를 체크했으며, 바다표범들의 심장이 부어 있는지를 확인하게 됐다. 수의사들과 협업으로 사자의 심장 수술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인간) 의사들과 수의사들은 본질적으로 같은 질병과 장애를 다룬다. 상대하는 환자에 꼬리가 있느냐 없느냐가 차이라면 차이랄까. 출혈성 심부전, 뇌 종양, 백혈병, 당뇨, 관절염, 루게릭병, 유방암, 심지어 우울증이나 불안, 강박, 식이장애와 같은 정신병적인 증상도 마찬가지다. 모든 의사들은 동물과 사람 간의 생물학적인 연관성을 인정한다. 사람이 복용하거나 처방받는 모든 약물은 사실 동물들에게 먼저 시험된 것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인간) 의학과 수의학 간에 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문제다. 아마 그 기저에는 모든 동물들 중에서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가 더 독특하고 특별하다는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TED 무대에서 그녀는 인간 의학이 수의학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제적인 사례를 몇 가지 제시한다.

①1900년대 말 무렵, 인간 심장 전문가들은 정서적인 충격에서 유발되는 심부전에 대해 ‘발견’하게 된다. 평생 모은 돈을 도박으로 몽땅 날리거나 결혼식 날 바람맞게 된다면 누구나 심장 박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판명된 바로는 이 ‘새로운’ 증상은 전혀 새로운 것도 아니었고 인간에게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수의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심부전에 대해 1970년대부터 원숭이·앵무새·사슴·토끼에 이르기까지 진단, 치료, 심지어 예방까지 해오고 있었다. 만약 이러한 수의학적 지식이 (인간) 의사들에게 일찍 알려졌다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②무슨 이유에서인지 일부 인간 환자들은 자해를 한다. 머리카락을 뽑기도 하고, 자신의 신체 부분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인간 환자만의 증상은 아니다. 동물들도 자해를 한다. 자신의 깃털을 뽑는 새들도 있고, 피가 날 때까지 옆구리를 물어 뜯는 말들도 있다. 하지만 수의학자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효과적으로 자해 증상을 치료하고 심지어는 예방하는 방법까지 알고 있다. 정신과 의사, 심리치료사들이 배워야 할 귀중한 지식임이 분명하다.

③출산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부 여성은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고 심지어 정신이상이 되기도 한다. 갓 태어난 아기를 등한시하고, 극단적인 경우 해를 입힐 수도 있다. 하지만 수의사들은 가끔씩 암말이 출산을 하고 난 후 새끼 말에게 젖을 물리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뒷발로 차서 죽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치료방법도 찾아냈다. 암말의 몸 안에서 옥시토신을 증가시키면 엄마 말이 새끼 말에 대해 새로운 흥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산부인과와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배워야 할 부분이다.

통섭과 융합은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네터슨-호로위츠 교수는 사실 의대보다 수의대가 더 대단하다고 인정한다. 의대에 가면 호모사피엔스 한 가지 종에 대해서만 배우지만 수의대에 가면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어류 그리고 조류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수의사들의 농담 한가지. 한가지 종만 치료할 수 있는 수의사(veterinarians)를 뭐라고 부를까? 답은 인간 의사(physicians)란다.

네터슨-호로위츠 교수는 지금도 UCLA의료센터와 LA 동물원을 오가면서 인간 의학과 수의학 간에 상호 교류와 발전을 실천하고 있다. 2012년 출판한 [동물과 인간 건강의 놀라운 연관성(Zoobiquity)]에서는 통합의학(One Health)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녀는 다윈온라운드(Darwin on Rounds) 프로그램을 통해 UCLA의료센터의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동물 전문가와 진화 생물 학자와 함께 일하게 하고 있다. 또 의대와 수의대가 함께 동물과 인간 환자들이 공유하는 질병과 장애들에 대해 토론하고 협업하도록 하기 위해 주비퀴티(Zoobiquity)라는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장애 연구
살기가 점점 외롭고 각박해져서일까. 아니면 이제 먹고 살만해져서일까. 국내에도 반려동물이 700만 마리에 달한다고 한다. 국민 7명당 1명꼴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셈이다. 반려(伴侶)동물은 말 그대로 더불어 살아가는 가족이다. 더 이상 장난감, 즉 애완(愛玩) 도구가 아니며, 돈벌이 수단도 아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해 많이 알려졌지만 현재 국내에서 동물 학대와 유기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수의학을 통해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도움을 받기 전에 동물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마음부터 갖춰야 하지 싶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다 같은 생명이다. 동물학대와 인간학대는 한끝 차이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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