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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종의 기원' 정유정 작가 인터뷰

[beyond M] 인간 내면의 어두운 숲을 파고드는 탐험가
소설 『종의 기원』 정유정 작가
악(惡)을 이해하기 위해 악이 됐다. 소설가 정유정(50)이 지난 5월 출간한 신간 『종의 기원』(은행나무)을 쓰며 시도한 것이다. 자신의 방 안에서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깨어난 유진. 아래층에는 무참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시신이 있다. 소설은 평범하게 살아왔던 한 청년의 삶이 박살 난 그날 아침으로부터 3일간의 이야기를 좇는다.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악은 인간 내면에서 어떻게 발화하는가. 정유정은 유진의 시선으로 집요하게 답을 찾아간다. 『7년의 밤』(은행나무)에서는 세령호 주변과 호수 밑에 수장된 ‘아틀란티스’로, 『28』(은행나무)에서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화마(火魔)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도시 화양의 한가운데로 안내했던 정유정. 그가 이번에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세계는 사이코패스 한유진의 머릿속과 심장이다. 그가 꾸준히 악이라는 소재에 천착하는 건 왜일까. 우리가 한 명의 인간이 온전한 악으로 재탄생하는 과정과 그 내면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유정 작가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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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기 자신을
자기 안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종의 기원』

 -등단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비룡소)의 정아 아버지부터 전작 『28』의 박동해까지 작품마다 악인을 형상화했다. 이번에는 객체가 아닌 주체의 시선으로 악을 탐구했는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죽음, 스티븐 킹은 인간 내면의 공포, 레이먼드 챈들러는 대도시 풍경 이면의 폭력성을 이야기한다. 작가로서 나의 테마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 안에는 밝은 들판과 어두운 숲이 공존하는데, 내 관심사는 후자다. 문학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라면 밝은 들판만 들여다봐선 안 된다. 시기·질투·혐오 같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가 뛰노는 숲도 들여다봐야 한다. 그 어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부자의 시선을 버리고 내가 악 그 자체가 되어야만 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숲에 비유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자체 완성형의 생태계이기 때문이다. 숲은 서로 먹고 먹히며 진화가 이뤄지는 공간이다. 악은 앞서 말한 어두운 감정들을 비옥한 토대로 삼고 스스로 진화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완성한 소설을 통째로 두 번 갈아엎었다고 들었다.
“아들이 있는 일본 오사카에서 초고를 썼다. 돌아와서 보니 엉망이더라.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겠다던 의도가 무색했다. 경남 남해 창선에 다섯 달 동안 머물며 다시 썼다. 복잡한 설정을 다 걷어 냈더니 이번에는 논조가 너무 시니컬했다. 내가 곧 유진이 돼야 하는데, ‘정유정’이 지닌 도덕적 사고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유진이 엄마를 살해한 과정을 재연해 보는 장면 하나를 가지고도 자꾸만 자기 검열했다. 그걸 깨는 과정이 힘겨웠다. 유진이 이모를 죽이면서 마침내 독자를 향해 정면으로 돌아서는 구조를 짰다.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작가 스스로 도덕성을 버리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뜻인가.
“맞다. 그래서 ‘도덕이라는 것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다’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온전히 유진의 관점에서 생각한 자기 합리화다. 이 소설은 한유진이 세상에 펼치는 자기 변론이 돼야 했다. 어머니가 ‘유진아’라고 부르는 환청을 유진이 계속 듣는다는 설정 역시, 이 소설은 ‘한유진’이라는 인물 자체라는 걸 독자의 머릿속에 새겨 넣기 위해 만들었다.”

-전작들과 다르게 이번 작품에선 공간 이동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집 안에서 펼쳐지는데.
“매번 그렇듯 이번에도 글을 쓰면서 지도를 많이 그렸다. 소설의 배경인 군도 신도시 지리와 집 안의 동선을 전부 익히기 위해서였다. 공간에 제약을 둔 건 온전히 유진의 내면에 집중하기 위한 의도적 장치였다. 유진이 읽는 엄마의 일기 역시 처음보다 300매 이상 줄였다. 엄마의 입장을 너무 자세히 그리면, 최대한 아들을 무해한 존재로 키우고자 했던 엄마의 절절한 마음이 유진의 마음보다 더 쉽게 독자들에게 가닿을 것 같더라. 살인 방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독자를 설득하긴 쉽겠지만, 그 자체로 자극적이라 유진의 심리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전작에 비해 문체가 부드럽게 느껴지는 건 뜻밖이었다.
“『7년의 밤』에서는 단호한 칼날 같은 글을, 『28』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문장을 쓰고 싶었다. 이번에는 비유도 많고 아포리즘(Aphorism, 체험적 진리를 금언·격언·경구·잠언 등으로 압축한 것)도 많다. 머리가 비상한 사이코패스의 독백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소양이 엿보여야 했다. 유진이 말도 조곤조곤 예쁘게 하고, 외모도 예쁘장한 남자였으면 했다. 그런 남자가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데서 오는 대비 효과를 노린 것이다.”

-범죄심리학 프로파일러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정남규(※편집자주:서울 서남부에서 실제로 발생한 연쇄 살인범의 주범. 2004년 1월부터 2006년 4월까지 무고한 사람 열네 명을 죽였다)의 이야기가 가장 놀라웠다. 그는 감옥에서 목을 매 죽었는데, 죄책감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궁극의 살인을 완성한 것이다. 살인마 유영철은 사람을 죽이러 가기 전 기분을 고취시키기 위해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Conquest of Paradise)’이라는 곡을 들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유진이 집 밖에 나가기 전 이 음악을 듣는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사이코패스가 사람을 사물화해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유진이 살해 대상을 ‘오뎅, 장작개비, 진주 귀걸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7년의 밤』 

-1년간 바다를 떠돈 유진이 돌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그 때문인지 벌써 속편을 기대하는 팬도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냉각기’를 표현한 것이다. 사이코패스는 살인과 그 다음 살인 사이에 반드시 냉각기를 가진다고 하더라. 마지막 장면은 냉각기를 끝낸 유진이 드디어 온전한 사이코패스로서 세상에 출연한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이게 끝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난 사이코패스의 활약에는 관심없다. 그건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이 많을 거다(웃음). 나의 관심사는 단 하나였다. 인간의 내면에서 악은 어떻게 발화하고 탄생하는가. 그래서 ‘종의 기원’이라는 제목도 금세 떠올렸다. 다른 대안은 없었다.”

-악인에게 나름의 당위성을 부여해 주는 이유는 뭔가. 유진은 ‘내 인생을 깔고 앉았던 두 여자’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엄마와 이모에게 억눌린 삶을 살았고, 『28』의 박동해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한 인물을 소설 속으로 데려오면, 자동으로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따라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왜’가 충족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만족하지 않는 게 인간의 사고방식이다. 물론 현실에는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이 너무 많다. 하지만 소설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캐릭터의 개연성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기도 하다. 그렇게 끌고 가야만 마지막에 이르러 작가의 메시지를 들려줄 수 있다.”

-『7년의 밤』을 탈고하던 날, 책상에 엎드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할 수 있기를’이라 간절히 바랐다던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이번 소설의 집필을 마치고 나선 어떤 생각을 했나.
“‘인간에게 도덕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살아가기 위한 약속 외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 또한 내 소설 속 인물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압도적인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운명의 폭력성’이라 부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주저앉아야 할까? 언뜻 보면 절망적이고 어두운 이야기이지만, 난 항상 내 작품 안에서 운명의 폭력성에 맞서 싸우는 인간 의지와 존엄성을 그려 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설은, 한유진의 입장에서 보면 해피 엔딩이다(웃음).”

-악에 대한 탐구는 갈증이 풀렸나.
“그렇다. 이걸로 다했다고 볼 순 없겠지만, 악인이 주인공인 이야기는 이제 없을 것 같다.”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본성이었다.
생명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성. 그것이 삶이 가진 폭력성이자
슬픔이었다. 자신을, 타인을,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고 연민하는 건
그 서글픈 본성 때문일지도 몰랐다.
서로 보듬으면 덜 쓸쓸할 것 같아서. 보듬고 있는 동안만큼은
너를 버리지도 해치지도 않으리란 자기 기만이 가능하니까."
-『28』

-『28』을 쓴 뒤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다녀왔고, 에세이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은행나무)을 펴냈다. 안나푸르나는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의 주인공 승민이 간절히 꿈꾸던 곳인데.
“가장 아끼는 소설이다. 내 청춘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이다. 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근무하던 나의 20대는 내내 어둡고 차가운 물을 잘박잘박 헤치고 가는 기분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이 시기를 지나면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땅에 도착할 거라는 희망 하나로 악착같이 버텼다. 소설 속 승민이 자유를 꿈꾸며 안나푸르나를 상상하는 건 나의 소망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곳에 가서 나의 청춘에 대한 회한을 떨쳤고, 위로받았다.”

-그토록 아꼈던 작품이기에,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얻지 못하고 막을 내린 영화 ‘내 심장을 쏴라’(2015, 문제용 감독)가 아쉬울 것 같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작진이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해서 이미 한 번 마음을 접었던 터다. 그래도 나름 신인 감독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 하나만 하겠다는 뚝심이 있더라. 소설 중 제일 먼저 영화화된 작품이었기에 애틋한 마음이 크다.”

-‘7년의 밤’(추창민 감독)을 비롯한 다른 작품도 개봉 혹은 영화 제작을 앞두고 있다.
“류승룡과 장동건이 ‘인생 연기’를 보여 줬다고 해서 기대가 크다. 특히 오영제(장동건)가 어떻게 표현됐을지 기대된다. 사실 『종의 기원』은 출간 전부터 몇 군데에서 영화화 제의가 있었다. 7월 말까지는 판권을 넘길 회사를 결정하려 한다.”

-어떤 작품을 쓰든 인간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종의 기원』을 악의 활약기가 아닌 탄생기로 그린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망하는 순간도 많을 텐데,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존재에 애정을 가지는 이유는.
“미련을 못 버리겠다. 자아를 들여다보고 자기 자신을 바꿀 능력을 갖춘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다.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도 문학이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본다. ‘여기 한 번 보세요, 이거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게 문학의 기능 아닐까.”

-사람들이 문학에 기대하는 것 중에는 사회적 공분의 해소도 있을 터다. 가깝게는 세월호 사건이 있을 테고. 사회적 이슈에서 받는 영향은 얼마나 큰가.
“분명히 크다. 다루고 싶다. 하지만 날것 그대로 다루면 다큐멘터리가 돼 버린다. 완전한 은유를 위한 가공이 필요하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다음 소설은 재난 스릴러가 될 것이다. 내가 쓰는 최초의 판타지인데, 특정 사회적 이슈를 연상케 하는 글이 될 것 같다.”

-최근 가장 가슴을 뛰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다음 소설의 주인공이 될 두 남자를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이 뛴다. 물론 글을 쓸 때마다 항상 처음 쓰는 것처럼 막막하고, 기술이 조금도 늘지 않아서 너무나 두렵다. 하지만 독자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을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가슴이 뛴다(웃음).”
<정유정의 영화 한 컷>
정유정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영화 중 한 편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유혹의 선’(1990, 조엘 슈마허 감독)이다. 의과대학 학생들이 사후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비밀스런 실험을 감행한다는 내용이다. 정유정은 “대학 시절에 본 이 영화와, 간호사로 오래 근무했던 경험 등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죽음에 대한 사유 자체를 글로 풀어보고 싶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잘못 다루면 그저 주술적인 말들로 채울 것 같아 조심스럽다. 지금까지는 소설 안에 짤막하게 죽음에 대한 태도를 다루는 것으로만족했다. 『28』에서 간호사 노수진이 ‘죽은 자는 산 자의 밥상 뒤에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 건 내 생각이기도 하다. 『종의 기원』에서는 유진이 죽은 엄마를 바라보며 ‘그렇게 박식하고 모든 걸 알았던 엄마가 결국 담요에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가 됐음을 생각한다. 지금보다 내공이 쌓이면, 언젠가는 죽음에 대한 철학을 담은 글을 쓰고 싶다.”

beyond M magazine M의 문화 가로지르기 프로젝트. 웹툰·TV·문학·음악·연극 등 다양한 분야의 ‘핫한’ 인물을 만나고 새 흐름을 탐구합니다. 문화로 통하고 연결되고 풍성해지는 M 너머의 이야기.

[글 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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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중앙일보 입사 이래 북한 문제와 양자 외교 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현안을 오래 다뤘다. 편집국 외교안보부장ㆍ국제부장과 논설위원ㆍ도쿄총국장을 거쳤고 하버드대 국제문제연구소(WCFIA) 펠로우를 지냈다. 부소장 겸 논설위원으로 외교안보 이슈를 추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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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