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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감정가 의견보다 객관적인 것은 ‘미술품 소장 이력’

위작 논란이 이는 이우환 화백의 ‘점으로부터 No.780217’(왼쪽)과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미술계가 미술품 위작 시비로 어수선하다. 파리에서 날아온 이우환 화백은 지난달 27일과 29일 두 차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13점의 압수 작품을 직접 감정한 후 “전부 내 작품”이라고 선언해 위작 주장을 한 경찰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에서 “13점의 그림은 저만의 호흡, 리듬과 색채로 그린 작품으로서 틀림없는 저의 그림들”이라며 “호흡과 리듬은 지문과 같다. 이것은 베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 수사관이 내 변호사와 다른 수사관들을 내보낸 뒤 (일종의 타협안으로) 내게 ‘13점 중 4점은 가짜라고 하고 다른 건 진짜로 하자’며 회유를 시도했다”고 주장해 회유 시도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나서 양측의 대립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천경자 이어 이우환 작품도 … 위작 시비 해법은

검찰은 또 천경자(1924~2015) 화백의 ‘미인도’를 둘러싼 위작 시비를 가리기 위해 서울시립미술관의 천 화백 1주기 추모전에 내걸린 작품 5점을 지난달 26일 저녁에 압수해 갔다. 그 와중에 ‘미인도’에 이어 천 화백의 ‘기행스케치-화문집’도 위작이라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이 작품을 지난달 29일 여름경매에 내놓으려던 서울옥션은 출품을 취소했다.



김환기 추상화 역대 최고가 54억원에 경매상반된 풍경도 벌어졌다. 김환기(1913~64) 화백의 작품이 한국 미술 사상 최고 경매가에 팔린 것이다. 김 화백의 추상화 ‘무제 27-VII-72 #228’이 지난달 28일 K옥션 여름경매에서 54억원에 낙찰되면서 경매 사상 가장 비싼 한국 그림으로 등극했다. 이로써 김 화백의 그림은 지난 9개월 동안 세 번에 걸쳐 한국 미술 경매 최고가를 경신하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역대 경매 1위부터 4위가 모두 김 화백의 작품으로 1970년대 뉴욕에서 창작한, 무수히 많은 점으로 이뤄진 거대한 추상화(전면 점화)다.



위작 논란이라는 미술시장의 악재 속에서도 김환기 작품이 홍콩도 아닌 서울에서 신(新)고가를 기록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김환기라는 블루칩의 힘뿐만 아니라 위작 논란의 반작용이 투영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몇 년간 미술시장은 김환기와 이우환의 쌍두마차가 이끌어왔다. 그런데 이우환 작품이 논란에 휩싸였으니 큰손 컬렉터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김환기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환기는 국내 작가 중 비교적 작품 관리가 잘된 작가로 손꼽힌다”고 설명했다.



작가 자신의 의견은 진위 판정에 절대적인가쟁점은 천경자·이우환 작품의 위작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될 것인가, 또 작가가 직접 자신의 작품을 감정하는 풍토는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설사 법적으로 진위가 판정되더라도 작가와 전문가의 의견이 대립하는 한 미술시장에서의 혼선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품의 위작 시비는 법적 영역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당장 이우환 화백은 “생존 작가가 있는 상황에서는 생존 작가의 의견이 우선시돼야 하고 이는 다른 국가들의 경우에도 통용되는 일종의 상식인데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자격이 불확실한 감정위원들과 국과수에 먼저 감정을 의뢰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미술법 전문가인 김형진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작가의 의견은 진위 판별에서 중요한 참고 요소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니다. 작가가 실수한 외국 사례도 여럿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네덜란드의 거장 카럴 아펄은 경매에 출품된 자신의 위작을 진작으로 확인해 줬다가 가짜임이 드러나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또 19세기의 거장 코로는 위작임을 알면서도 여러 작품에 진작 사인을 해줘 지금껏 미술사가들의 원망을 사고 있다(이주헌 미술평론가)는 주장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가장 객관적인 것은 작가의 의견이나 감정가의 안목보다도 작품의 이력”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술법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진위를 가리는 결정적인 요소는 작품의 출처(provenance)”라며 “한국 문인화의 경우에도 작가의 낙관은 물론 소장자의 인장이 차례로 찍혀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소장자의 인장은 진품으로서의 가치를 공고하게 하는 것이라 이런 작품은 귀하게 여겨진다”고 전했다. 그는 또 “스타일이 계속 변하는 화가들의 경우 감정가는 자신이 아는 스타일이 아닌 작품에 대해서는 위작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작가로부터 시작된 소장자들과 소장처들이 확실하다면 이런 소장 이력이 진위 판별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신뢰할 만한 요소가 될 것”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에이전시 역할을 하는 전속 갤러리 시스템이 한국에 정착되지 않은 것도 위작 유통에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갤러리 대표는 “미국의 한 미술관이 한국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 구매를 결정했는데 전속 화랑 없이는 구입할 수 없다는 미술관 방침 때문에 그 작가가 우리 화랑을 찾아와 전속 화랑이 돼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며 “국내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외국 유명 작가의 경우도 반드시 전속 화랑이 동행하는데 한국엔 이런 전속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프랑스서 시작된 추급권, EU로 확산최근 위작 시비가 빈번해지면서 추급권(追及權)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어 Droit de Suite, 영어로 Artist’s Resale Right라고 불리는 추급권은 미술가가 타인에게 판 작품이 다시 재판매될 때 그 대금 중 일정 비율의 금액을 배분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것은 작가가 빈곤 속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명성이 올라가면서 작품이 고가에 팔려 소장자만 이득을 보는 일이 일어나는 데서 출발했다.



프랑스는 일찍이 19세기 중반부터 추급권의 필요성에 눈을 떴는데 화가이자 풍자만화가인 장루이 포랭이 그린 그림이 그 예다. 경매시장에서 그림이 10만 프랑에 낙찰되는 순간에 넝마를 입은 아이 둘이 ‘우리 아빠 그림이잖아!’라고 말하는 걸 묘사한 그림이다. 결국 프랑스는 1920년 추급권을 법제화했다. 2006년 15개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추급권의 도입 이행이 완료됐고 재판매 금액의 0.25~4%가 작가나 그 저작권이 있는 유족 혹은 재단에 돌아간다. 저작권이 유지되는 기간인 작가 사후 70년까지 추급권이 인정된다. 현재 EU 회원국을 비롯한 세계 60여 개국에서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만 추급권이 인정된다.



구본진 변호사는 “추급권 도입은 세계적인 추세로 아마도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에도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추급권은 미술가나 그 유족의 생계를 보장하자는 데서 출발했지만 지나친 가격 상승으로 인한 미술 투기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무엇보다도 추급권에 의한 배분 과정에서 작품의 소장 이력이 투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작 시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술품 이력 투명화는 “제도의 문제가 아닌 양심의 문제”(김형진 변호사)라는 지적도 있다. 김 변호사는 “현재 미술품에 대한 양도세가 도입되고 있는데 이것도 미술품 이력을 투명하게 드러내게 하는 제도가 아닌가”라며 “양도세를 매겨도 추급권을 시행해도 신고를 안 하면 그만이다”고 잘라 말했다.



미술품 위작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유독 국내에서 위조 시비가 잦은 것은 미술품을 탈세 목적으로 음성 거래하는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대중은 ‘미술 거래=탈세 수단’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고 그 때문에 컬렉터들은 더욱 미술품 거래를 투명화하는 것을 꺼리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부는 7일 미술품 유통 투명화 방안과 관련한 전문가 세미나를 열어 해법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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