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매거진M] 한국영화, 악을 '제대로' 탐구하라

만약 악을 징벌하기 위해
악을 고안해 냈다면 그건 이미 악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조차 귀찮아할 유치한 역할극이며
심리치료극에 불과하다."

기사 이미지

[사진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 스틸컷]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87)는 “위대한 소설은 항상 그 작가보다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다”고 말한다. 이는 ‘작가가 쓴 소설이 소설가의 완벽한 통제와 제한된 윤리관 안에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훌륭한 작품은 최초의 구상과 다른 지점에 닿게 마련이다. 서사의 지혜란 이런 것이 아닐까. 작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바를 완벽히 재현하기 위해 작품을 종으로 삼는 게 아니라, 작품이 가진 생명력에 귀 기울여 진짜 삶의 전언에 이르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이야기 속에서 악은 꾸며 낸 것이 아닌 관객이나 독자에게 얻어 낼 반응이어야 한다. 만약 악을 징벌하기 위해 악을 고안해 냈다면 그건 이미 악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조차 귀찮아할 유치한 역할극이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심리치료극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영화에 등장하는 악의 응징은 대부분 그렇게 보인다.

요즘 제법 잘되는 한국영화엔 어떤 법칙이 있다. 일단 절대적인 악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악을 처단하려는 인물도 등장한다. 최근에는 영화 속 악이 ‘갑’이란 용어로 구체화되었다. 그렇다 보니 악을 처단하는 인물은 자연스레 ‘을’의 대변자가 된다. ‘베테랑’(2015, 류승완 감독)으로 시작된 을의 복수는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 ‘치외법권’(2015, 신동엽 감독) ‘소수의견’(2015, 김성제 감독) ‘검사외전’(2월 3일 개봉, 이일형 감독)을 지나 얼마 전 개봉한 ‘특별수사:사형수의 편지’(6월 16일 개봉, 권종관 감독, 이하 ‘특별수사’)에 이르기까지 반복되고 있다. 갑은 무소불위 권한을 휘두르다 결국 을의 꾀에 홀려 무참히 무너진다.

예컨대 ‘특별수사’ 속에서 악이자 갑은 인천 지역을 호령하는 대기업 안방마님이다. 여사님(김영애)은 집안에서조차 갑을 서열 관계의 밀림을 만든 사람이다. 그의 말을 거역하는 건, 곧 죽음을 자초하는 일. 여사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처분하기 위해 무엇이든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기업 내부에 청부 살인 업자를 두고 필요할 때마다 불러 쓴다. 그렇다면 을은 어떤 모습일까? 한때 모범 경찰이었던 필재(김명민)는 ‘마누라(‘파트너’를 뜻하는 경찰들의 은어)’의 모함으로 불명예스럽게 일을 그만둔다. 인생을 거의 포기했던 그는 변호사 판수(성동일) 덕에 재기의 기회를 잡는다. 법률 사무소 사무장으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 필재. 그는 경찰 후배들과 짜고 수임료나 두둑히 챙기는 속물의 대명사가 된다. 이처럼 최근 영화 속 을은 처음부터 정의로우면 안 된다. 오히려 평범한 속물이었다가 점점 정의롭게 변해야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너무 기계적이고 반복적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악이 위악(僞惡·‘짐짓 악한 체함’이라는 뜻, 여기서는 인위적으로 만든 악을 의미)으로 바뀐 것도 모자라 점차 변질돼 간다는 사실이다. 악은 인간의 이해 영역을 넘어선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지나가던 여성을 죽인 악이나 전남 섬마을에서 여교사를 집단 성폭행한 악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것은 상식적으로 이해 가능한 범주 너머의 악이다. 진짜 악은 이렇듯 이해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 두렵고 난폭하다. 요즘 한국영화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패턴으로 악을 다룬다.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그런데 인위적인 악을 보여 주는 방식 역시 매우 인위적이다. 이를테면 몰래 촬영한 동영상이나 녹취 파일 같은 것들이 만능 해결책으로 등장한다.

현실적으로 재벌이나 대기업의 숨은 세력을 벌주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영화에서나마 화끈하게 응징해 사필귀정의 세계로 끌어내고 싶은 마음도 공감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악조차 진짜가 아닌 영화적 설정으로 반복되고 있다면, 그건 너무 게으르고 편하게 생각하는 것 아닐까. 하고 싶은 말이 분명한 게 아니라 특별히 전하고 싶은 영화적 전언이 딱히 없는 건 아닐까. 지금 한국영화 속 악의 재현 방식은 절망적이다. 악이야말로 철저한 탐구의 대상이지, 대충 합의하고 넘어갈 대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