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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쏟아지는 시나리오, 우리는 준비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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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6자회담은 죽었다. 이제 새 틀을 짜야 한다’는 북한. ‘북한의 추가 도발에는 제재와 압박 이외 다른 대안은 없다’는 한·미·일. 그리고 이 첨예한 대결구도 속에서 ‘상황 악화 방지’를 내걸며 그나마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하는 중국과 여기에 동조하는 러시아. 6월 22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동북아협력대화(NEACD)에 참석한 6자회담 대표들의 모습이다.

필자는 NEACD뿐 아니라 그 한 주 전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반도·동북아안보 국제회의에도 참석할 기회를 가졌다. 두 회의 모두 북핵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다. 이를 오가며 필자의 뇌리를 스친 생각 중 하나는 북핵과 관련해 한국이 조만간 심각한 정책적 딜레마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북한 핵의 상황 관리를 둘러싼 논쟁이다. 한국 정부는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보 없이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은 없으며,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행태를 변화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핵무기를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폐기한다는 목표를 단시간에 달성하기는 어려우므로 지금은 상황 악화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유예시키고 관련 시설과 프로그램, 핵물질을 폐기하게 만듦으로써 핵무기 고도화를 막는 게 더욱 시급한 과제라는 관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접근법에 단기적으로나마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묵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정부가 과연 이러한 대안을 수용할 수 있을까.

그에 못지않게 신경 쓰이는 의제는 미국의 군사행동 가능성이다. 1994년 1차 핵위기 때 검토됐던 군사적 옵션이 한국 측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이래 대북 군사행동을 거론하는 일은 사실상 금기시돼 왔다. 그러나 북한이 계속 ‘막가파’ 식으로 핵무기 증강을 밀어붙이거나, 제3국 또는 국제 테러조직에 이를 유출할 기미를 보인다면 미국이 나서서 북한 핵시설과 미사일 기지에 선제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워싱턴 일각에서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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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기류는 우선 오바마 행정부가 오랫동안 취해온 ‘전략적 인내’ 정책이 야기한 피로증후군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의 정책 스타일이 고스란히 반영된 견해라는 점도 함께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카터 장관은 1차 위기 때부터 윌리엄 페리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정밀선제타격을 옹호한 인물이다. 선제타격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한반도 전체로의 확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사태 전개 가능성에 대해 우리 정부의 입장은 과연 무엇인가. 그에 대한 준비는 마련돼 있을까.

앞서 말했듯 6자회담 무용론은 이제 대세인 듯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 정부도 북한을 제외한 다섯 나라가 연합해 대북 압력을 가함으로써 변화를 유도한다는 기본 방침을 고수하며 6자회담 회의론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베이징이 ‘제재를 위한 제재’나 ‘북한 체제 붕괴를 위한 5개국 연합’에 동조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도리어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가 심화되어 타결 가능성이 쪼그라들 개연성이 더 높아 보인다. 이 경우 우리 정부의 대안은 무엇인가. 6자 틀도 무의미하고 5자 연합 구상도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새 틀을 만들 수 있을까. 더욱이 만에 하나 중국의 협력을 원하는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대화에 착수하기라도 한다면?

마지막으로 한국 주도의 제재와 압박이 성공적으로 작동할 경우 북한은 이에 강경일변도로 대응하다 결국 붕괴를 맞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나왔다. 주로 북한의 체제변화 없이는 비핵화도 불가능하다고 보는 강경파 인사들이 이러한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붕괴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 정부가 그 후폭풍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지부터 회의적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북한 지역의 정치·사회적 불안, 난민 문제, 군사·민사 개입 같은 안정화 과정의 지난함, 뒤이을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 등은 어느 하나 만만한 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제재와 압박에 최우선 역점을 두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작업이 성공 또는 실패한 이후를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기 짝이 없다. 그런 자세로는 우리 국민은 물론 주변국에 대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이제 정부는 이 다양한 시나리오를 슬기롭게 다룰 수 있는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문 정 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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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