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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쓴 재봉틀, 47년 된 금고…시대를 다림질하는 세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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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무학동에서 세탁소 ‘현대 크리닝상사’를 운영하는 홍춘남(72)·서화순(67)씨 부부가 27일 드라이클리닝을 마친 세탁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야마토(Yamato)’ 제품은 30년이 넘었고, ‘부라더(Brother)’에서 나온 건 그보다 나중에 샀죠. 살살 고쳐가면서 썼더니 지금도 쓸 만합니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무학동 ‘현대 크리닝상사’. 사장인 홍춘남(72)씨가 허리 높이의 작업대 위 철제 재봉틀 두 대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100㎡(30평) 안팎의 세탁소에서 30년 된 재봉틀과 독일제 드럼세탁기, 50년 남짓 된 금고가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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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재봉틀. 서씨가 30년 넘게 쓰고 있는 ‘야마토’ 재봉틀.

현대 크리닝상사는 올해로 47년 된 세탁소다. 전남 강진군 출신인 홍씨는 17살에 상경해 세탁소 ‘신신사’에 취직했다. 홍씨는 따뜻하게 데워진 다리미판을 침대 삼아 자고, 번 돈은 고스란히 주인 할머니에게 맡겨 놓으며 일했다.

성실한 홍씨를 눈여겨 본 주인 할머니는 홍씨가 스물다섯 살이 된 1969년에 가게를 맡아 운영하라고 권했다. 40만원에 신신사를 인수한 홍씨는 상호를 ‘현대 세탁소’로 바꾼 후 다시 ‘현대 크리닝상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값비싼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들이지 못한 세탁소가 많던 시절이었다. 대신 서울에 클리닝을 맡아 하는 공장이 두세 곳 있었다. 홍씨도 세탁소에서 손님들 옷을 걷어다가 공장에 맡겼다가 되찾아와 손님들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일했다. 서울시는 서울의 생활사를 간직한 공간이라며 이 세탁소를 2014년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드라이클리닝을 직접 시작한 1980년 전까지 현대 크리닝상사의 주업무는 다림질이었다. 홍씨는 “1970년대엔 여학생들이 흰 블라우스에 풀을 먹여 얼마나 빳빳하게 다려 입었는데요. 하루에만 교복 블라우스를 30~40장씩 다렸죠. 외출할 땐 어김없이 와이셔츠를 입고, 바지에도 온갖 줄을 잡던 때라 늘 바빴던 기억이 납니다”라고 말했다.

일은 많았지만 속도 내긴 쉽지 않았다. 70년대 후반까지도 연탄 다리미를 썼기 때문이다. 뜨거운 연탄 두 개에 다리미를 각각 얹어 놓고 한 대가 식으면 다른 것을 들어가며 옷을 다렸다. 옷 한 벌 다리는데 30분이 훌쩍 넘었다.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꼬박 서서 일을 해야 했다. 열심히 일한 만큼 동네에서 이름도 얻었다. 86년 서울아시안게임 때는 중구청이 가로수마다 꽂기 위한 환영 깃발 수천장을 모두 이곳에 맡겨 빨고 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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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년 된 금고. 홍씨가 개업한 1969년부터 써온 금고.

1990년대에 들어서자 가정집들이 성능 좋은 세탁기와 스팀다리미를 갖추기 시작했다. 현대 크리닝상사의 일감은 크게 줄었다. 1000원도 안되는 최저가로 드라이클리닝을 해주는 프랜차이즈 세탁소들이 생기며 세탁비도 동결됐다. “이발 가격이 10년간 두 배 오르는 동안 세탁비는 제자리에 멈췄어요. 돈벌이가 안됩니다. 예전에는 우리집에서 배워 나가 세탁소를 차린 제자들도 많았는데 더 이상 그런 젊은이들이 없는 것이 씁쓸합니다.”

홍씨는 1992년 제1회 세탁기사 자격 시험에서 합격했다. 기술력을 검증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도전한 것이었다. 50년간 일하며 인근 동대문 도매상인들이 “이 원단과 이 원단을 섞어 옷을 만들어도 될지 알려달라”고 찾아올 정도의 노하우도 쌓았다. “그만 하고 쉬라”는 아내와 자녀의 권유가 홍씨 앞에서 무력한 이유다. “먼 곳에 사는 고객들도 이곳 저곳에 옷을 맡기다가 결국은 차를 몰고 우리집으로 옵니다. 최대한 오래 세탁의 장인으로 살아갈 겁니다.”

글=김나한·김준영 기자 kim.nahan@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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