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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의 NEAR 와치] 브렉시트와 한국 : 분노·포퓰리즘·현상파괴형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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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분노·반세계화·이민자·잃어버린 자존심·포퓰리즘-. 영국 BBC방송이 적시한 브렉시트의 밑바닥 원인이다. 이러한 요인들이 융·복합하며 예상외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우리는 분노와 포퓰리즘이 융합할 때 얼마나 강력한 폭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잃어버린 자존심도 “썩어도 준치”하며 부추기는 포퓰리즘과 만나며 강한 휘발성을 발휘했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에 대해 그다지도 분노했는가? 분노의 씨앗은 미래의 생존에 대한 불안, 정치권·사회리더십에 대한 불신, 유럽연합(EU) 체제에 대한 불만이고 이것이 상호 증폭되면서 분노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불신·불만을 증폭시켜 폭발시키는 데는 인기영합주의자들의 부추김이 큰 몫을 했고 영국 사회의 분노조절장치인 의회정치와 사회소통기구인 지식사회의 신뢰 상실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금세기 들어 국제사회의 리더십이 약화되며 몇 가지 중요한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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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첫째, 글로벌 위기를 수습하는 데 근본적 처방을 외면한 채 재정·금융위기가 장기 확산되도록 방치했으며 그 중심에 EU가 있었다.

둘째, EU의 동질성, 정체성 위기와 함께 통합이익과 비용의 배분에 있어 국가 간에 심한 불균형이 있었고 EU 체제에 대한 회의론과 어우러져 와해 위험을 키워왔다.

셋째, 세계화를 밀어붙였던 선진국 자신이 위기에 빠지고 각자도생으로 생존 방정식을 바꾸면서 스스로 세계화를 부정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북아프리카 민주화의 사후관리에 소홀해 경제파탄으로 인한 대규모 이민자 유입 사태를 배태했다. 이러한 실패가 오래 누적되며 현 사태를 유발했다고 본다.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 것은 현실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한 현재의 국민이 미래의 국가 전략을 직접민주주의 방식의 가부 투표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고 합리적인지에 대한 판단 문제다.

국가 사회가 이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특히 어떻게 하면 감성적·충동적인 집단적 의사 표시가 현상파괴형 위기로 흐르지 않게 방지할 것인지 그리고 국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인기영합주의자들의 선동으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도 중요한 숙제로 남겼다.

우여곡절 끝에 영국은 완전주권주의(full sovereignty)로 돌아가 잃어버렸던 자존심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 같다. 후폭풍도 만만치 않고 영국과 EU에는 와해 위험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전 세계에 밀어닥칠 파장은 매우 오래 깊고 넓게 퍼지며 기존 세계질서를 할퀴고 지나갈 것 같다.

왜 한 나라의 EU 탈퇴가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가? 한마디로 지금 세계는 잦은 소나기로 흠뻑 젖은 산비탈에 폭풍우가 밀어닥치며 산사태를 일으키는 형국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국제사회가 파장의 장기화를 최대한 막고 불확실성을 조기에 제거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영국과 EU는 샅바싸움 없이 EU 탈퇴 협상을 조기에 마무리해야 하고 EU 집행위원회는 EU 개혁안을 제시해 나머지 회원국들의 안정을 유도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 지도자들은 세계인들에게 다음 질문에 대해 답할 준비를 해야 한다.

첫째, 의회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어떻게 해소하며, 사회적 분노조절장치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둘째, 의회정치의 실패에 대해 직접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직접민주주의 남발과 포퓰리즘이 결합했을 때 올 수 있는 현상파괴형 위기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셋째, 세계화·지역주의·자유무역주의는 어떻게 보완·발전시키고 양극화, 단층적 사회구조, 빈곤층과 빈곤국가 문제 등 어려운 과제들을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솔직하고 현실적인 답변과 대안을 준비할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은 무엇을 배우고 어떤 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인가? 먼저, 이번 사태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 우리 정치권이 스스로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고 지난 수십 년간 우리 내부에 축적된 병리현상을 치유하며 잠재 위험을 해소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즉, 국내정치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혐오, 문제해결 능력이 없는 정치·정부·국가 리더들에 대한 좌절감, 말기현상을 보이고 있는 5년 단임 정치에 대한 한계의식, 정체기에 깊숙이 진입하는 한국경제, 북한 핵 위기 속의 안보 위험, 기득권자의 공고한 담합체계 속에 갇혀 있는 한국 생태계, 좌절하는 청년과 노인들, 안전하지 않은 사회질서, 사회 분노조절장치의 미비로 늘어나는 우울증, 자살, 묻지마 살인 등 이 모든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내년에 있을 대통령선거 기간 중에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 요인인 기득권자와 소외된 자의 문제를 진지하고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분노하고 우울한 국민들을 포퓰리즘으로 현혹해 극단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는 국민의 분노와 포퓰리즘의 영합을 엄중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인물은 정치 담합체계인 패거리 속에서 나와 국민들 속에 들어가 분노조절장치 역할을 자임하고 국민의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이제 정치 개혁을 통해 의회정치를 복원하고 사회적 소통의 통로를 다원적으로 발전시켜 사회 분노조절장치를 정비해야 한다. 이번 브렉시트 사태가 우리에게 좋은 보약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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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