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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곽희수의 단편 도시] 다시, 해우소

주인에게 열쇠 받아가는 상가화장실
기기묘묘하게 꾸민 공중화장실 대신
범죄·추문 없는 해우소를 고민할 때



식당에 들어온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화장실을 묻는다. 식당 주인은 열쇠가 달린 머그컵을 넘겨준다. 외국인은 어리둥절하다. 머그컵을 받아 쥐고 한참을 서있던 그는 단호한 어조로 머그컵에는 일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노!노!노! 화장실 필요합니다.” 주인은 웃으면서 건물 뒤쪽으로 나가면 화장실이 있다고 말한다. 의심에 찬 외국인의 파란 눈이 더 파래졌다. 아마도 그는 건물 밖에서 화장실을 발견하고서야 열쇠의 용도를 알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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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 유럽의 도시 중엔 노상방뇨를 줄이기 위해 팝업 화장실(night-pop up)을 설치한 곳이 있다. 평소엔 땅속에 있다가 거리에 사람이 많아지면 땅 위로 솟아오르는 간이 화장실이다. 왼쪽 사진은 런던 챠터하우스 스트리트에 있는 팝업 화장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암스테르담 토르베케 스퀘어에 설치된 팝업 화장실. 오른쪽 위사진은 영국 웨스트 그로브 노팅힐에 있는 꽃집 화장실. 화장실에 꽃집을 접목해 유지관리비를 줄이고 범죄도 예방했다. [사진 위키미디어, 구글 스트리트뷰]

건물주 이익만 생각하는 한국의 화장실

열쇠는 권력의 상징이다. 자물쇠를 여는 자는 곳간을 관리하고, 죄인의 자유를 포박한다. 심지어 천국에 갈 때도 필요하다. (성경에서 예수는 제자 베드로에게 하늘나라 열쇠를 주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화장실에 갈 때도 열쇠가 있어야 한다. 열쇠를 쥔 자는 상가의 주인이다. 외부인의 방문을 반기지 않고 허락된 자만이 용변을 볼 수 있는 인색한 화장실은 결코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이 아니다.

열쇠로 상징되는 한국의 화장실은 소위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되는 상가 건물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임대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건물주에게 사용자의 위생은 모순되는 경제적 개념이다. 공용 화장실은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각 상가 화장실의 수준은 건물주의 이익에 따라 결정된다. 그들의 입장에서 화장실 수를 줄이고 공용면적을 최소화하는 건 경제적 이득과 직결된다. 그래서 화려하게 치장한 상가 인테리어와 달리 화장실은 좁고 남루한 처지에 놓인다. 건물주는 화장실 때문에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상가의 임대 공간은 대체로 잘게 분할돼 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임차인을 확보해서 임대 수입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러한 임대 환경에서 화장실 이용자 수는 수용 범위를 벗어나게 된다. 직원과 고객, 외부인까지 출입하면 화장실은 포화 상태다. 결국 상가 주인들은 공동으로 열쇠를 맞추고,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화장실 문을 걸어 잠근다. 이제 화장실이 필요한 고객은 자신의 생리적 상황을 상가 주인에게 알린 후 열쇠를 넘겨받아야 한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지방 소도시의 정겨운 풍경이 아니다. 서울의 수많은 상가와 스타일을 중시하는 강남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부족한 상가 콘텐트와 공공에 대한 인식 부재는 화장실 환경을 더욱더 악화시킨다. 근린생활시설의 법적인 정의는 ‘주민 편익을 돕는 시설’이다. 다시 말해 상가란 ‘사적 이익 추구와 함께 도시의 공공 이익에 복무해야 하는 시설’이다. 건물은 주인의 소유지만 사용의 주체는 시민들이다. 그러니 상가는 경제성만을 앞세워선 안 된다.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고객의 편익을 도와야 한다. 이러한 의무는 시민과 도시를 경영하는 도시행정가 모두에게 있다.

더군다나 시민의 삶을 개선할 목적으로 도시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서울시는 이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된다. 취약해진 도시환경과 그 불편은 고스란히 시민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의 위생을 개인의 문제라며 방기하는 것 또한 서울시의 직무유기다. 서울의 행정은 정치적 거대 담론보다는 취약한 도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서울은 연간 1500만 명이 방문하는 국제도시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열쇠를 쥐여주고 한국의 화장실 문화를 소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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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프랑스에선 망토로 가리고 거리에서 양동이에 앉아 용변을 봤 다 . 화장실(Toilet)의 어원도 이망토(Toile)에서 비롯 됐다. 그림은 EBS 지식채널e ‘역사 속에 사라진 직업들’ 중에서.

청결·안전 고려한 영국의 꽃집 화장실

2006년 영국화장실연합회(BTA)는 ‘위생은 존엄이다’라고 선언했다. 화장실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도시 시설이다. 설령 건물주가 화장실 면적을 최소 규모로 제한했다고 해도,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건축은 인간에 대한 구체적이고 폭넓은 이해를 바탕에 둬야 한다. 만약 인간의 존엄 따위는 상관없이 그저 설계로 생계를 꾸리려는 건축가가 있다면 그는 지각없는 장사치일 뿐이다.

1993년 영국의 웨스트 그로브 노팅힐에는 꽃집 화장실이 지어져 화제가 됐다. 건축가는 피어스 고프(Piers Gough)다. 그는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길고 뾰족한 모양의 교통섬 설계를 의뢰받는다. 주민들은 그에게 키오스크 형식의 상점과 공공 편의시설,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벤치와 시계가 있는 고상하고 우아한 랜드마크를 요구했다. 공공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도 눈여겨 볼만하지만 이를 발전시켜 꽃집과 공중화장실을 접목한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더욱이 참신하다.

건축가는 시가 공중화장실 청소 관리를 위한 예산과 인원을 편성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예산 낭비도 줄이고 청결과 범죄 예방이 가능한 공중화장실을 구상했다. 그가 생각해낸 건 꽃집 화장실이었다. 화장실과 꽃집을 함께 운영하게 되면 시는 화장실의 관리·유지 업무로부터 해방되고 꽃집으로부터 세금도 걷을 수 있다. 일거양득이다. 그 결과 탄생한 꽃집 화장실은 화장실에 악취 대신 향기를 불어넣었다. 화장실이 범죄 예방 역할도 수행한다. 꽃집 주인은 런던의 해롯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플로리스트 니키 티블(Nikki Tibble)이었다. 그는 70여 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화장실 옆 작은 꽃가게의 주인이 됐다.

부족한 도시의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도시 프로그램의 화장실도 있다.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한 유럽의 도시는 저녁 시간이면 술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노상 방뇨를 감당하느라 몸살을 앓는다. 사실 유럽은 중세부터 지금까지 도시의 악취와 벌인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웨스트런던의 인바크먼트 역 주변에는 밤에만 나타나는 간이 화장실(night-pop up)이 설치되었다. 길가나 광장 땅속에 숨어있던 화장실이 밤이 되면 지상으로 솟아오른다.

반면 한국 공중화장실의 진화 방향은 엉뚱하다. 동식물을 닮은 화장실을 짓는가 하면 악기 형태의 화장실도 있다. 이런 화장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 도시는 다양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번지는 장소다. 도시 맥락에도 맞지 않는 겉모양 내기보다는 위생 공간의 안전성을 담보하면서 지속 가능한 운영 프로그램 기획에 집중해야 한다.

“더 나은 화장실, 더 나은 세계 만든다”

빌 게이츠가 화장실 없는 국가들을 위해 내놓은 기부금은 어쩔 수 없이 배설해야 하는 인간의 숙명에서 그 존엄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는 세계 인구를 위해 혁신적인 화장실 디자인을 공모하기도 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시작된 화장실의 성 구분은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인종, 성 소수자, 임산부, 부모와 성별이 다른 자녀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 등이 거론되고 있다. 최근엔 성별 구분이 없는 화장실(unisex public toilet)이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공공시설은 나이·성별에 관계없이 접근이 쉬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최근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나 유명 연예인의 화장실 추문이 사회적 이슈다. 인류가 어렵사리 쌓아올린 화장실 위상이 폭력과 범죄의 장소로 변질된 것이다. 반세기 전 한국의 경봉 스님은 극락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이름 지었다. 뒷간·측간 등으로 홀대받던 화장실을 명상의 장소로 격상시킨 말이다. 화장실(Toilet)의 어원은 중세 프랑스 길거리에서 망토(Toile)를 두르고 양동이에 앉아 단순히 볼일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화장실(Toilet)에 비하면 해우소의 통찰은 그래서 놀랍다. 스스로와 마주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바쁜 현대인에게 해우소는 근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귀한 장소임을 잊으면 안 된다. ‘더 나은 화장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빌 게이츠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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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수는 홍익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이뎀도시건축 대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KIA 신인건축가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 건축상, 한국공간디자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장동건·고소영 주택으로 알려진 신천리주택으로 세계건축상를 받았다.

※  도시는 변화무쌍합니다. 때로 앞면과 뒷면이 다르고, 그 이면에 예상 외의 모습을 감추있고 있기도 합니다. 단편 도시는 도시의 다양한 면면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망할 예정입니다.

[건축가 곽희수의 단편 도시]
▶도시의 계단은 정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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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신사동 그 길만 가로수길로 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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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