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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요 일간지 첫 한인 기자 이경원씨 “내 고향 개성땅, 죽기 전에 보고 싶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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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씨는 개성을 바라보며 “두고온 친지들의 곡성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고향에 두고 온 친지들의 곡성(哭聲)이 들리는 거 같습니다. 이 광경은 무덤에 갈 때까지 잊지 못할 겁니다”

49년 유학, 이승만 비판해 여권 말소
마크 트웨인 다닌 신문사 70년 입사


지난 23일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의 상승전망대. 재미 언론인 이경원(88)씨는 철책선 너머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개성 송악산을 바라보며 “어렸을 적 주말마다 산에 올라가 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감개무량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씨는 지난 21일부터 2주 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생전에 마지막으로 고향인 개성땅을 보고 싶어서다. 그의 방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취재 이후 28년 만이다.

28년 개성에서 태어난 이 씨는 49년 말 고려대를 중퇴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보름 동안 배를 타고 이듬해 1월에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했죠.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고 하면 중국 어디에 있는 곳이냐고 물을 정도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유학생이었던 그가 기자가 된 건 우연이었다. 애초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계획이었지만 이승만 정권의 장기독재를 비판하는 칼럼을 현지 언론에 기고했다는 이유로 여권이 말소됐다. “비자까지 만료되면서 국제미아가 됐어요. 미국에 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100곳이 넘는 언론사에 지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테네시주의 킹스포트 타임즈라는 지역 언론사에서 저를 받아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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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년 기자 시절 이경원 씨의 모습.



70년에는 캘리포니아주의 유력 언론이자 소설가 마크 트웨인이 기자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새크라멘토 유니언’에 입사했다. 한국인 최초의 미국 주요일간지 기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유일한 동양인 기자였던 그는 미국내 소수 인종의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이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동양인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이철수 사건’을 꼽았다. 그는 78년 차이나타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사형 선고를 받은 이철수 사건의 진상을 특종 보도해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사건은 이후 로버트다우니주니어 주연의 영화 ‘True Believer(신봉자)’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이씨는 언론인 명예의 전당인 워싱턴의 언론박물관 ‘뉴지엄’(Newseum)에 20세기를 빛낸 ‘언론인 500인’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으로 등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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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이철수 씨를 감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경원 기자.



이 씨는 초기 한인 이민자들의 사연을 담은 『외로운 여정-육성으로 듣는 미주 한인 초기 이민사 하와이에서 유카탄, 쿠바까지』를 지난달 한국어로 출간했다. 미군으로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사업가로 변신했다가 6·25가 발발하자 다시 자원 입대해 전공을 세운 김영옥 대령 등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이 씨는 “이민 2세들은 돈도 못 벌고 영어도 서툰 아버지 세대에 대한 기억 때문에 한국을 잊고자 했지만, 젊은 3세대들은 다시 한국을 기억하길 원한다”며 “그들에게 이민자 1세대가 겪은 삶의 여정을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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