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먹다 남은 과자 중고로 팝니다’ 게시물에 15년째 댓글 다는 까닭

10년 전 사진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면식갤러리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좋아하는 라면에서 햄 맛을 빼달라고 라면회사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는데 그 햄 맛이 빠진 것 같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글에 10년째 댓글이 붙고 있다. 댓글은 주로 맛있는 햄 맛을 왜 빠지게 했느냐며 비난하는 내용이었다(라면 회사는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시간이 흘러 점차 이른바 ‘성지’가 되자 신통력(?)에 기댈 요량으로 “대학에 붙게 해주세요”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등 소원을 비는 댓글도 많아졌다.

스타크래프트 게임을 다루는 PGR21에 올라온 글도 마찬가지다. 2004년 3월에 올라온 이 글은 특별한 것도 없다. 한 이용자가 스타크래프트 게임 1년 만에 1000승을 목표로 했는데 900승에서 리셋돼 버렸다며 아쉬워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12년이 지난 지금도 이 글에 댓글이 달리고 있다. 처음엔 안타깝다는 댓글이 이어지더니 해를 거듭하면서 “흔적 남기고 갑니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와 같은 안부 인사로 바뀌어 계속됐다.

원 게시글에는 관심도 없다. 십년 넘게 댓글이 붙다 보니 그 많은 댓글을 읽으려면 컴퓨터가 과부하로 애를 먹을 정도다. 그래선지 새로 산 PC의 성능 테스트에도 쓰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한다.

네티즌들이 이 게시물에 무슨 신앙을 가진 것은 물론 아니다. 이들은 함께 만들어낸 오래된 성과를 추억으로 여긴다. 그래서 추억의 장소를 ‘성지’라고 기념하며 소원을 비는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에 치성을 드리던 옛날 어른들과 비슷하다.

인터넷 문화를 기록하는 나무위키 사이트에는 가장 오래된 ‘성지’를 2001년 7월에 올라온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로 소개하고 있다. 먹다 남은 과자를 중고로 판다는 이 글에는 무려 15년째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인터넷 서비스가 대중화된 지 30년이 훌쩍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세 번 강산이 바뀐 것이다. 디지털 세상은 강산이 아니라 우주가 바뀌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지금 40대가 타자를 배워 사용한 세대라면, 30대는 엄지손가락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자랐다.

20대는 카카오톡 메시지에 익숙한 반면, 지금 10대는 파노라마 사진을 찍고 초등학생들은 360도 사진을 찍는다. 요즘 세 살짜리 아이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화면에 손가락을 갖다 댄다. 태어나면서 본 모든 것이 터치 방식으로 작동됐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40대들은 ‘atdt01410’이라는 명령어를 알 것이다. 모뎀으로 전화선을 이용해 컴퓨터통신을 하던 시절, PC통신망에 접속하는 명령어였다. 통신망에 접속하면 나오던 ‘치~’ 하는 연결음 소리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다. 30대들은 ‘싸이질’과 ‘도토리’를 기억할 것이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1촌을 관리하고 휴대전화 벨소리를 다운로드 받으며 이들은 디지털에 빠져들었다.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가 급격히 바뀌지만 사람은 기계처럼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기억과 경험을 함께하는 집단으로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거친 세대들이 각자 세대의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듯 디지털 세대들도 각각의 기억과 경험이 있다. PC통신에 이어 닷컴 시대가 열렸고 휴대전화와 디카(디지털카메라) 시대를 거쳐 지금은 스마트폰과 소셜 시대가 진행 중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웨어러블 컴퓨터와 드론, 세그웨이, 나인봇 같은 이동수단을 거치며 또 다른 기억과 경험을 함께 해나갈 것이다.

DOS 시절 ‘V3’ ‘아래한글’과 함께 국민 프로그램이라고 불렸던 ‘mdirIII’를 만들었던 개발자 최정한씨의 근황이 최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졌다. 그 딸은 트위터를 통해 아빠가 훌륭한 개발자였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됐다고 고백해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디지털 세상은 늘 새로운 기술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옛 추억을 새기며 10년 넘게 달리는 댓글들은 디지털 세상의 진짜 중심은 신기술이 아니라 결국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점을 깨닫게 한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