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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청와대가 개헌 물꼬를…‘괜찮아’만 해도 논의 봇물 터질 것

신문을 보고 있던 우윤근(59) 국회 사무총장이 벌떡 일어서며 반겼다. 지난 22일 오후 국회 본관 3층.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 승인안이 통과된 바로 다음 날이다. 광양 출신인 그는 광양- 구례에서 17대부터 내리 3선(選)을 했다. 그러나 4·13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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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윤근 신임 국회사무총장은 22일 “청와대도 이제 현행 헌법이 대통령이 일을 하기 어려운 권력구조라는 걸 아실 때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 강정현 기자]

 
축하드려야 하나요, 위로드려야 하나요.
“축하도 받아야 하고, 위로도 필요하죠.”
왜 낙선했나요.
“저의 부족 탓입니다. 제가 좀 자만하고…. 저 깐에는 중앙에서 열심히 했습니다. 우리 지역 분들이 잘 알아주겠지, 이게 오산(誤算)이었습니다. 역시 정치는 지역에서 끝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구차하게 변명을 하자면 광주·전남에 국민의당 바람이 굉장히 거세게 불었습니다. 저를 아끼는 분들이 탈당하라고 했지만 ‘세월호 선장처럼 먼저 탈출하면 되겠느냐’고 했습니다.”
호남 민심이 왜 돌아섰다고 생각하세요.
“사실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서는 하나의 기득권입니다. ‘90%까지 몇 번 밀어줬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정신 차려라’ ‘정권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서 국회의원만 하느냐’, 여기에 대한 질책이고 실망이 표출됐다고 봅니다.”
불만을 달랠 방법이 있나요.
“지역민들의 염원은 정권을 만들어 봐라 하는 것입니다. 대선에서 이기는 게 1차적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대에 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에는 가 봤습니까.
“막상 떨어지고 나니 저도 부족한 인간이라 ‘야, 원내대표, 법사위원장까지 했는데 나를 안 알아줘?’ 하는 서운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일주일간 인사를 다니고 올라왔습니다. 이제 제 부족한 점을 반성하고, 나 자신을 좀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해 미국에 가려고 했는데….”

그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초청을 받고 집까지 구해 놨다가 국회 사무총장을 맡는 바람에 포기했다. 광주 살레시오고와 전남대 법대를 나와 1990년 사법시험(32회)에 합격했다. 노무현 정부 때 동향인 김승규 법무부 장관 추천으로 정치를 시작해 국회 법사위원장, 더민주 정책위의장·원내대표를 역임했다. 부인은 한림대 동탄병원 의사인 위희욱씨.

그는 개헌 전도사다. 91년 석사 학위 논문을 독일 의원내각제에 대해 썼다. 개헌추진국회의원 모임 간사를 맡았고 『개헌을 말한다』 등 개헌과 관련한 책도 세 권을 냈다.
취임하자마자 개헌 이야기를 꺼냈는데.
“한마디로 87년 체제는 한시적 체제였습니다. 정치권의 합리적 의사 결정보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시기를 딱 못 박지 않았지만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우선 직선 단임제로 하자고 한 겁니다. 그 한계가 이미 오래전에 드러났습니다.”
개헌이 국민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정치가 잘돼야 민생이 해결됩니다. 정치가 만날 싸우는데 민생이 되겠습니까. 정치는 만날 싸우게 돼 있습니다. 이건 거의 본능적인 대결입니다. 정치가 왜 엉망이냐. 권력구조, 87년 체제의 한계 때문에 정치가 늘 그 모양입니다.”
제도가 아니라 운용의 문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30년 경험을 해 봤잖아요. 사람을 수도 없이 바꿨습니다. 총선 때마다 50% 가까이 바꾼 게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도 달라진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게 제도 탓이라는 걸 웅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특출한 나라가 아니잖아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대통령이 승자 독식하는 제왕적 권력구조는 멕시코·한국 외에 거의 없습니다. 미국은 연방제고, 칠레는 개헌하기로 했고, 나머지 29개 국가는 거의 의회가 중심입니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 때 국민 투표로 결정하자고 했는데.
“저는 의원이 되고 나서 개헌을 주장했는데요. 많은 의원이 그렇게 해 왔습니다. 청와대에서도 늘 개헌을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되자마자 개헌은 안 됩니다. 대통령은 권력이 셀 때 놓고 싶지 않습니다. 임기 말이 되면 새로운 대선주자 때문에 개헌 논의를 꺼낼 수가 없습니다. 늘 그렇게 해서 지난 12년 동안 뒷방에서만 무성하게 개헌 논의가 있었습니다. 또 대선공약을 해놓고 아무것도 안 되지 않았습니까. 내년 4월이 넘어가면 레임덕이 와요. 유력한 후보들은 대통령 레이스를 시작합니다. 그러니 마지노선이 내년 4월 재·보선 선거 때까지입니다.”
내각제를 지지하던데 국민 여론은 대통령 중임제가 압도적입니다.
“물론 국민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권력구조를 좀 더 파악하면 충분히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미국만의 독특한 제도입니다. 독일의 헌법학자 카를 루벤슈타인이 너무나 명확하게 지적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제를 수입하는 나라는 죽음의 키스를 맛볼 것이다’.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전부 다 실패했습니다. 예외가 하나도 없습니다.”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심한데 국민이 국회에 권력을 더 주려 할까요.
“1차원적 생각입니다. 왜 국회의원이 불신을 받을까, 그 원인을 한림대 최태욱 교수가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막연한 신진대망론을 버려야 한다’. 늘 신진으로 채웠지만 정치는 더 나빠지고 있잖아요. 물이 썩고, 수초가 썩었는데 물고기만 바꾼 겁니다.”
문재인 전 대표도 부정적이지 않나요.
“문 전 대표도 총론적으로 개헌에 동의합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계신데, 개헌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18대 때는 국회 자문위에서 개헌안까지 냈는데도 왜 성공하지 못했습니까.
“청와대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말기 제가 법사위원장일 때 이재오 의원이 찾아왔습니다. 개헌하자고. 이명박 대통령도 이 제도하에서는 대통령 하기 굉장히 어렵구나, 그래서 그때 청와대가 하려고 했는데 이미 유력한 주자가 있었잖아요. 박근혜 당시 당 대표.”
이번에는 될까요.
“청와대 속을 알지 못하지만… 지금은 의회구조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야당이 다수가 됐죠. 우리 쪽도, 새누리당도 압도적으로 찬성입니다. 청와대도 1년6개월 동안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레임덕은 내년이면 그냥 오게 돼 있습니다. 청와대도 이제 대통령이 일을 하기 어려운 권력구조라는 걸 아실 때가 됐다고 봅니다.”
개헌의 방아쇠는 뭡니까.
“청와대죠. 김종인 대표도 특위 제안하고, 박지원 대표도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만 약간…. 아직도 청와대와 교감이 충분하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청와대가 ‘괜찮아’라고만 해도 논의가 봇물 터지듯 할 겁니다.”
개헌한다면 범위는.
“30년 된 낡은 체제니까 기본권, 특히 정보통신·환경에 관한 기본권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반영돼야 할 것 같습니다. 권력구조는 물론이고 선거제도도…. 그래야 1당 독재가 안 됩니다. 그다음에 지방분권, 지방분권이 제대로 안 돼 있습니다.”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거나 분원을 설치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법안이 나왔는데 능률적인 국회를 하려면 일부 가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회 전체가 옮기는 건 별개 차원에서 다뤄야 합니다.”
 
 

그는 2013년의 한 조사를 인용해 OECD 34개국 가운데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가 터키, 그다음이 한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아렌드 레이파트 교수가 갈등이 심한 나라의 권력구조에 대해 쓴 논문을 인용했다.

“그는 협치(協治)로, 거버넌스 체제로 가야 한다고 합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갈등이 많은 나라였습니다. 의회민주주의를 하기 쉽지 않은데 건설적 불신임제도를 만들었습니다. ”

그는 “독일의 번영은 제도의 우수성 덕분”이라며 “우리도 우수한 민족이지만 제도의 한계가 30년 동안 누적돼 왔다. 이제 청산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개헌 제의, 차기 후보들이 외면

개헌 논의가 시작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2007년 1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로 ‘원포인트 개헌’을 제의했다. 대통령 임기를 5년 단임에서 4년 중임으로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87년 체제라 불리는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전리품이다. 체육관 선거로 민의와 다른 대통령을 뽑던 5공 헌법을 폐기했다. 직선제 투쟁을 이끈 양 김씨(김영삼·김대중)가 임기를 마치자 바로 개헌론이 제기된 것이다.

87년 개헌 때는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와 대선에 실패하더라도 재도전 기회를 갖겠다는 1노3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5년 단임에 쉽게 합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려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9년 9월 언론 인터뷰 , 2011년 2월 신년 좌담회에서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임기 초에는 개헌에 휘말려 국정 장악력을 잃을까 걱정하고, 임기 후반 개헌을 꺼내 들지만 차기를 노리는 후보들이 묵살해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 제의는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반발했다. 18대 국회 초반에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이명박 대통령 제안은 박근혜 후보가 외면했다.

18대 국회 와 19대 국회는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고 개헌안도 마련했다. 과반수를 훌쩍 넘는 국회의원이 매번 개헌추진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진척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지난 21일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안효성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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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