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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 “가위로 면 자르지마” “메밀 함량 낮다” 시시콜콜 아는 체 하는 ‘면스플레인’

요즘 음식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핫하게 언급되는 아이템이 평양냉면이다. tvN ‘수요미식회’ 등 주요 음식프로그램에서 잇따라 조명되고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도 가장 ‘인증샷’이 많이 올라오는 음식이다. 성시경·존박·정재형·이적 등 다수 연예인이 ‘평냉(평양냉면) 중독자’임을 선언한 건 벌써 옛날 얘기다. 반면 너무 핫하다 보니 이 때문에 냉면을 편히 즐길 수가 없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너 설마 비빔냉면 먹니?” “가위로 면 자르지마” “식초 겨자는 죄악이야”…. 최근 ‘정말 듣기 싫은 평양냉면 힙스터들의 ‘면스플레인’ 5선’이라는 기사(허핑턴포스트코리아)가 지적한 대표적인 훈수들이다. 여기서 ‘면스플레인’이란 냉면에 대해 자꾸 가르치려 드는 자세나 마음가짐을 비꼬는 말이다.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의 패러디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를 결합한 ‘맨스플레인’은 남자가 여자에게 잘난 체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설명하는 경향을 일컫는다. 이 밖에 “이 집은 메밀함량이 낮다”고 폄하하거나 자기만의 평양냉면 맛집 순위를 과시하는 행위 등이 ‘면스플레인’의 대표 사례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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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이 가장 핫한 음식이 되면서 ‘미식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있다(촬영협조 강서면옥).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음식 맛을 즐기고 바르게 먹는 법을 따지는 건 유별나거나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냉면, 특히 평양냉면을 두고 최근 ‘면스플레인’이란 말이 등장한 이유가 뭘까.

대개의 별미는 취향 차이를 인정하고 용인한다. 예컨대 삭힌 홍어가 그러하다. 그런데 평양냉면에선 취향 차이가 ‘맛을 안다/모른다’로 치환된다. “평양냉면 맛을 알아야 진정한 미식 고수”라는 식이다.

이렇게 된 데는 일차적으로 평양냉면 자체의 매력이 있다. “빨래를 빨고 난 물 같다”는 첫인상은 잠시. 차가운 육수 국물에 메밀향이 살아 있는 면발을 거듭 흡입하다 보면 ‘평뽕’(평양냉면을 마약에 빗대는 말)에 빠져들게 된다는 게 예찬론자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대미필담(大味必淡)’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맛이란 반드시 담백하다’는 뜻. 대신 단번에 깨우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이 먹어 본 사람만이 맛을 논할 자격을 얻게 된다.

나아가 평양냉면은 한국 대중음식 가운데 드물게 ‘원조’와 ‘계파’를 따질 수 있는 음식이다. 소위 3대 평양냉면집으로 불리는 우래옥·의정부평양면옥·장충동평양면옥이 서울에 문을 연 것은 채 70년이 되지 않는다. 1940~50년대 해방과 전쟁을 전후해 월남한 실향민들이 ‘맛의 원조’다. 이들 자녀대에 이르러 을지면옥·필동면옥 등이 생겨났으나 혈연으로 계보도가 그려질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특성은 음식의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켜줄 뿐 아니라 호사가들에게 좋은 ‘배틀 소재’가 된다. 예컨대 최근 신흥 강자로 떠오른 ‘진미평양냉면’이 과연 ‘청출어람인가, 미투(Me too) 식당인가’ 하는 식이다. 진미평양냉면은 논현동 평양면옥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던 임세권 사장이 지난 3월 강남구 논현동에 차린 곳이다. 진미 역시 장충동파의 원조 장충동 평양면옥의 가풍을 이어 ‘깔끔한 육수+심플한 고명’을 고수한다. 냉면 순례객들은 장충동파의 다른 가게들, 즉 ‘평양면옥 도곡점’과 ‘평양면옥 분당점’까지 아우르며 다섯 곳 중 어디가 제일인지를 두고 입씨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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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이 가중되면 즐기면서 먹어야 할 음식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 격상된다. ‘미식 피로감’이 쌓인다. ‘면스플레인’은 이런 푸디(foodie)들에 대한 반발심리다. 푸디란 좋은 음식을 즐기는 정도를 넘어서서 먹는 것에 대한 숭배가 지나친 사람을 뜻한다. 이데올로기 수준으로 발전하면 ‘푸디즘(foodie-ism)’이 된다. 식탁 위 대화는 ‘어디가 더 맛있다, 진짜다’는 식의 정보 공유에 국한되고 식탁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미식 전도 대상’이 된다. 영국 칼럼니스트 스티븐 폴은 이런 ‘푸디즘’과 관련해 19세기 말 시인 W S 길버트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경고했다. “식탁 위에 무엇이 올라오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의자 위에 누가 앉는지가 중요하다.”(『미식 쇼쇼쇼』, 따비,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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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평양냉면 맛을 즐겨서라기보다 트렌드를 무분별하게 추종하는 데 대한 비판도 깔려 있다. 강남 일대 유수한 식당들을 돌면서 올리는 ‘평냉투어 인증샷’이 ‘연예인 맛집 따라잡기’에 다름 아니라는 시각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파인다이닝 문화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에서 한식, 특히 평양냉면이 팬시한 음식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불황에 따라 ‘작은 사치’, 즉 스몰럭셔리(small luxury)가 주된 소비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음식에선 평양냉면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이것이 ‘면스플레인’을 초래하게 됐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평양냉면집 의정부파·장충동파로 갈려…육수·면발·고명 달라

서울의 평양냉면집은 크게 의정부파와 장충동파로 나뉜다. 1969년 경기도 연천에서 문을 열었다가 87년 현 위치로 옮겨 온 의정부 평양면옥은 의정부파의 원조다. 이북 출신 창업주의 대를 이어 지금은 아들이 운영 중이다. 두 딸이 각각 개업한 곳이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이다. 같은 계열로 본가 평양면옥(논현동)이 있다.

장충동파는 85년 개업한 장충동 평양면옥을 원조로 한다. 여기서 갈라져 나온 게 평양면옥 논현점·도곡점·분당점이고, 최근 문을 연 진미평양면옥은 논현점의 주방장이 독립해 세운 것이다. 의정부파·장충동파 계열은 육수나 면발의 차이는 물론 고명도 다르기 때문에 냉면 좀 먹었다 하는 이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만 보고도 어느 가게인지 맞힌다.

현존하는 서울의 평양냉면 집 중 가장 오래된 곳은 ‘우래옥’이다. 평양에서 ‘명월관’이라는 이름으로 영업하다 46년 서울로 옮겨 왔다. 처음엔 ‘서북관’이었다가 전쟁 후 다시 열면서 지금의 이름이 됐다. 서소문에는 60년대 이후 ‘강서면옥’이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51년 1·4후퇴 때 이북 강서고을에서 내려와 평택에서 시작한 가게가 옮겨 온 것이다. 한편 2011년 문을 연 판교의 ‘능라’는 창업주가 작고한 실향민 출신 부친의 수첩에서 육수 레시피를 발견했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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