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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쓰러지고 상처 받고 지친 영혼들을 위한 편지!


지난 밤 바람에 떨어진 엄지손톱만한 어린 감은 무심한 발길에 밟혀 반쯤 으깨져버렸다. 벌레 등쌀에 못이겨 떨어진 살구는 땅바닥에서도 노랗게 색이 익어간다. 아마도 수분이 잘못된 탓에 콩 알만한 작은 몸집으로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 은행은 이미 열매 자루가 말라 비틀어진 꼴로 나무 밑둥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병든 몸으로 떨어진 산수유는 죽어서도 검은 반점이 커져가고 있다.

조로증에 걸린듯한 자두는 작은 몸집에 살이 채 오르기도 전에 붉게 익어 떨어지고, 뱃 속 태아를 닮은 모과는 겨우 어린 아이 새끼 손가락 크기에 생을 마감했다. 어린 복숭아의 솜털은 아이에게 입힌 어른 옷처럼 어색하고, 아스팔트로 떨어진 매실은 상처가 누렇게 말라가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 반만 익어가는 오디는 바람을 이기지 못해 떨어지고, 오래전에 떨어져 쭈글쭈글 말라가는 버찌는 그래도 붉은 빛을 잃지 않았다.

채 익기도 전에 나무로부터 버림받은 낙과들이 발길에 채인다. 조용히 시간이 흘러 시나브로 땅속으로 스며들면 좋으련만, 떨어지며 여기저기 부딪혀 상처도 나고, 어쩌다 화단을 벗어나 떨어진 녀석들은 채이고 밟혀 온전한 모습 유지하기도 버겁다.

똑같은 크기의 꿈을 꾸며 한 날 한 시 한 나무에서 꽃으로 피고, 같은 바람 같은 꿀벌 발길 따라 수분되어 열매로 맺혔건만, 비바람 이기지 못하고, 혹은 병해충 등쌀에 굴복해 꿈을 접은 안타까운 녀석들이다.

누구에게 꿈은 화려한 현실이 되고, 또 누구에게 꿈은 끝내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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