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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해우소와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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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며칠 전 집에 있는 변기가 막혔다. 아내가 계란 껍데기를 잘못 넣은 탓이다. 퇴근 직후 아파트 관리실에 달려가 ‘뚫어뻥’을 구해 문제를 해결했다. 속이 시원해졌다. 무엇이든 인간은 막히면 곤란하다. 몸이 아프고 심할 경우 병이 난다. 배설의 문제는 특히 그렇다. 자연스러운 순환이 핵심이다. 어디 신체뿐이랴. 사회도, 정치도, 경제도 “소통, 소통”을 외치는 이유다.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 근심을 푸는 곳, 절간의 화장실을 가리킨다. 지금이야 여느 사찰을 가도 쉽게 만나는, 마치 보통명사처럼 굳어진 단어 같지만 그 역사는 길지 않다. 근대 한국 불교의 고승이었던 경봉(1892~1982) 스님이 6·25전쟁 직후 만든 말로 전해진다. 스님은 통도사 극락선원의 소변 보는 곳에 휴급소(休急所), 큰일 보는 데에 해우소라는 팻말을 붙여놓았다고 한다. 지금 돌아봐도 빼어난 언어감각이다.

그 해우소가 요즘 ‘적우소(績憂所)’가 된 모양새다. 한류스타 박유천의 잇따른 성폭행 논란 때문이다. 사건이 모두 화장실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일었다. 박씨와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들이 맞고소를 하고 경찰이 대규모 수사팀을 꾸릴 만큼 파문이 커졌다. 스타라는 이름값과 화장실이라는 묘한 공간이 겹치며 온갖 억측과 루머가 쏟아졌다.

사실 화장실도 20세기 후반의 산물이다. 뒷간·측간·잿간 등으로 불리다가 일제 강점기 변소를 거쳐 1970~80년대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정착된 말이다. 화장실 문화라는 말도 생겼다. 최근에는 으리으리한 욕조, 번쩍이는 변기 등 부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처럼 격상되기도 했다. 일례로 지난달 초 이탈리아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공중화장실에 황금변기 ‘아메리카’를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남과 다른 나를 보여주려는 현대인의 ‘과시적 소비’에 대한 일침이었다.

‘박유천 사태’도 그런 휘청거리는 시대의 한 단면이다. 돈과 폭력, 성과 뒷거래의 연결고리가 볼썽사납다. 거기에 춤을 추는 대중의 선망과 질시도 구린내 난다. 해우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한마디씩 보태는 수좌·신도들에게 경봉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 “ 다급한 마음 쉬어 가고, 근심 걱정 버리라고 한 말이야. 그게 자신을 찾고 도를 닦는 거야.” 우리들 중생이야 도와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더는 출렁대지 않았으면 한다. 수사 결과를 차분히 기다려보자. 그게 우리의 속을 뚫어주는 화장실의 진면목을 되찾는 길이다.


박 정 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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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