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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만에 봉인 풀리는 ‘구로을 투표함’

29년 전 ‘구로구청 농성사건’의 발단이 됐던 투표함의 봉인이 풀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다음달 14일 한국정치학회 소속 학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987년 13대 대선 당시 서울 구로을 선거구 부재자 우편투표함을 개봉하기로 20일 결정했다.

이 투표함은 대선이 치러진 87년 12월 16일 오전 11시30분쯤 구로을 선관위 관계자가 개표소로 옮기던 중 그 안에 부정 투표용지가 들어 있다고 확신한 시민들이 몰려들어 빼앗아 간 함이다.

당시 시위 시민들은 “부정 투표의 증거물인 투표함을 지키겠다”며 구로을 선관위가 있는 구로구청을 점거하고 40여 시간 동안 농성을 벌였다. 결국 경찰이 투입됐고, 이 사건으로 무려 1000여 명이 연행돼 이 중 200여 명이 구속됐다. 구속됐던 당시 평민당원 문광일(51)씨 등 3명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후 선관위는 이 투표함을 자체 수장고에 봉인된 상태로 그대로 보관해 왔다. 투표함에는 4325표가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당선자와 2위 김영삼 후보 간 표 차는 194만여 표로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봉인을 뜯지 않은 채 보관돼 왔다고 한다.

이번에 선관위가 한국정치학회의 연구를 위해 개봉 요청을 받아들인 것은 부정 선거 의혹에 대한 해묵은 논란을 해소하려는 차원이다. 선관위는 “ 선진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공정한 진위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구로구청 농성사건은 민주화를 갈망하던 시민들이 오해를 하면서 벌어진 일일 뿐 선관위가 부정 선거에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29년 만에 증명해 보이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정치학회는 문제의 투표함에 부정 선거의 흔적이 있는지를 면밀히 조사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중앙대 손병권(정치국제학과) 교수를 연구책임자로 하는 연구진을 구성했다.

남궁욱·이지상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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