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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화요일] '모든 길은 모바일로' WP 체질 바꾼 베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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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저스

“왜 나일까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신문 산업은 하나도 모르는데. 그러자 돈(도널드 그레이엄, 당시 워싱턴포스트 CEO)이 그러더라. 신문 산업을 아는 사람은 여기 많다고. 인터넷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아마존 창업자의 미디어 혁신

지난달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워싱턴포스트(이하 WP)와의 인터뷰에서 제프 베저스가 한 말이다. 1990년대 중반 아마존을 창업해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키워낸 그는 2013년 8월 오랜 소유주 그레이엄 가문으로부터 WP를 인수한다고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WP는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미국 대통령을 낙마시킨 전무후무한 신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매출 감소로 경영난에 시달리는 신문이었다. 3년이 채 못 된 지금 WP는 다시 떠올랐다. 140년 역사를 지닌 전통적 매체가 21세기 디지털 혁신을 실현하는 사례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베저스 인수 이후 WP의 성적표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는 디지털 순방문자(UV· Unique Visitor)의 가파른 증가다. WP의 월간 UV는 지난해 10월 사상 처음으로 뉴욕타임스(NYT)를 앞질렀다. 다른 언론에 ‘베저스 효과’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계기다.

WP는 그 사이 모바일 앱을 새롭게 출시하고, 기사마다 제목 유형을 달리해 이용자 반응을 실험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온라인 뉴스레터 역시 개인화를 시도했다. NYT와 달리 ‘워싱턴 지역지’를 고수하던 방침도 버렸다. 전국판을 펴내고, 각 지역 신문사와 제휴해 해당 신문 독자가 이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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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를 인수한 건 아마존이 아니라 베저스 개인이었지만, 아마존 프라임 회원에게도 온라인 6개월 무료 구독이라는 유인책을 썼다. WP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사·동영상·데이터 등을 고루 처리할 수 있는 디지털 제작 시스템(CMS·Content Management System)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아르크(Arc)’로 명명된 이 시스템은 대학신문들에 무료로 배포하는 시험 단계를 거쳐 현재 유료 판매 중이다. 기술혁신에 대한 베저스의 집착은 WP의 앱이 너무 느리다는 이용자 e메일에 대한 대응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2초 정도로 줄일 수 있다’는 담당자 답변에 곧바로 ‘1000분의 1초’를 요구했다는 일화가 있다.

반면 보도 내용이나 방향에 대해서는 ‘불간섭’이 원칙이다. 베저스는 인수 이후 WP 편집국을 처음 방문한 자리에서 “나에 대해, 아마존에 대해 마음대로 쓰라”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현재 WP의 편집국장은 탐사보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등으로 미국 언론계의 큰 존경을 받는 마틴 배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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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베저스가 인수한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말 새로운 사옥으로 이전했다.


보스턴 글로브지의 가톨릭사제 성추문 탐사보도를 소재로 한 영화 ‘스포트라이트’ 덕에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진 그는 영화에서처럼 2000년대 초부터 10여 년간 보스턴 글로브 편집국장으로 일하다 베저스의 인수를 반년 앞두고 WP로 옮겼다. 배런이 옮겨온 뒤 WP가 퓰리처상 중에도 주요 부문인 공공서비스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것은 요즘 WP의 위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다.

배런은 베저스의 인수 이듬해 공개 강연에서 “(보스턴 글로브를 포함해) 지금까지 14년을 편집국장으로 일하며 인력감축·예산절감을 고민하지 않은 건 올해가 처음”이라는 말로 WP의 분위기를 전했다. 베저스는 인수 이후 WP에 최소 수백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덕분에 기자도 100명가량 늘었다. 주로 디지털에 능숙한 젊은 세대를 채용했다.

물론 이 모든 변화가 오직 ‘베저스 효과’만은 아니다. 지난달 SBS서울디지털포럼에 연사로 내한한 WP 제품·디자인 디렉터 조이 마버거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프(베저스)가 마법적인 아이디어를 낸 덕분이 아니라 모두가 합심해 어려운 문제를 푼 결과로 디지털 방문자 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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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 편집국장 마틴 배런(왼쪽)과 베저스.


그는 특히 모바일 방문자 급증에 대해 “모바일 이용자가 급격히 많아진 추세를 잘 이용해 WP가 모바일 투자를 많이 했다”며 “모바일에 특화된 콘텐트를 많이 만들었고, 모바일 앱을 빠르게 구축했고, 디자인도 모바일에 딱 맞게 심플하게 했다”고 전했다. WP는 모바일용으로 고전적인 형태의 기존 앱뿐 아니라 잡지 같은 느낌이 나는 앱도 운영하고 있다.

WP가 방문자 수를 늘리는 데 힘을 쏟는 이유는 흔히 ‘깔때기’ 이론으로 설명된다. 깔때기의 맨 위에는 SNS 등을 통해 어쩌다 WP를 방문한 이용자가, 맨 아래는 기꺼이 구독료를 내는 정기구독자가 자리하는 중층적 구조다. 깔때기 상단의 유입을 늘려 점진적으로 맨 아래 충성 독자, 즉 온라인 유료 독자를 늘리려는 전략이란 것이다.

사실 베저스의 인수 이후 WP는 온·오프 유료독자 숫자나 매출을 공개한 적이 없다. WP는 베저스의 개인 소유다. 다른 주주에게 경영정보를 공개해야 할 의무도, 다른 주주가 요구하는 단기 실적에 치중할 이유도 없다. 이런 소유 구조는 베저스 특유의 장기적 안목에 따른 투자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로도 꼽힌다.

베저스의 행보는 WP 인수 직후만 해도 괴짜 부자의 기행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갈수록 아마존을 성공시킨 전략과 비교되는 중이다. 예컨대 아마존의 무료 배송 확대, 킨들의 낮은 전자책 가격 등은 단기 실적을 위협하는 결정이었지만 결국 장기적 안목에서 아마존을 키운 동력으로 평가받는다. WP가 자체 개발한 ‘아르크’를 외부 판매하는 것 역시 기술기업으로서 새로운 수입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마존 웹 서비스에 비견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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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저스 인수 이후 WP의 변화는 학계에서도 주목거리다. 미국 노스이스턴대 댄 케네디 교수는 최근 관련 연구보고서를 통해 ‘개인 소유의 장점’ ‘커지는 것의 가치’ ‘기술이 핵심’ ‘변화를 위한 변화를 하지 않은 것’ ‘통제할 수 없을 때도 변화를 포용한 것’ 등 다섯 가지를 베저스의 WP에서 다른 미디어가 배울 수 있는 시사점으로 꼽았다.

베저스는 수차례 WP에서 자신의 역할을 활주로를 놓는 것에 비유해 왔다. 미국의 다섯 번째 부자인 동시에 치밀한 사업가인 베저스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의 무한정 투자를 계속할 리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활주로 건설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후남·이정봉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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