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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비밀금고·여비서 다이어리 눈에 불켜고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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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26일 오전 7시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와 원효로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글로비스 압수수색팀은 사장실이 있는 9층으로 향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보여주고 서류를 담기 시작했다.

과거엔 영장 없이 포괄적 압수수색
최근 피의자 보호 위해 선별적으로
유심칩까지 압수해 사생활 침해 논란


현장을 지휘하던 검사가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수사관들에게 책장을 치우라고 했다. 책장을 치우자 드러난 벽면을 지휘 검사가 한 손으로 밀자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벽면이 스르르 문처럼 열리더니 대형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사 옆에 서 있던 글로비스 직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열쇠 수리공을 불러 연 금고 안에는 50억원의 현금과 각종 경영보고서, 회계장부가 들어 있었다. ‘현대차 비자금 사건’ 수사 착수의 신호탄이었다.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검사는 “현대차 퇴직자가 제보한 내용인데 눈으로 확인할 때까지 반신반의했다”며 “비밀 공간이 확인되는 순간 수사 성공을 예감했다”고 기억했다.

#지난 10일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이 팀을 나눠 서울 소공동 롯데그룹 본사 등 17곳으로 향했다. 오전 9시, 압수수색 영장을 손에 쥔 검사들을 선두로 약 240명의 수사관들이 수색을 시작했다.

롯데그룹 임직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롯데는 국내 최고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로 즉시 연락했다. 내로라하는 검사 출신 거물급 변호사들이 소집돼 대책 회의를 열었고 일부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다른 사건으로 외부로 향하던 변호사에게도 “롯데 압수수색이 시작됐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가 날아갔다. 이날 검찰은 임직원 휴대전화 100여 대를 압수했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13일 검찰은 신격호(95) 총괄회장의 전 비서실장 이일민(57) 전무의 서울 목동 처제 집에 수사관들을 급파했다. 이 전무의 자백을 받은 직후였다. 거기서 서류 뭉치와 현금 35억원이 발견됐다. 이 전무 입을 통해 비서진이 머무는 롯데호텔 33층의 별도 객실 하나가 기업의 기밀 자료 보관에 사용된 사실도 확인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14일에는 계열사 등 15곳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여기에도 검사와 수사관 100여 명이 투입됐다.

압수수색은 전쟁이다. 범죄 혐의를 잡으려는 검찰과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하는 대기업 등 피의자 간의 피 말리는 싸움이다. 검찰 입장에선 무조건 많은 자료를 확보했다고 좋은 건 아니다. 피의자 측에서 악~ 소리가 날 정도의 핵심 자료 입수가 관건이다. 피의자는 필사적으로 자료를 숨기거나 없애려 한다. 이 과정에서 조직적인 증거인멸이 나타나기도 한다.

압수수색의 성패에 따라 수사의 성패도 갈린다. 과거 성공한 수사는 대부분 1차 압수수색에서 비밀금고나 장부, 회계 부정이 담긴 자료를 확보한 경우다. 대표적 사례가 2008년 대검 중수부가 수사했던 ‘박연차 게이트’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의 정·관계 로비 사건 수사 때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여비서의 다이어리는 이후 기소된 정치인들이 유죄를 받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수부 출신의 한 부장검사는 “당시 재판에서 현금 출금 기록과 시간대별로 기록된 일정이 (박연차 회장) 진술의 신빙성을 담보했다”고 평가했다.
 
압수수색의 진화

과거 압수수색 방식은 영장과 상관없는 피의자 체포에 따른 포괄적인 압수수색이 대세였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피의자 권리 보호가 강화되며 영장에 의한 제한된 압수수색으로 변했다. 디지털 자료가 급증하며 지난해부턴 당사자의 참여권이 최대한 보장된 상태에서 선별해 압수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1990년대까지 압수수색은 사실상 법원의 영장 없이 이뤄졌다. 혐의자를 긴급체포하면 영장 없이 수색과 압수가 가능했다. 자료 전체를 무작위로 가져오는 먼지떨이 식이 주였다. 이를 통해 피의자의 기선을 제압해 자백을 받으려는 의도가 강했다.

긴급체포 후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에 넣을 증거와 법리를 구성해야 하니 심리적 압박으로 자백을 받는 게 훨씬 수월했다. 따라서 압수물 분석은 형식에 불과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수수사 경험이 있는 한 부장검사는 “당시엔 긴급체포서 한 장 들고 사무실 자료를 몽땅 털어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90년대 대검 중수부 수사를 받았던 A씨(60)는 “포괄적 압수수색을 통해 나와 관련된 모든 걸 알고 있는 검찰의 질문에 ‘아니오’라고 답하는 게 어려웠다”며 “함께 조사받았던 동료는 자살까지 고민했다”고 했다. A씨는 이후 2000년대에도 경영권 분쟁으로 수사를 받았다. 그는 “당시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가족들의 정보가 모두 검찰 손에 있어 조사 중 불편한 상황이 와도 미움을 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했다.

피의자 권리 보호가 강조되면서 압수수색은 ‘며느리도 모르게’ 범죄 정보를 수집한 뒤 법원 영장을 받아 확보한 자료를 맞춰보는 식으로 진행된다. 내사 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다.

최근 들어선 사생활 보호 문제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검찰은 지난 8일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대우조선해양 사건 압수수색에서도 수십 대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롯데그룹에 이어 휴대전화 분석 건수가 몰리면서 대검의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도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타인에게 공개할 수 없는 개인의 사생활이 담긴 내용부터 수사와 관련 있는 내용까지 뒤섞여 있어서 분석 속도가 더디다고 한다. 업무에 지장이 많다는 기업 측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반면 검찰 측은 롯데가 자초한 측면이 강하다고 반박한다. 한 수사 관계자는 “조직적으로 증거인멸 정황이 드러나 대규모 압수가 불가피했다. 과거 포괄적으로 압수수색해 사생활을 파헤치거나 별건 수사하던 시대와 달리 압수수색에 제한을 많이 받고 있다. 수사 대상자가 이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법원의 엄격한 법해석도 압수수색 관행에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대법원은 디지털 증거를 확보하며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혐의를 벗어난 자료를 확보해 수사했다면 위법하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놨다. 이 판결로 디지털 파일을 압수할 땐 현장에서나 또는 수사기관에서 당사자나 변호인이 참여해야 하고, 파일이 섞여 있다면 검찰이 마음대로 파일을 골라 압수하지 못하게 됐다. 압수물에서 드러난 새로운 범죄 단서를 별건 수사에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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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의 해당 판결을 비롯해 압수수색의 증거능력 등에 대한 판결은 과거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대한 부작용을 반영한 것으로 폐쇄적이고 기소독점주의로 견제받지 않는 검찰권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 현실이 4~5년 전보다 상당히 어려워졌다. 별건 자료에 대해 하나하나 영장을 받아야 하는 고충이 있다”고 했다.
 
자기장으로 파일 삭제, 하드 복구 기술 개발디지털 증거 전쟁

요즘 대형 수사의 성공 여부는 e메일, 전자 문서, 동영상 등의 디지털 증거를 어느 정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디지털 시대의 한 단면이다.

기업의 대용량 서버에는 엄청난 양의 자료가 담겨 있다. 검찰은 그중 필요한 부분만 선별해 압수할 수 있는데 구분이 쉽지 않다. 기업은 중요 파일을 엉뚱한 이름으로 저장해 놓거나 다른 종류의 폴더에 숨겨 놓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검찰은 회사 메신저에서 자주 사용된 용어나 직원들의 은어를 단서로 필요한 파일을 찾는다.

수사에 대비해 파일을 삭제하거나 PC의 하드디스크를 포맷해 증거를 숨기는 피의자도 많다. 검찰은 이를 복구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데 복원이 온전히 되지 않는 때도 많다.

다단계 사기 조희팔 사건에서 5조원대 매출액이 특정된 건 수사 시작(2008년) 8년 만인 올해 4월이다. 대검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가 개발한 새로운 하드디스크 복구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최근 디지털 증거 은닉에는 강력한 자기장을 가해 자료를 지우는 디가우징(Degaussing) 방식이 주로 사용된다. 법조비리 사건으로 구속된 최유정 변호사가 검찰 수사에 대비해 사무실 자료를 삭제한 방식이 이 방법이다.

스마트폰을 놓고 벌이는 싸움도 치열하다. 검찰은 문자 메시지 등을 확보하기 위해 피의자 체포 즉시 스마트폰을 압수한다. 하지만 범죄인들은 붙잡히기 직전에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 놓거나 유심칩을 빼 화장실에 버리기도 한다.

오이석 기자 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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