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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정조와 책가도 병풍


?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이정민입니다.


? 지난 주말,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18-19세기 조선의 궁중화·민화를 모은 '문자도(文字圖)-책거리(冊巨里)전'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삼성 미술관 리움·현대화랑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작품 58점을 한데 모아 기획한 전시회입니다.? 인상적인 건 책가도(冊架圖)였습니다. 서가에 책이 진열돼있는 모습을 문방사우·자기·향로·다기 등과 함께 그려넣어 마치 실제 서재에 있는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그림을 책거리라고 하는데,그중에서 서가로만 구성된 걸 책가도라고 부릅니다. 조선 후기,사대부들 사이에서 책가도를 병풍으로 만들어 실내를 장식하는게 유행했고,19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책과 함께 청나라 도자기 같은 외국의 진귀한 물건들을 곁들인 민화가 유행했다고 하는군요. ?? 자로 대고 그은듯 반듯하게 정렬돼 있는 선과 면,빨강·파랑등 과감하고 화려한 원색의 배합,실제인듯한 착시-.작품 하나 하나를 보고 있노라면 경이로움과 황홀경에 빠져드는 묘한 매력에 압도됩니다. 책에 곁들여 그림의 장식으로 쓰인 도자기·향로·붓과 벼루등 이국의 진귀한 물건들로 시선을 옮겨가며 수수께끼 풀듯 하나씩 관찰해보는 재미 또한 꽤 쏠쏠합니다. ?? 소개 책자를 보니 책가도의 원류를 16세기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 저택의 서재(스투디올로,studiolo)에서 찾고 있더군요. 학문과 예술을 후원해 피렌체의 르네상스가 꽃피게 한 메디치 가문이었으니 세상의 온갖 진귀한 골동품과 예술품,좋은 책들로 넘쳐났을 그 서재는 얼마나 장관이었을까요.? 이런 호사스런 문화를 조선에 확산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조선의 22대 왕,정조였다고 합니다. 정조는 어좌 뒤에 놓여있던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책거리 병풍을 세웠답니다. 미술사가들이 정조와 책가도의 관계를 보여주는 실록의 기록을 찾아냈는데,그 일부를 인용해보겠습니다. ??? "어좌 뒤의 서가를 둘러보며 대신들에게 이르길 '경들도 보이는가?' 하시었다. 대신들이 '보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웃으며 하교하기를 '어찌 경들이 진짜 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책이 아니라 그림일 뿐이다.' 예전에 정이가 이르기를,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 개혁군주이자 문예군주였던 정조가 책가도에 빠져든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새벽닭이 울 때까지 책을 읽었다'는 기록이 전해올 정도로 정조 자신이 엄청난 독서가였습니다. 또 조선은 학자들이 국가 운영의 중심 축을 담당했던 사대부의 나라였지만 지식 생태계의 핵심이랄 수 있는 책의 유통은 엄격히 통제되고 제한된 사회였습니다. 책의 생산·공급·유통을 정부가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했기 때문인데,이는 지식의 공급과 확산을 양반계급으로 제한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고려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를 발명했으면서도 인쇄술이나 서점의 발달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죠.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후 스스로 인쇄소를 차려 면죄부가 새겨진 성경을 팔아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죠. 구텐베르크 성경이 전국적으로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고,이 바람에 결국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지게된 걸 보면 지식혁명이 갖는 휘발성을 지배계급이 경계하는 건 당위적 귀결인 것 같습니다. ? 붕당정치의 제물이 된 아버지를 지켜봐야 했던 정조는 왕좌에 오르기 전부터 당쟁으로부터 벗어난 왕권의 강화와 문민 개혁을 꿈꿨습니다. 어쩌면 책가도 보급은 정조식 개혁정치의 하나인지도 모릅니다. 지긋지긋한 노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당쟁을 넘어서기 위해 지식의 유통과 확산을 꾀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정조의 꿈은 좌절되고 누대를 거치면서 손때 묻은 책가도만이 전해져,미완의 개혁군주 정조를 기억하게 합니다.

조선조 궁중화가 장한종이 그린 '책가도'?? 경기도박물관 소장품.


?? 이번주도 지구촌은 숨가쁘게 돌아갑니다. 영국에선 Brexit (영국의 EU탈퇴) 국민투표를 앞두고 EU 잔류를 주장하던 국회의원(조 콕스)이 브렉시트 이탈파에 의해 거리에서 피살됐고,미국 올랜도에 이어 프랑스 파리가 테러의 핏빛으로 얼룩졌습니다. 국내 상황도 어수선하긴 마찬가집니다. 대우해양조선의 분식 사기극,롯데 수사,맞춤형 보육 갈등,유승민 의원 복당을 둘러싼 새누리당 친박-비박계 충돌….? 중앙SUNDAY는 콕스 의원 사망을 계기로 잔류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영국내 여론 변화와 Brexit 전망을 짚어봤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북극 탐사 기획 '제7의 대륙,북극이 열린다'의 두번째 기사로 북극해가 열리면서 국가간 탐색전이 치열해지고 있는 국제정세의 변화 '신 빙하대전'도 준비했습니다. 또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나오고 있는 개헌론을 심층 보도합니다. 역대 성공한 개헌은 모두 대통령이 주도했습니다. 국회발 개헌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지,20대 국회발 개헌은 성사될 것인지,개헌의 필요충분 조건은 무엇인지 따져봤습니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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