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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금요일] 올랜도 참사현장의 AR-15, 테러 도구 될 줄이야…‘돌격소총’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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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격소총

히틀러가 1940년대 StG44에 붙인 이름 ‘Sturmgewehr’에서 유래했다. 독일어 ‘돌격’ 또는 ‘폭풍’을 의미하는 Sturm과 ‘장총’ 또는 ‘소총’을 뜻하는 Gewehr의 합성어다. 이전까지 보병의 총은 길고 무거웠으며 연속 사격 기능이 제한적이었다. 이런 문제를 독일군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결했다. 총의 무게를 줄여 보병이 들고 뛰기 편해졌다. 또 순간적으로 총탄을 퍼부어 적을 제압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돌격소총의 원조가 StG44다.

“탕! 탕! 탕!”

12일 새벽(현지시간) 총성이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를 강타했다. 타깃은 파티를 즐기는 성소수자 등이었다. 권총이나 엽총 소리가 아니었다. 여기서 나는 총성은 가슴을 강타하는 압박감이 없다. 바람 새는 느낌처럼 총소리는 금세 잦아든다.

반면 살인범 오마르 마틴(29)의 총성은 “탕!” 소리와 함께 가슴을 후벼 파는 울림을 동반했다. 군 사격장이나 전쟁의 참혹함을 극대화한 영화에서나 느낄 수 있는 충격이다. 총이 달라서다. 마틴의 손에 들려 있는 총은 AR-15였다.

낯선 총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 도시 총기 난동에도 좀체 등장하지 않은 무기다. 하지만 이름을 살짝 바꾸면 한국 남성이면 “아!” 할 수 있는 총이다. 군용 M-16 소총의 민수용이 AR-15다.

군사매체인 IHS제인스는 “AR-15엔 연발 사격 기능이 없을 뿐 성능은 M-16과 거의 같다”고 사건 직후 전했다. AR-15나 M-16은 군사 전문가들이 부르는 ‘소구경·고속탄’ 소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까지 주로 쓰인 지름 7mm대 총알 대신 5mm대 탄환을 써 소구경으로 불린다. 총알이 작아진 만큼 떨어진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탄환 속도를 극대화했다.

소구경·고속탄은 탄환의 무게가 작아 관통력이 떨어지지만 몸속을 휘젓는다. 살상력의 극대화다. 뉴욕타임스(NYT)는 “AR-15를 또 다른 범주로 분류하면 돌격소총(Assault Rifle)에 속한다”고 전했다. 돌격소총은 사격 반동이 적고 가벼워 살상력을 극대화한 전투용 소총이다. 근거리 전투 때 단숨에 총알을 집중 발사해 적을 제압할 수 있도록 최적화한 총이다. 현대 보병의 기본 화기는 대부분 돌격소총이다.

이런 전투용 병기가 요즘 미국 내 총격 사건에 자주 등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015년부터 대규모 총격사건이 8건 발생했는데 이 중 7건이 돌격소총 계열”이라고 전했다. 특히 AR-15는 2012년부터 비극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해 7월 콜로라도주 작은 도시 오로라의 영화관 총기 난사에 활용된 총이 AR-15다. 10여 명의 생명을 앗아 갔다. 다섯 달 뒤인 12월엔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총격 사건에서도 등장했다.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그 바람에 한 인물이 역사의 저편에서 걸어 나오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다. 군사 역사가인 케네디 힉먼은 개인 홈페이지에서 “히틀러가 1943년 소련군과 전투에 쓰인 총에 홀딱 반했다”며 “‘실탄을 폭풍처럼 퍼부어 적을 쓰러뜨린다’는 이유로 ‘슈트룸게베어(Sturmgewehr, 돌격 또는 폭풍 소총)’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 총이 바로 ‘StG4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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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 개발자인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왼쪽)와 M-16 디자이너인 유진 스토너가 각각 상대가 개발한 소총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사진 칼라시니코프 박물관]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그의 사상과 체제는 서방과 동유럽에선 여전히 금기다. 하지만 양쪽 진영에서 ‘돌격소총’은 정식 군사용어로 자리 잡았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힉먼은 “현재 러시아군의 AK-47과 미군의 M-16 계열의 소총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StG-44의 후손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M-16 계열은 미군의 기본 화기다. 한국군도 90년대 초반까지 병사의 기본 무장 화기였다. AK-47 계열은 동유럽·아프리카·중동 지역의 주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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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6과 AK-47은 잔혹한 살인병기지만, 탄생엔 경영학적인 혁신의 공식이 들어 있다. 두 총 모두 ‘국외자’가 개발했다. 당대 총기 디자인 세계의 주류에 속하지 않았던 인물이 만들었다. 주인공은 유진 스토너(1922~97)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다. 스토너는 항공기 정비병 출신이었고, 칼라시니코프는 탱크 정비병 출신이었다. 군대 말로 ‘주특기가 총과는 거리가 있었다’.

먼저 혁신을 이룬 쪽은 칼라시니코프였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히틀러의 StG44를 분해 조립하는 걸 반복해 두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다이어트(감량)와 대량 생산의 편리성(생산성)이었다. 그는 조국 소련의 기술력에 맞춰 히틀러의 돌격소총 부품 가운데 생산이 어려운 부분을 없애고 단순화했다. 그 결과 46년 AK-47 견본품이 나왔다.

이 총은 기술력이 없는 제3세계 국가들에는 행운이었다. 복사판을 쉽게 만들 수 있어서다. 실제 공식 생산량은 1000만 정 정도지만, 전 세계에 퍼진 수량은 7000여만 정에 이른다.

미국 디스커버리채널은 “가난한 아프리카 시골 소년의 손에 AK-47 총이 들려 있다”며 “인간이 만들어낸 살인병기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무기의 하나”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총기 혁신은 소련보다 10여 년 늦게 이뤄졌다. 스토너는 군용 항공기 제작회사가 설립한 총기 자회사 ‘아말라이트’의 직원이었다. 그는 미 육군이 2차대전 때 사용한 무거운 M-1 소총을 대신할 소총 공모에 참여했다. 그가 만들어낸 물건은 AR-10이었다. AR은 회사 이름 아말라이트(ArmaLite)의 약어다.

스토너도 칼라시니코프만큼 총기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웠다. 항공기 정비병 경험을 살려 총 몸통은 항공기 껍데기인 두랄루민으로, 덮개와 개머리판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이 때문에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군사 저술가인 고든 로트먼은 『M-16소총(The M16)』이란 책에서 “스토너의 AR-10은 50년대 후반 육군 장군들의 눈에는 터무니없는 물건으로 비쳤다”고 했다. 당시 육군 장성들은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개머리판에 총신이 긴 물건에 익숙했다. 멀찍이 떨어진 적병을 한 방에 해치울 수 있는 총을 선호했다. 이 결과 M-14가 선정됐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재킷’에서 한 훈련병이 자살할 때 쏜 총이다.

스토너는 좌절했지만 한 번의 기회가 더 찾아왔다. 미 육군이 특수부대용 소총을 공모했다. 그는 AR-10의 총구 지름을 줄이고 총알 속도를 더 높이는 개량을 해 공모에 제출했다. 그게 바로 올랜도 비극을 야기한 AR-15다. 미 육군은 이 총을 좀 더 개량해 M-16이란 이름을 붙였다.

로트먼은 “스토너는 AR-10에 쓰이는 두툼하고 무거운 실탄(직경 7mm대) 대신 가늘고 가벼운 실탄(5.56mm)을 쓸 수 있는 총을 개발했다. 살상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AR-15가 소구경·고속탄의 선구이자 ‘궁극의 살인병기’로 불리는 이유다. AR-15의 특징은 칼라시니코프에게도 영향을 준다. 70년대 칼라시니코프가 AK 구경을 5mm대로 줄이고 탄속을 높이는 개량을 한 AK-74를 디자인했다.

힉먼은 “두 사람은 경쟁과 모방을 통해 히틀러의 돌격소총을 뛰어넘는 걸작을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조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총이 테러나 총기 난동에 쓰이는 현실에서 좌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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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채널은 “스토너는 생전에 AR-15가 민간에 팔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그의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94~2004년 미국 일부 주에서는 살상력을 높인 개량형 AR-15의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이 법은 2004년 이후 연장되지 않았다. 올랜도 살인마 마틴 같은 인물들이 AR-15를 구입하기 어렵지 않게 됐다.

히틀러가 ‘실탄을 폭풍처럼 퍼부어 적을 쓰러뜨린다’며 붙인 ‘돌격소총’의 본성이 무방비 상태인 민간인을 상대로 발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 바람에 총기 역사를 바꾼 돌격소총의 운명이 앞으로 바뀔 전망이다. NYT는 “궁극의 살인병기인 AR-15 때문에 돌격소총 판매가 금지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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