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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피난 갔던 은신처서 피서 가는 안식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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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 방태산 자락의 깊고 깊은 계곡 연가리. 하늘을 가린 원시림과 시원한 폭포가 계곡 곳곳에 숨어 있다.


흉흉한 시절이다. 연일 암울한 뉴스에 탁한 공기와 무더위까지 찾아와 기운이 쭉쭉 빠진다. 이럴 때면, 잠시나마 심산유곡(深山幽谷)으로 들어가 인간사를 잊고 싶다. 아니 깊은 산, 그윽한 계곡만으로는 안 되겠다. 비경을 꼭꼭 감춰둔 오지이어야 하겠다. 강원도 인제와 홍천, 방태산(1444m) 자락에 있는 ‘삼둔사가리’ 같은 곳 말이다.

이 지역에서 ‘둔(屯)’은 산자락에 있는 펑퍼짐한 땅, ‘가리’는 밭을 일구고 살 만한 계곡을 일컫는다. 3둔(살둔·달둔·월둔)과 4가리(아침가리·명지가리·적가리·연가리)가 방태산 자락 깊은 골짜기 안에 숨어 있다. 지도를 보면 삼둔사가리가 얼마나 첩첩산중에 틀어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서울춘천고속도로 동홍천IC에서 나와 굽이굽이 산길을 1시간 반 이상을 달려야 삼둔사가리에 닿는다. 길이 좋아진 요즘도 자동차 핸들이 쉴 새 없이 춤춰야 하는 험한 산길이다. 달둔마을에 사는 김승문(80)씨의 설명이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길이 형편없었어요. 전기가 안 들어오는 집도 많았지요. 오죽하면, 당나귀는 살아도 사람 살 곳은 못된다고 하지 않았겠어요.”

삼둔사가리는 조선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등장하는 피난처다. 물과 불,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로 소개됐다. 국운이 위태했던 조선 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전국 각지에서 피란민이 소문을 듣고 찾아들었다. 밭을 낼 수 있는 한 뙈기 땅만 있어도 감자와 옥수수를 심었고, 약초와 산나물을 캐서 마을에 내다 팔았다. 재난과 외적은 피했지만 궁벽한 산골마을에서 사는 건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일각에서는 삼둔사가리를 전쟁도 빗겨간 낙원으로 묘사하는데, 잘못 퍼진 이야기다. 38선이 지척이어서 한국전쟁이 터지자마자 삼둔사가리에서 격전이 벌어졌다. 68년에는 삼척·울진으로 침투한 무장 공비 일부가 숨어들었다. 무장 공비를 일소한 뒤 박정희 대통령은 화전(火田) 정리 사업에 속도를 냈다. 화전마을이 공비의 은신처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삼둔사가리 주민 대부분이 이때 마을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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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둔사가리에서 계곡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아침가리.


삼둔사가리가 다시 주목받은 건 최근 10년 새 일이다. TV와 인터넷을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첩첩산중에 비경이 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번졌다. 이후 펜션과 별장, 캠핑장이 속속 들어섰다. 최근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재벌가와 유명인이 땅을 매입하기도 했다.

조상이 전쟁과 환란을 피해 삼둔사가리에 은거했다면, 현대인은 찌든 도시 생활에 질려 삼둔사가리를 찾는다. 옛날 같은 전란의 위협은 적지만, 하루하루 위태하고 팍팍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삼둔사가리는 어쩌면 더욱 절실한 피난처인지 모른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삼둔사가리를 다녀왔다. 맑은 물 흐르는 시원한 계곡을 걷고 싶어서였는데,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의 사연이 되레 가슴에 깊이 남았다.

사실 삼둔사가리를 소개하는 마음이 영 조심스럽다. 산과 계곡에서 야영하는 백패커가 급증하면서 자연 훼손이 심해졌다고 주민들이 입을 모았다. 혹여 삼둔사가리를 가시거든 흔적도 없이 다녀오시라 신신당부한다. 국내 최고의 무공해 오지 마을이 온전히 그 모습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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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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