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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기행] 성읍에 소식 전하던 봉수대 우뚝, 분화구 근처엔 대숲이…

| 제주오름기행 ⑥ 남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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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에도 남산이 있다. 서울에 있고 경주에도 있는, 그러니까 뿌리 깊은 도시마다 하나씩 거느린 남산이 제주도에도 있다. 고도(古都)마다 남산이 있다는 것은 남산이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는 뜻이다. 도시를 건설할 때 군사적 또는 풍수적 이유로 도시 남쪽 정면의 산을 남산으로 삼았다. 그러나 제주도는 섬이다. 이 섬에서 남산을 거느린 도시가 딱 하나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의 성읍이다. 우리에게는 성읍민속마을로 더 알려진, 관광 버스 줄지어 선 관광지 말이다. 그 성읍의 남쪽에 선 오름이 남산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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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성읍민속마을은 탐탁지 않은 여행지다. 제주도 패키지상품을 판매하는 여행사 대부분이 성읍은 꼭 들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저가 쇼핑 투어를 진행한다. 가이드의 쇼핑 강요가 이어지고, 저질 점심식사가 더해진다. 성읍민속마을 어귀에 늘어선 관광 버스를 볼 때마다 여행기자의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나 성읍은 유서 깊은 도시다. 지금 성읍은 저질 패키지관광으로 연명하는 관광지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성읍은 마을 자체가 1984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이름을 다시 보시라. 전 세계의 고도는 성읍 도시였다. 전 세계의 고도가 도시를 에두른 성을 쌓아 스스로를 지켰다. 그러나 제주 성읍(城邑)처럼 이름이 ‘성마을’로 굳어진 도시는 없다. 제주도에서 성읍의 역할과 위상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은 제주도의 행정구역을 제주목·대정현·정의현의 3읍 체제로 정비했다. 이 중에서 정의현(旌義縣)의 현청 도시가 성읍이었다. 성읍은 세종 5년(1423)부터 군현제가 폐지되는 1914년까지 약 500년 동안 제주도 동남쪽 지역의 중심 도시로 군림했다. 지금도 성읍에는 성곽을 비롯해 동헌으로 사용한 일관헌(日觀軒)과 향교에 딸린 명륜당·대성전 등이 남아 있다. 옛 가옥은 물론이고 돌하르방도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 성읍이 지닌 가치는 현재의 되바라진 꼴과 무관하게 인정하고 이해해야 한다.

 성읍 동헌 일관헌 남쪽에 남문이 서 있다. 지금은 남문과 주변 성곽이 공사중이어서 전망이 좋지 않지만, 원래는 일관헌에서 바라보면 남문 너머로 볼록 솟아오른 검은 산이 보인다. 이 산이 남산봉(179m)이다. 남산봉은 성읍이 조성되면서 이름과 역할이 부여된 오름이다. 남산봉 이전의 이름은 전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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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봉은 숲이 깊다. 숲이 깊어서 어둡다.

 
남산봉(南山峰) 이름을 다시 보자. 남산에 봉우리 봉(峰) 자를 또 썼다. 그러고 보니 제주 오름에는 ‘봉’으로 끝나는 이름이 많다. 성산 일출봉을 비롯해, 수월봉·지미봉·사라봉·서우봉·도두봉 등 소위 ‘봉 자 돌림’ 오름이 섬 전역에 흩어져 있다. 제주 오름의 ‘봉’ 자는 오름의 역할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옛날 봉수(烽燧), 다시 말해 횃불과 연기로 소식을 알리던 시절 봉수대를 세운 오름에 ‘봉’ 자를 넣었다. 봉자 돌림 오름 대부분에서 옛 봉수대의 흔적이 발견된다.

 남산봉도 마찬가지다. 남산봉 정상 부근에 봉수대가 있다. 보전 상태가 양호했고, 규모도 상당했다. 봉수대를 둘러싸고 둑을 쌓았으며 봉수대와 둑 사이에 고랑을 팠다. 둑 안쪽의 봉수대는 높이 2m 지름 32m 높이의 봉우리 모양이었다. 아쉬운 것은 수풀이 우거져 봉수대가 경주 왕릉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나무가 웃자라 정상에 올라서도 전망이 확보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읍이 보이지 않았다. 자연보호도 좋지만, 오름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면 오름의 역사와 기능에 맞는 보전과 개발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봉수대는 해안에 접한 장소나 해안으로부터 멀어야 3㎞ 안쪽 지역에 설치한다. 그러나 남산봉 봉수는 남쪽 해안으로부터 6.2㎞ 떨어져 있다. 대신 성읍과는 800m, 일관헌과는 1.1㎞ 거리밖에 안 된다. 다른 봉수대로부터 신호를 받아 성읍에 마지막 연락을 취하는 군사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지금은 봉수대에서 성읍이 보이지 않는다. 남산봉에서 동쪽으로 3.9㎞ 거리에 독자봉(159m)이 있고, 남쪽으로 4.5㎞ 거리에 달산봉(136m)이 있다. 두 오름 모두 봉수대를 거느린‘봉 자 돌림’ 오름이다.

 남산봉은 성읍이라는 행정도시가 역할과 기능을 부여한 오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남산봉과 성읍이 한 쌍으로 연상되지 않는다. 행정구역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읍은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 속하지만, 남산봉은 서귀포시 성산읍 신풍리에 들어간다. 성읍 하면 떠오르는 오름은 외려 영주산(326m)이다. 성읍 뒤편에 우뚝 선 영주산은 풍수지리학에서 성읍의 주산(主山) 역할을 한다. 조선이 한양을 수도로 삼으면서 북악산(342m)을 주산으로 삼은 것과 같은 이치다. 한양이나 성읍이나 남산의 위치와 역할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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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리 향토사학자 오문복 선생이 남산봉 보수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남산봉이 신풍리 오름이어서 신풍리 주민과 함께 남산봉을 올랐다. 신풍리도 알고 보면 흥미로운 마을이다. 세로로 긴 모양의 신풍리는 한라산 기슭 해발 1400m 지대에서 내려온 천미천 물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약 25.7㎞ 길이의 천미천은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사려니숲길에서 건너는 개천도 천미천 물길이다. 신풍리의 주민은 700여 명으로, 내륙 지역은 해발 100m 언저리고 해안 지역은 표선 바다와 접해 있다. 내륙에서는 감귤을 비롯해 메밀·감자 등을 키우고 바다에서는 소라·전복 따위를 딴다. 신풍리 향토사학자 오문복(78) 선생으로부터 마을 이야기를 들었다.

 “신풍리가 ‘신촌(新村)’이라는 뜻이잖아. 새 마을. 그럼 원래 있던 마을이 뭐겠어? 성읍이지. 성읍 관청에서 일하는 향리가 성읍 바깥에 모여 산 마을이 신풍리야.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는 하나였던 게지. 지도를 보면 신풍리가 길쭉하게 생겼어요. 천미천을 기준으로 개천 위에 있는 마을을 ‘웃내끼’ 또는 ‘웃뜨르’라고 했어. 옛날 향리가 살던 마을이어서 ‘향촌(鄕村)’이라고 불렀어. 천미천 아래는 ‘알내끼’라고 했어. 포구가 있는 마을이어서 ‘포촌(浦村)’이었지. 옛날에는 향촌하고 포촌이 잘 안 어울렸다네. 산촌하고 해촌하고 사는 방식이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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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봉의 나무를 덮은 덩굴. 인적이 드문 산이어서 천연림의 정취가 가득하다.

남산봉은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탐방로가 잘 닦여 있었고, 길이 어렵지도 않았다. 남산봉은 해발고도가 179m이었지만, 오름 어귀의 해발고도도 130m 정도였다. 비고가 50m 정도밖에 안 됐다. 오름을 한 바퀴 돌고나오는데 1시간이면 넉넉했다.
 
다만 남산봉은 인적이 드물었다. 나무가 워낙 우거져 햇볕 내리쬐는 한낮에도 뜨거운 줄을 몰랐다. 남산봉의 숲은 밀도가 높아서 명도가 낮았다. 성읍에서 남산봉이 검은 산처럼 보이는 이유였다. 오름에는 소나무가 많았고, 드문드문 보리수나무와 편백나무가 보였다. 나무마다 온갖 종류의 덩쿨이 휘감고 있어 인적 드문 숲의 정취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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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봉 분화구 안쪽의 대숲. 분화구에 대숲이 있는 오름은 드물다.


인상에 남는 것은 분화구 근처에 조성된 대숲이었다. 대나무가 워낙 빽빽한 데다 인적이 지워져 분화구 바닥까지는 내려가지 못했다. 그래도 분화구로 내려가는 길을 덮은 대숲은 아늑했다. 마침 고개를 내민 죽순도 보였다. 남산봉의 대나무가 스스로 자라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몇 그루 심었던 것이 이렇게 번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수많은 오름을 올랐지만 분화구에 대숲을 품은 오름은 남산봉이 처음이었다는 사실이다.

남산봉에서 내려와 성읍민속마을로 들어갔다. 역시 관광 버스가 마을을 장악했고, 골목마다 요란한 중국어가 울러 퍼졌다. 공사 중인 남문 성곽 위에 올라섰다. 비로소 남산봉이 오롯한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숲의 남산봉을 바라보며 남산봉이 민둥산이던 시절을 상상했다. 낮에는 연기를 피우고 밤에는 불을 밝히던 봉수의 모습을 떠올렸다.

옛날 남산봉 봉수에서는 3명이 근무를 했다고 한다. 한 명은 망을 보고 다른 한 명은 불을 피우고 다른 한 명은 말을 타고 성읍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구한말 그들이 전한 소식은 아마도 불길한 것이 태반이었으리라. 연기를 내뿜으며 바람처럼 빨리 달리는 기괴한 꼴의 배를 우리의 선조는 이름을 찾지 못해 ‘다르게 생긴 배(이양선·異樣船)’라고 불렀다. 멀리서 전해오는 소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갑지 못한 것이 더 많은 듯하다. 바다 건너의 세상은 언제나 우리보다 크고 강했다.

지금도 성읍에서는 남산봉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면 한눈에 알아볼 것 같았다. 그만큼 지척에 있었고, 중간에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었다. 남산봉은 바라보는 오름이었다. 성읍에서만 바라볼 때 제 이름 값을 하는 오름이었다. 아니다. 남산봉은 소식을 전해주는 오름이었다. 바다 너머 먼 곳으로부터의 소식을 들려주는 오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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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신풍리는 제주도에서 손꼽히는 체험마을이다. 신풍리에 산촌과 어촌이 다 있다 보니 신풍리에서는 산촌 체험도 가능하고 어촌 체험도 가능하다. 빙떡체험·승마체험·천연염색체험 같은 산촌 프로그램도 있지만, 고망체험 같은 어촌 프로그램도 있다. 모두 6000원. 고망은 ‘구멍’의 제주 방언으로 갯바위 구멍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는 체험이다. 배도라치가 잘 잡힌다.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어망아방식당’ 이 있다. 마을에서 생산한 재료로 밥상을 차린다. 1인 7000원. 064-4170-0280. 마을이 옛날 초가 민박도 운영한다. 2인 4만원. 신풍리사무소 064-782-0311.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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