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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형·직업에 맞게 헤어컷·스타일링…신사의 품격을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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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 있는 바버숍 ‘헤아’에서 권혁기 원장이 기자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헤어컷에서 면도까지 전체 서비스를 받는 데 총 1시간 소요된다.



바버숍·편집매장서 그루밍 체험해보니


자신을 가꾸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들을 일컫는 ‘그루밍족(Grooming+族)’이란 말까지 생겼다. 미용실과 백화점에서 조연에 머물던 남성들은 이제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공간을 찾고 있다. 최근 남성 그루밍족을 겨냥한 바버숍과 남성전문 패션 편집매장들이 앞다퉈 생겨나는 이유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남성 그루밍 세계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체험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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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넘은 바버 체어를 비롯해 클래식한 느낌의 바버숍 내부 전경.





문 안에 들어서자 클래식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갈색 원목 가구와 전구 조명으로 멋을 낸 인테리어는 포마드(머리에 바르는 기름)향과 뒤섞여 특유의 남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머리를 말끔히 넘긴 남성 직원이 자리를 안내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헤아(HERR)’는 2013년 문을 연 국내 1세대 바버숍이다. 독일어로 ‘미스터(Mr.)’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객의 얼굴과 체형에 맞는 비스포크(맞춤) 헤어컷과 클래식 면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전예약이 필수인데, 한 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는다.



골동품 바버 체어에 앉아 습식 면도

바버 체어에 앉아 목에 얇은 천을 두르고 가운을 입었다. 헤어컷을 담당하는 권혁기 원장은 기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세세하게 물었다. “일주일에 몇 번 양복을 입으세요.” 그는 15년 전부터 미용사로 일했다. 미용실에서 남녀 손님을 모두 대하다가, 3년 전 바버로 변신했다.

“이곳에선 헤어컷을 한다는 게 단순히 머리 모양을 만드는 게 아니에요. 남성 고객의 직업이나 스타일에 맞게 분위기를 잡아주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죠.” 정통 영국식 바버숍을 지향하는 만큼 이른바 바리캉으로 불리는 헤어 클리퍼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가위를 이용해 세심하게 각을 다듬었다. 마무리로 머리 라인을 면도날로 말끔히 정리했다.

헤어컷을 마무리하고 면도에 들어가기 전 주니어 바버가 바버숍 한 쪽에 마련된 바에서 위스키 한 잔을 가져왔다. “면도하기 전에 위스키를 가볍게 마시면 면도날이 살에 닿았을 때 느끼는 긴장감을 줄여줍니다.” 집에서 면도를 하면 보통 3분 안에 끝내지만, 이곳에서 받는 습식 면도 서비스는 30분 이상 걸린다.

먼저, 피부에 오일을 바르고 그 위에 뜨거운 타월을 올리자 몸이 자연스레 나른해졌다. 모공을 넓히고, 피부와 수염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부드러운 오소리털 솔을 사용해 거품을 얼굴에 발랐다. 면도는 일도날로 하는데 수염의 방향을 살펴가며 조심스레 털을 제거해갔다. 면도를 마친 뒤에는 애프터쉐이브젤과 크림, 스킨을 발라 피부를 보호해준다. 손으로 턱선을 만져보니 약간의 까끌거림이 느껴졌다. “역방향으로 수염을 제거하면 더 깨끗한 느낌을 줄 수는 있지만 피부가 다치는 걸 피할 수 없어요. 수염의 방향을 지켜가면서 피부의 손상을 최소화합니다.”

머리를 옆으로 넘겨 포마드로 고정하자 스타일이 완성됐다. 모든 서비스가 끝나자 들어올 때 맡겼던 구두가 말끔히 닦여서 돌아왔다. 이렇게 헤어컷과 면도 서비스를 모두 받는 비용은 12만 원.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권 원장은 “비용 부담이 큰 만큼 더 섬세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며 “최근에는 회사 임원들뿐 아니라 스타일을 중시하는 전문직 종사자와 금융맨들까지 바버숍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그루밍족의 취향을 충족시키기 위해 디테일에도 신경을 썼다. 이상윤 헤아 대표는 “바버 체어의 경우 뉴욕에서 경매를 통해 구입한 100년 넘은 골동품”이라며 “시가 라운지를 마련하는 등 남성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쉬어 가는 곳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백화점내 ‘숍인숍’ 형태의 바버숍 인기

바버숍이 한국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건 불과 3년 전부터다. 1970~80년대 남성들 사이에서 하얀 가운으로 상징된 이발소가 유행했지만, 미용실에 밀려 점점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오래된 이미지의 이발소 대신 세련된 인테리어를 갖춘 바버숍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루밍 공간을 원하는 남성들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업계에 따르면 2013년 3곳에 불과했던 바버숍은 3년 만에 전국 30여 곳으로 늘었다.

서울 한남동 헤아를 주로 40~50대 중년 남성들이 찾는다면, 홍대나 강남 지역에는 20~30대 젊은 남성들이 선호하는 바버숍이 몰려 있다. 상수역 인근의 ‘밤므’는 계산대 대신 티켓자판기를 설치해 편리함을 높이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지난해 홍대에서 강남으로 자리를 옮긴 ‘엔투라지’ 바버숍은 클래식한 스타일의 컷을 원하는 남성들이 자주 가는 곳이다. 박웅규 엔투라지 이사는 “염색이나 파마는 안 하고 4명의 바버가 오로지 컷에만 집중한다”며 “남성들의 고민인 탈모 방지를 위한 두피 스케일링이 서비스에 포함돼 있고, 맥주나 위스키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쇼핑에서 그루밍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숍인숍’ 형태의 바버숍들도 최근 빠르게 늘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지난해 패션 매장과 바버숍을 하나로 합친 ‘패션 바버숍’을 본점에 연 이후, 현대백화점도 판교점에 정통 바버숍으로 유명한 ‘마제스티’를 입점시켰다. 백화점들이 앞다퉈 바버숍을 들이는 건 불황기 속에서도 선뜻 지갑을 열고 있는 남성 고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최근 5년간 롯데백화점 남성 고객 수는 해마다 10% 안팎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남성 고객의 비중도 28.8%로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김정환 롯데백화점 바이어는 “요즘 패션을 즐기는 남성들은 미용에도 관심이 많다”며 “단순히 옷만 파는 게 아니라 그들의 그루밍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특화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브랜드가 아닌 나만의 스타일 입기

서울 용산구 한강진역 앞에는 ‘남자들의 놀이터’로 불리는 곳이 있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남성 전문 편집숍 ‘란스미어’ 한남점이다. 입구에서부터 10m 높이의 검은 조형물이 눈에 띄었다. 충견으로 꼽히는 래브라도를 형상화했는데, 남성 고객들을 충실하게 보좌하는 ‘버틀러(butler·집사)’가 되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수트(양복)와 구두에서부터 청바지, 운동화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50여 개 브랜드가 미로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에게 맞는 스타일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김효진 수석디자이너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베이지색 면바지와 셔츠, 줄무늬 베스트(조끼), 재킷을 가져왔다. 미리 예약하면 란스미어 소속 디자이너가 매장에서 스타일링을 도와준다. “클래식함을 지키면서도 최대한 캐주얼하게 입는 게 요즘 추세예요.” 액세서리로는 글로벌 아이웨어 브랜드인 ‘레트로스펙스’가 1930년대에 수집한 빈티지 금테 안경을 추천했다. 셔츠와 바지는 각각 30~40만 원 선.

독특한 점은 대부분의 옷에서 브랜드 로고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패션에 민감한 남성들은 브랜드를 따라다니지 않는다”며 “이곳은 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플레이그라운드(놀이터)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 자주 온다는 직장인 오종우(39)씨는 “최근 남성복 트렌드나 스타일에 대해 공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의 스타일과 컬러, 아이템을 조합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전체 상품의 80%가 기성복이지만, 비스포크(맞춤 양복)도 가능하다. 전신 거울 앞에 서자 대기하고 있던 테일러(재단사)가 신중하게 치수를 쟀다. 그는 “총 17개의 치수를 재고 나서 슈트 제작에 들어간다”며 “2주 뒤 재방문해 가봉된 옷으로 사이즈를 다시 한번 체크하고, 4주가 더 지나면 완성된 슈트를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한 벌에 300만~500만 원 선이다. 매장 입구에는 이곳만의 철학이 담긴 플라워숍도 있다. 아내 또는 여자친구의 선물을 챙기는 매너까지 갖춰야 비로소 신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서울 강남이나 한남동 지역에도 패션을 즐기는 남성들의 아지트가 있다. 샌프란시스코마켓은 2005년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한국 최초의 남성 전문 편집숍이다. 이탈리아에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한 한태민 대표가 직접 현지에 가서 수입할 브랜드를 고른다.

백화점들도 남성 고객을 붙잡기 위해 편집숍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지 스트리트 494 옴므’는 한 개층 전체를 남성 명품 브랜드로 꾸민 편집숍이다. 주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30~50대 남성을 타깃으로 한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남성전문 편집숍인 분더샵 클래식을 새단장을 거쳐 지난 4월 다시 열었다. 나폴리 정통 수트 브랜드인 ‘이사이아’, 첫 번째 팬츠라는 뜻의 ‘PT01’ 등 다양한 브랜드가 모여 있다.





<바버숍과 남성 전문 편집매장에서 그루밍 체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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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그루밍을 체험하기 전 기자 모습. ②바버숍에서 제공하는 습식 면도 서비스. ③란스미어 한남점의‘슈 샤이닝’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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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테일러가 전신 거울 앞에서 기자의 신체 사이즈를 재고 있다. ⑤⑥편집매장에 진열된 다양한 브랜드의 남성 의류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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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숍과 남성 전문 편집매장에서 그루밍 체험을 마친 뒤의 모습. 체험 전과 비교해 스타일이 확연히 달라졌다.



글=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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