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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가짜들의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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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
논설위원

영화 ‘아가씨’를 보면서 20여 년 전 히트한 유행가 ‘세상은 요지경’을 떠올렸다. 배우 겸 가수 신신애가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고 흥얼댔다. ‘아가씨’는 그런 ‘짜가(가짜)’들의 합창곡이다. 겉과 속이 다른 캐릭터들이 스크린을 가로지른다.

박찬욱 감독도 가짜들을 겨냥한 것 같다. 그는 개봉 전 네이버 지식IN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거짓말과 진실, 진짜와 가짜로 가득한 일상에서 가짜를 구별하는 여러분만의 특별한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박 감독의 속내는 영화 포스터에도 나타난다. ‘가짜한테 마음을 빼앗겼다’는 문구가 또렷하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아가씨’는 돈이라는 모래성을 쌓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사람들의 잔혹 에로물이다. 과감한 성애 묘사, 과격한 린치 장면 등으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지만 전국 관객 300만 명을 훌쩍 넘는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폭력과 복수에 매달려 온 감독의 집념이 이 시대를 건드린 모양이다.

온라인에는 재치 있는 답변이 넘친다.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합니다’는 애교 수준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당해 봐야 알게 된다’는 살벌한 현실의 투영이다. ‘지나치게 목소리가 크거나 항상 웃고 있는 사람들은 일단 조심하자’는 제법 구체적이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대할 때의 행동이 진짜다’는 리더십의 본질을 묻는다.

감독은 앞의 질문에서 나름 실마리를 내놓았다. “영화 속 하녀는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했다.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은 조선인 부호(조진웅), 근사한 척 허세를 떨며 그의 재산을 앗으려는 사기꾼 백작(하정우) 등 ‘겉 희고 속 검은’ 가짜 남성들의 실체를 까발리는 하녀(김태리)를 두둔한다. 아가씨(김민희)와 하녀의 벌거벗은 사랑은 그 클라이맥스다.

‘아가씨’는 2016년 6월을 들여다보는 성인용 우화다. 유사 이래 가짜야 끊이지 않았지만 요즘 유달리 혼란스러운 건 아닌지…. 위작·대작 논란이 잇따르는 문화계, 비자금·분식회계로 어지러운 재계, 전관예우·고액수임으로 시끄러운 법조계, 국회 상임위원장을 1년씩 쪼개 먹는 정계 등 연일 요지경 세상이다.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사는’ 것도 유분수다. 박 감독의 전작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 “너나 잘하세요”가 더욱 처량하게 다가온다. 자신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毋自欺)’는 진정 허사(虛辭)인 것인가.

박 정 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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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