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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조용한 혁명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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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간이 다소 흘러갔지만 구의역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망사건에 대한 사회적 충격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것 같다.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오히려 확산되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이미 정치적 공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구의역 사망사건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예전의 유사한 사건과 비교할 때 더욱 강하고 예민해 보인다. 구의역 사고 이전에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중 작업자가 사망하는 사건은 발생했다. 2013년에는 성수역에서, 그리고 2015년에는 강남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던 직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의역 사고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라는 치부를 다시 한번 드러내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이 특히 사회적으로 커다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비단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구의역 사망사건의 키워드는 ‘19세 청년, 비정규직 그리고 컵라면’이다. 이 세 개의 단어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다수 젊은이들이 공통으로 겪고 있는 아픔을 상징한다. 좋은 스펙을 쌓아도 변변한 직장을 얻기 힘든 젊은이들, 정규직이 되기 어렵고 또 정규직과는 너무도 큰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의 사회, 그리고 매일매일 힘든 삶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기 힘든 ‘흙수저’의 사회, ‘헬조선’의 모습을 구의역 사건이 상징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사건 현장을 직접 찾아가서 꽃을 바치고 쪽지글을 남기며 함께 아파하는 젊은이가 많은 것도 그들이 김군의 죽음을 통해 자신들의 어려움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 이전에 젊은 시절을 보낸 어떤 세대들보다 정치적으로는 가장 조용하고 얌전해 보인다는 사실이다. 4·19 혁명을 이끈 1960년대의 젊은 세대, 유신 체제에 항거했던 70년대의 젊은 세대, 민주화를 이끈 80년대의 젊은 세대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한다. 심지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돌풍을 불러온 20·30대 유권자들과 비교해도 오늘날의 젊은 세대는 너무도 조용하다. 과연 이들 젊은 세대는 언제까지나 이렇게 정치적으로 존재감 없이 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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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현상이 일종의 법칙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일정한 정치적·사회적 조건이 형성되면 그에 상응하는 사건이나 현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재 젊은 세대가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분노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표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몇 해 전 미국에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저항으로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운동이 등장했지만 곧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그 운동을 이끌었던 구조적 요인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 세대는 민주당의 샌더스 후보에 대한 지지로, 그리고 일부 저소득층 백인은 공화당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표출됐다. 이번 구의역 지하철 사고에 대한 젊은 세대의 격렬한 공감과 반응은 20·30대가 느끼는 현 상황의 불합리함에 대한 분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외형적으로 보이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고요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70년대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젊은 세대가 주도한 정치적 변화가 생겨났다. 그것은 환경·평화·여성·문화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가치의 강조였고 이는 이후 녹색당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지는 기존 정당체계의 변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그 운동은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처럼 격렬하고 과격한 변화의 과정을 수반하지 않았다. 정치학자 로널드 잉글하트(Ronald Inglehart)는 이를 두고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이라고 불렀다. 겉보기에는 조용한 것 같지만 사회 내부적으로는 중대한 정치 변혁이 발생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20·30대의 분노와 좌절이 언제까지나 현재와 같이 잠잠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과거의 젊은 세대처럼 격렬하고 과격한 투쟁 형태는 아니라고 해도 이들의 불만과 요구는 결국 정치적 과정을 통해 표출될 것이다. 금년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이미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전 선거에 비해 20·30대 유권자의 투표 참여가 높아졌고 이는 실제로 다당 구도로 정당체계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 내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구의역 사고에서의 ‘19세, 비정규직, 컵라면’이 상징하는 젊은 세대의 고통과 좌절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젊은 유권자들이 이끌어 가는 ‘조용한 혁명’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강 원 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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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