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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봐줬다”…역외 탈세 칼 뽑은 국세청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씨는 아들의 사업자금을 대주기로 했다. 자사의 홍콩 현지법인을 통해 아들이 보유한 해외 주식을 비싸게 사들였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해외 주식 양도소득에 대한 세금을 줄이기 위해 이중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이들 부자의 행각은 국세청의 현지 정보망에 포착됐다. 국세청은 A씨 부자에게 각각 수백 억원대의 소득세 및 법인세를 추징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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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역외탈세에 대한 압박 수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국세청은 소득이나 재산을 해외에 숨겨놓고도 자진 신고를 하지 않은 역외탈세 혐의자 36명에 대해 세무조사를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해외에 숨긴 재산을 신고하면 가산세 및 과태료 부과와 명단 공개를 면제해 주는 길을 터줬다. 이 기간에 642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정부는 1538억원의 세금을 징수했다.

하지만 이런 ‘관용’을 외면한 역외 탈세 혐의자에겐 철퇴를 들었다. 이번 조사대상에는 대기업 계열사 관계자 등도 포함됐다고 국세청은 설명했다. 또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의 유출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문서)’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국인 중에도 10여명이 조사를 받았거나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다.

국세청은 지난 1월부터 역외탈세 혐의가 짙은 기업 사주와 일가 등 30명에 대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25명에 대해 2717억원을 추징했다. 이중 6명은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1일 황교안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한 ‘법질서 관계장관회의’에서도 역외탈세 근절 대책이 논의됐다. ‘역외탈세와의 전쟁’이 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치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역외탈세에 대한 강력한 대응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파나마 페이퍼스’ 명단 공개가 이런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역외탈세공조협의체(JITSIC) 35개 회원국은 지난 4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회의에서 역외탈세의 효과적 해결을 위해 글로벌 차원에서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미 국세청, 재무부와 공조해 역외 탈세 방지를 위한 새 규정을 만들고 이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법안을 의회에 상정키로 했다. 금융기관 계좌를 개설한 수익자의 정보를 철저히 수집해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다. 다국적기업의 탈세를 막기 위해 ‘구글세’ 도입을 포함한 ‘국가 간 소득 이전을 통한 세원 잠식(BEPS)’ 대응에 각국이 속도를 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국가 공조 확대는 역외탈세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정부에게 든든한 무기를 쥐어줬다. 한국은 앞으로 101개국과 금융 계좌정보를 상호 교환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6월 서명된 ‘한·미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FACTA)’에 따라 올 9월부터 한·미 양국은 정기적으로 금융계좌 정보를 교환한다.

또 내년 9월부터는 ‘다자간 금융정보자동교환협정(MCAA)’을 통해 영국 등 54개국, 내후년에는 중국 등 46개국으로부터 해외 금융정보를 수집·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간 해외 정보수집은 물리적인 거리와 비용, 시간 등의 한계로 제약이 많았다. 국가간 공조가 강화되면 이런 장벽을 넘을 수 있다. 한승희 국세청 조사국장은 “앞으로 해외에 숨긴 소득이나 재산은 반드시 국가간 공조망에 적발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과 정보를 교환하려면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한·미간 계좌정보 교환은 당초 지난해 9월부터 이뤄지기로 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1년 연기됐다. 현재는 1978년부터 시행된 한·미 조세협정을 근거로 역외탈세 혐의자에 대한 정보 요청 등을 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친다.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오호선 국세청 역외탈세정보담당관은 “FACTA가 발효되면 미국에서 계좌를 보유한 한국인에 대한 상세한 금융 정보를 정기적으로 알 수 있다”며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조사가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① "노재헌,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 3개 설립”

② “폭로 타깃은 글로벌 기업”… 조세피난처와 전쟁 시즌2

정부는 20대 국회에서 FACTA가 통과되길 기대하고 있다.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역외탈세 방지는 지하경제 양성화의 핵심 축”이라며 “역외탈세의 특성상 한국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만큼 최근 각국의 강력한 역외탈세 대응 추세를 활용해 한국도 적극 공조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만 박 원장은 “주요국의 역외탈세 강화는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정부가 외국과 세정 공조 시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역외탈세

법인이나 개인이 세금을 내지 않거나 덜 내기 위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소득이나 보유 자산을 신고하지 않는 행위를 뜻한다. 법인세 등을 부과하지 않는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뒤 이 회사가 거래를 하는 것처럼 꾸며 소득이나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는 방식이 주로 활용된다.


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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