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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신상 폰 짧은 영광…한 달이면 ‘눈칫밥’ 1년 되면 ‘찬밥’

이곳은 캄캄하고 비좁네요. 뱃고동 소리가 이따금 들립니다. 형제들과 함께 상자에 담겨, 저는 바다를 건너고 있어요.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간다고 합니다. 태어난지 2년 하고도 3개월이 된, 저는 ‘중고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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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때는 잘나가는 몸이었습니다. ‘최고급 신상 전략폰’ 또는 ‘프리미엄 폰’으로 불렸어요. ‘귀족폰’이라고도 불렸죠. 저는 2014년, 벚꽃이 피는 3월에 태어났어요. 우리 귀족 형제들은 모두 이 계절에 태어난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세계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를 전후해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신상품을 경쟁하듯 내놓는 시기지요. 아, 가을에 태어나는 동생들도 있어요. 화면이 큰 ‘프리미엄 폰’이나 기능이 적은 이른바 ‘보급형 모델’입니다. 우리 귀족폰 인기가 시들해질 때쯤 시장을 공략하는 게 동생들의 임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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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제가 서울 종로의 이동통신사 대리점에 실려왔을 때가 지금도 생생하네요. 대리점 사장님이 저를 꺼내면서 “물량 확보하느라 선구매(제품을 공급 받기 전 미리 비용을 지불하는 것)까지 했다”며 흐뭇하게 웃으셨죠. 그땐 통신사마다 우리 형제들을 데리고 가려고 기싸움이 심했대요. 아직 태어나기 전부터 1000대가 넘는 주문이 대기하고 있으니까요. 태어나는 날에만 수만 대의 쌍둥이 형제들이 동시에 주인을 만날 정도로 우리는 인기가 있었습니다. 요즘 태어난 귀족 동생들도 그 인기는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삼성전자 갤럭시S7이란 이름의 동생들은 출시 첫날에 6만대, LG전자의 G5 동생들은 출시 첫날에 1만5000대가 팔렸다고 해요.

대리점 매대 한가운데에서 조명을 받고 앉아있을 때는, 저도 곧 주인을 찾을 줄 알았습니다. 형제들이 날개돋친 듯 팔렸으니까요. 같이 태어난 모든 폰이 주인을 찾는 게 아니란 걸 나중에 알게 됐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를 쳐다보는 손님들의 눈빛도 조금씩 시들해졌죠. 대리점 영업 사원이 수군대는 얘기도 들었어요. “나오고 한달만 지나도 식상한 모델로들 본다”나요. 저는 조금씩 자신감이 사라졌어요.

가을이 될 때쯤 저는 어느새 매대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어요. 그리고 제가 주인을 찾기가 더 어려워질 거란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이 생긴다고요. 원래는 주인들이 우리를 데려가면 통신사들이 입양비(단말기 보조금)를 듬뿍 얹어주곤 했대요. 그런데 태어난 지 15개월 미만일 때 주인을 만나면 그 돈이 33만원으로 제한된다는 얘기였어요. “어휴, 장사 더 어려워지겠네….” 사장님이 한숨만 연거푸 쉬시던 9월, 저는 극적으로 주인을 만났어요. “10월에 단통법 도입되기 전에 얼른 폰을 바꾸겠다”며 주인은 저를 쥐고 웃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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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주인을 찾은 저는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대리점에 함께 앉아있던 형제들은 시린 가을을 맞았죠. 보급형 동생들이 대거 태어난데다, 단통법까지 끝내 시행됐으니까요. 나중에 중고폰이 돼 만난 친구들에게 들었는데, 이듬해 봄 귀족 동생들이 나오고선 그야말로 찬밥 취급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몇몇 형제들은 TV에 출연했어요. 홈쇼핑의 ‘공짜 폰’이 된 거죠.

가전제품 매장에서 신제품 냉장고·세탁기에 얹혀 팔리는 형제도 있었죠. IPTV 신청자들에게 ‘선물’이란 이름으로 증정되기도 하고, 공공기관과 기업에 단체로 팔려가기도 했어요. 심지어 어떤 형제들은 오대산 국립공원에 있는 나무들에 매달려 야생동물과 조류를 관찰하는 CCTV로 변신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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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양 각지, 해외로까지 흩어졌던 우리 형제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상봉하게 됐어요. 출시 18개월이 지나면서 하나둘 통신사 대리점으로 ‘중고폰’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모이게 된 거죠. 통신사의 단말기 보상 프로그램 ‘○○클럽’에 가입했던 휴대폰 주인들은 우리를 반납하는 대가로 새로 태어난 동생을 할인 가격에 데려가곤 합니다. 최근엔 삼성전자(갤럭시클럽)도 이런 프로그램을 내놓고 LG전자도 곧 ‘G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할 거라고 해요. 앞으로는 주인을 만난 뒤 12개월 만에 돌아오는 친구들도 늘 거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모인 친구들은 저처럼 배를 타고 이민을 갑니다. 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새 주인을 찾기 위해섭니다. 이민을 가서도 새 주인을 못 찾으면 어떻게 되냐고요. 수명이 다해 더 이상 아무도 안찾게 되면 분해돼 각 부품별로 흩어진다고 해요. 일부 부품은 다른 동료와 결합돼 새 생명으로 탄생하고, 일부 부품은 폐기된답니다. 사람들은 내 몸 속에 있는 금을 모아 재활용하기도 해요. 우리 1t이 모이면 그 안에서 금 400g을 모을 수 있대요. 금광석 80t에 있는 금의 양과 같다고 하니 대단하죠?
 
▶관련 기사 지원금 상한제 폐지 나선 방통위…갤S7도 공짜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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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에서 우린 한국에 남아있는 동생들의 운명을 궁금해해요. 우리를 찬밥이 되도록 만들었던 단통법이 곧 개정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최대 33만원으로 묶여 있던 공시 지원금 제한이 풀리게 되면 우리가 몇 살이든 상관없이 통신사들이 입양비를 33만원보다 더 많이 얹어줄 수 있게 됩니다. 주인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최고급 ‘신상폰’도 싸게 가져갈 수 있게 되겠죠?

‘보급형 모델’ 동생들은 벌써 울상입니다. 우리 귀족폰의 가격이 점점 싸질수록 보급형 동생들의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당장 다음 주에 태어날 동생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대요. 22일 출시되기로 한 팬택의 스카이란 동생이에요. 사촌동생인 ‘알뜰폰’들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정부의 정책 하나에 울고 웃는,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공시지원금 상한제

휴대전화 구매자가 이동통신사로부터 받을 수 있는 지원금의 최대 규모를 정해 놓은 제도.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당시 3년 일몰 조항으로 도입돼 2017년 9월 자동 폐기 예정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시장 상황에 따라 25만~35만 원 범위에서 상한액을 결정하도록 돼있다. 도입 초기에는 상한액이 30만원이었다가 2015년 4월 이후 33만원으로 올랐다. 출시 15개월 미만인 휴대전화에만 적용된다. 최근 정부는 방통위가 정하도록 돼 있는 지원금 상한액을 ‘출고가 이하’로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지원금 상한제가 조기 폐지되는 셈이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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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