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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 앉아 처마 밑 빗소리 들으며 마시는 맥주 한잔

한옥으로 들어온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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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동 ‘베어카페’에서는 평상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며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사진 베어카페]



식당이나 카페로 변신하는 한옥이 늘고 있다. 기본 한옥 골격은 그대로지만 서양식 가구로 꾸민 실내는 전통과 모던의 경계가 모호해 이색적이다. 이런 곳은 한옥을 새롭고 트렌디한 공간으로 여기는 2030세대와 외국인이 더 많이 찾는다. 한옥을 고치고 다듬어 식당으로 꾸민 6곳을 방문해 왜 한옥인지, 그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젊은 세대에겐 낯설지만 매력적인 한옥
식당·카페 등 상업 공간으로 속속 개조
북촌·서촌 등 한옥보존구역 지정에 더 늘 듯



한옥은 대들보와 기둥이 집의 무게를 지탱하고 기왓장 사이를 흙으로 메꿔 천장을 얹은 우리나라식 전통 주거공간이다. 조선시대 한옥은 경복궁 일대 사대부 가옥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면서 서민을 위한 소규모 개량 한옥들이 생겨났다. 이런 개량 한옥이 몰려 있는 동네가 지금의 서촌, 인사동 일대다.

요즘 효자동·통인동·통의동 일대에 생겨나는 식당과 술집은 당시의 한옥을 개조하거나 보수한 형태가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가정집이었지만 최근에는 용도 변경을 통해 허가를 받고, 상업 공간으로 변신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현대 건축과 한옥 건축을 병행하는 ‘삼간일목’의 권현효 소장은 “1960년대 이후 한옥이 우후죽순 헐리고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대거 보급되면서 한옥은 주거 공간으로써도, 미학적인 건축물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1800만 가구 가운데 한옥 거주 인구는 3%에 불과하다. 전쟁을 경험하고 나이가 든 40대 후반 이후 세대에게 한옥은 운치 있는 인테리어 공간이 아니라 가난이 떠오르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반면 한옥을 가까이에서 접할 기회가 적고 거주해 본 경험이 없는 2030 젊은 세대들은 오히려 한옥을 더 매력적으로 느낀다. 외국에서 공부했거나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을 보고 접한 이들 가운데 특히 더 그렇다. 이들은 한옥을 완성도 있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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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안에 놓여있는 일자형 테이블. 여러 명이 같이 앉아 차를 마실 수 있다. [사진 베어카페]

실제로 종로구에서 한옥을 개조한 공간을 가게로 개조해 운영하는 가게 주인들이 말하는 한옥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외관과 내부가 아름답고 멋스럽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유년 시절을 외국에서 보내 한옥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통의동 술집 ‘합스카치’의 에릭 신 대표는 “가게를 본 순간 내 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효자동 ‘베어카페’ 이상영 이사는 낡은 목조 구조물이 주는 세월의 흐름이 좋아서 끌리듯 터를 계약했다고 한다.

‘구가건축’ 조정구 건축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연남동이나 망원동에 젊은 사람들의 문화 공간이 생기고, 골목길이 트렌드가 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교육을 많이 받고 사고방식이 자유로운 젊은 세대들은 그 어떤 소재나 재료도 독창적으로 해석해 나만의 스타일로 변형하는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조 건축가는 “한옥 개조가 요즘 유행이라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깊이 있고 세련된 스타일로 진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무조건 뜯어고치는 게 아니라 고유의 비례와 균형미를 지키고, 동서양의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부자연스럽지 않고 한옥개조 건축으로 가치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그 집의 장점을 잘 관찰해서 미학적인 부분을 잘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종로구 익선동에는 최근 한옥 게스트하우스와 한옥을 개조한 식당과 카페 10여 곳이 생겼다. 인근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외국인에게도 한옥은 해외에서 경험할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관광 요소로 명동이나 강남의 호텔에 머물던 숙박객이 요즘 한옥 호텔과 게스트하우스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북촌이나 서촌, 인사동 등 한옥 밀집 지역 5곳이 한옥보존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런 공간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 지역에서 한옥을 재정비하거나 신축할 경우, 정부 지원금도 다른 지역에 비해 최대 1.5배 이상 많이 받을 수 있다.
 

한옥 개조 공간 6곳

통의동 ‘베어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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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오픈한 베어카페는 이음출판사를 공동운영하는 이상영·서상민 부부가 통의동 주택가 골목에 낸 카페다. 1970년대 지어진, 마당이 있는 100평 규모 공간이다. 한옥을 동경하던 이상영 대표는 어린 딸이 뛰어놀 마당이 있고 나무와 흙이 있는 이곳이 좋았다.

이곳의 테이블은 기다란 일자형 테이블와 마당 위 평상, 야외 테이블이 전부다. 하지만 문턱에도 앉을 수 있고, 마당에 서 있을 수도 있다. 공간 활용도가 높은 한옥의 특색을 살리면 테이블 외에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이 대표는 “겨울 추위와 여름 벌레 말고는 크게 불편한 점이 없다”고 말했다. 70년 세월이 담긴 목조 건물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은 그 어떤 신축 건물에 비할 게 아니다. 바닥과 벽을 흰색 페인트로 칠한 것과 흙이 무너져내린 천장 기왓장을 수리한 것 말고는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살렸다. 남대문 개보수 작업에 참여했던 한옥 전문 목수를 운 좋게 만나 집을 고쳤는데 그 목수가 그랬다. “낡아서 아예 못 쓰게 될 때까지 내버려두는 게 한옥의 진짜 멋”이라고. 부부는 이곳에서 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평상 자리를 제일 좋아한다. 아파트나 단독주택에서 찾을 수 없는 한옥의 멋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주소: 종로구 자하문로24길 24 전화: 070-7775-6743
대표 메뉴: 커피 4000원대, 레몬파운드케이크 3500원


통의동 ‘합스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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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신 대표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30년 가까이 영업직에 종사했다. 그가 퇴직 후에 낸 술집이 합스카치다. 한옥에 대한 관심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친구가 운영하는 논현동 합스카치 2호점을 강북에 내자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한옥을 만났다. 신 대표는 “전통찻집인 줄 알고 들어갔는데 맥주랑 위스키를 파는 술집일 때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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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1960년대 지어진 ㄷ자 형태의 한옥이다. 길가에서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골목 안쪽에 있어서 단골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가게다. 신 대표는 이곳을 술집으로 개조했는데 개조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옥보존법 때문에 손댈 수 없는 게 많았다. 처마도 그대로 둬야 했고, 물받이로 쓰는 천장 쪽 나무 구조물도 보존 대상이었다. 그는 “ㄷ자 형태인 데다 천장이 높지 않아 겨울에 안 춥고 여름에 덥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기왓장 물받이를 장착한 생맥주 탭이 있는 바다. 팔걸이가 있는 가죽 의자에 앉아 술을 마시다 보면 한옥 특유의 정취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주소: 종로구 효자로7길 14-1 전화: 02-722-0145
대표 메뉴: 힐치 IPA맥주 1만1000원, 수박맥주 1만1000원


익선동 ‘익동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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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대 가정집으로 지어진 익동다방은 21평의 작은 한옥이다. 이 골목은 서민층의 한옥들이 모여있던 곳이라 작은 집들이 많다. 가장 넓은 집이 30평 정도다. 익동다방은 골목길과 마당을 포함해서 21평 규모지만 실제 사용하는 공간은 15평 정도다. 박지현 대표는 예술가들의 협업 커뮤니티 ‘익선다다’도 운영하고 있다.

2년 전 우연히 익선동 골목길을 걷다가 옛날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거리가 재밌다고 생각했다. 마침 재개발이 무산되면서 기존 한옥들이 상업공간으로 변신을 꾀한다는 걸 알고, 이 거리에 예술가들이 모이는 만남의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막상 지내보니 걱정했던 것만큼 불편하지 않다.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그건 작은 한옥의 특징이라고 한다. 평수는 작지만 실내와 마당 말고도 담벼락을 활용해 갤러리처럼 쓴다. 담쟁이넝쿨이 늘어진 담벼락에 예술작품을 걸면 그 자체로 벽과 어우러져 근사해보인다. 계절이 바뀌거나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바뀌는 것도 신기하다. 주인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테이블 두 개를 둔 작은 마당이다. 원래의 마당을 그대로 살렸다. 여기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행복해진다.

주소: 종로구 수표로28길 17-19 전화: 070-4449-8226
대표 메뉴: 꿀마키아토 7000원, 수박코코넛라떼 6500원


필운동 ‘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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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반은 통인동에서 프렌치 레스토랑 ‘7pm’을 운영하는 김태윤 셰프의 두 번째 식당이다. 김 셰프는 원래 한옥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지금 ‘주반’이 있는 자리는 원래 ‘칼질의 재발견’이라는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곳 주인이 유학을 떠나면서 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막상 식당으로 써보니 불편한 부분이 생각보다 많았다. 주방이 바깥에 있는 구조라 동선이 길었고, 전기·배관·배수까지 손봐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무로 된 곳이 많아서 열과 기름에 약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곳을 좋아한다. 외국인 손님도 많이 늘었는데 손님들이 인테리어 칭찬을 할 때면 음식 맛 칭찬할 때만큼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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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주반을 꾸미면서 ‘최대한 아무것도 손대지 말자’고 생각했다. 천장 서까래와 툇마루를 그대로 살렸더니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더 운치 있는 공간이 됐다. 그런 날이면 술이 더 잘 팔린다. 김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도 툇마루다. 비 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고 있으면 시간의 흐름에서 이탈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소: 종로구 사직로9가길 12 전화: 02-3210-3737
대표 메뉴: 신사유람단 1만8000원, 추성주 6만원


소격동 ‘이태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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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네’와 ‘부어크’에서 10년 넘게 이탈리아 요리를 한 전일찬 셰프가 올 초 70년 된 주택을 개조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었다. 흔히 이탈리아 물건을 ‘이태리제’라고 부르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어 ‘제’ 대신 집을 뜻하는 ‘재’를 넣어 가게 이름을 삼았다. 이태리재에는 한옥과 유럽 레스토랑의 느낌이 반반씩 섞여 있다.

이탈리아 식당이 다 비슷비슷한 분위기인 게 아쉬웠다는 전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베네치아를 떠올리며 인테리어를 했다. 전 셰프는 30평 규모의 한옥에 유럽풍의 소품과 가구를 배치했다. 초록 대문을 열면 서까래 구조를 그대로 살린 천장과 반짝이는 유리 바가 보인다. 가볍게 식전주를 즐기기 좋은 공간으로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바닥에는 베네치아 축제가 연상되는 경쾌한 타일을 깔고, 곳곳에 유리 갓을 씌운 펜던트 조명을 설치했다. 전 셰프는 “전통과 모던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 한옥이라는 걸 이태리재를 꾸미며 알게 됐다”고 했다. 또 “한옥과 어울릴지 아닐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걸로 포인트로 주고 과감하게 다양하게 믹스매치를 하면 기존 식당과 전혀 다른 나만의 한옥이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소: 종로구 율곡로1길 74-9 전화: 070-4233-6262
대표 메뉴: 베네치아식 타파스 치케티 4000~1만5000원


통인동 ‘피자피케이션 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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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오픈한 ‘피자피케이션 자하’는 60년 전 지어진 한옥을 개조했다. 최현민 대표는 한옥에 거주하며 한옥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가회동이나 계동 쪽에는 대궐 같은 양반집 한옥이, 서촌 일대에는 작은 평수에 한옥들이 옆집과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는 오히려 이런 작은 한옥들을 개조하면 독자적인 매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면 벽은 통유리로 마감해 한낮의 채광이 좋다. 전통 처마 밑으로 모던한 유리 벽면이 조화를 이룬다. 그는 여기 창가에 앉아 한적한 통인동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 걸 좋아한다. 유럽 이탈리아 가정집이 연상되는 은은한 노란색 페인트로 벽을 칠한 내부는 천장이 높아 탁 트인 기분이 든다. 벽 곳곳에 답답하지 않도록 크기가 다양한 사각형 천장을 내서 낮에도 분위기가 좋다.

최 대표는 “한옥이라서 좋은 점보다는 불편한 점이 더 많은 게 사실”이라고 솔직히 말했다. 옛날 한옥에는 창호지와 온돌이 있어서 여름 더위나 겨울 추위를 잘 막아줬지만, 소재를 변형하면서 그런 고유의 장점이 사라졌다. 통로가 좁아서 기물을 넣고 옮기는데도 애를 먹었다. 최 대표는 “한옥 개조 식당을 차릴 때는 크기나 구조를 세심하게 고려해 업종과 잘 맞는 종목인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소: 종로구 자하문로7길 3 전화: 02-737-1355
대표 메뉴: 타르투파타 피자 2만3000원, 라구블루멘탈 스파게티 1만9000원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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