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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파편은 제거했지만 마음의 상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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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규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부모님으로부터 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참 많이 들으며 자랐다. 서울이 함락된 후 석 달간 꼼짝없이 공산 치하에서 숨죽였던 일, 엄동설한에 아끼는 ‘싱어’ 재봉틀을 마당에 묻고 피란 가셨던 일들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전쟁이 끝나고 거리엔 상이군경과 고아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사랑과 배려가 아니라 혐오의 대상이었다. 모두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있었던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 후 눈부신 경제적 발전이 있었다.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부족하긴 해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각도 많이 좋아졌다. 더불어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 사람들은 6·25전쟁을 잘 모르고 장·노년층 역시 쓰라린 기억이 많이 흐려졌다.

약 15년 전의 일이다. 흔히 간질이라고 부르는 전신발작 때문에 50대 중반의 남자가 병원을 찾았다. 어린이는 체온만 높아도 발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은 뇌에 이상이 있어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히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영상이 찌그러져 판독이 불가능했다. 이런 경우는 거의 금속물질로 인한 방해 때문이다. 머릿속에 쇳조각이 있다는 뜻이었다. 아차 싶어 환자에게 과거력을 자세히 물었다. 경기도에 살고 있던 1953년 한국전쟁 막바지에 수류탄이 터지는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형은 즉사하고 환자 자신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였다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들었단다.

X선 촬영과 전산화단층촬영(CT)을 시행했다. 예상대로 많은 금속 조각이 광범위하게 박혀 있었다. 그리고 전두부에는 심상치 않은 덩어리가 있었다. 보기에 따라 뇌종양 같기도 하고 뇌농양 같기도 했다. 주위에 부종도 심해 즉시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파편이 널리 퍼져 있어 모두 없앨 수 없으나 덩어리는 빨리 제거해 정확한 병리검사를 하기로 했다.

전신마취를 하고 두개골을 열었다. 흔히 경험하던 경우가 아니어서 다소 긴장되었다. 조심스럽게 시야 내의 금속 파편을 제거하며 수술을 진행했다. 수술현미경을 통해 보니 덩어리는 뇌농양, 즉 고름 주머니의 가능성이 컸다. 병변을 모두 절제하고 원인균을 알기 위해 고름과 주위 조직들을 미생물검사실로 보냈다. 조직검사 결과 뇌농양으로 확진됐고 미생물검사에서는 녹농균이 발견됐다. 이후 6주일간 항생제를 투여한 후 완치 판정을 내렸다. 순박한 모습의 환자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퇴원했다.

뇌 속에 왜 균이 들어갔을까 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이것저것 의심해 보았으나 파편과 함께 녹농균이 들어갔을 것으로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믿기 어려웠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문헌 검색을 했다. 놀랍게도 제1차 세계대전 때 입은 뇌 손상으로 40년이 넘어 뇌농양이 발생한 사례가 2건 보고돼 있었다. 이들은 발생기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전쟁터에서 금속에 의한 뇌 손상은 총상과 폭탄 파편에 의한 것으로 대별된다. 총상은 뜨거워진 총알이 곧바로 머리에 박히기 때문에 미생물 감염 가능성이 작다. 수류탄의 경우 파편에 흙이 묻기 때문에 균이 따라 들어갈 수 있다. 미생물은 특히 철 성분과 같이 있으면 오랫동안 잠복할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람의 면역력이 약해지는 등 여건이 되면 균이 다시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알고 나니 수긍이 가는 이론이었다.

한국전쟁은 우리의 반만년 민족사에 가장 불행한 사건이었다. 남북한 쌍방에 엄청난 수의 사상자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줬다. 무고한 많은 민간인도 희생됐다. 이 환자 역시 전쟁이 없었다면 겪지 않을 가족을 잃는 슬픔과 평생을 같이할 뇌 손상을 당했다.

학계에 보고하는 논문을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려웠던 옛 시절이 아련하기도 하고 전쟁 없는 세상에 사는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핵 문제로 경직된 남북관계와 굶주린 북한 주민에 대한 걱정도 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한국전쟁의 비극과 상처를 되짚어 보았다. 다시 한번 호국영령께 머리 숙이며 하루빨리 평화통일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 동 규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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