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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IMF의 자기변호에 환호하는 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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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소설가

국제통화기금(IMF) 기관지에 실린 ‘신자유주의:과잉 추천?(Neoliberalism: Oversold?)’이 큰 화제다. “여러분은 신자유주의가 안으로부터 죽는 것을 보고 있다”고 환호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국내 신문들도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번영을 불렀다고 선선히 인정한다. 그런 전제 아래 두 가지 사소한 문제들을 다룬다. 하나는 자본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제약이고, 다른 하나는 재정 긴축정책이다. 그들은 그 문제들에 대한 ‘신자유주의 과제(agenda)’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전자와 관련해 그들은 생산적 외자는 장려하되 투기적 외자는 규제하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규제의 비용이 적다는 논거는 제대로 제시되지 않았다. 외자를 생산적인 것과 투기적인 것으로 나누기는 쉽지 않고, 투기적 외자를 통제하는 데엔 상당한 비용이 든다. 외환 거래에 매기는 ‘토빈세(Tobin tax)’가 개념적 깔끔함에도 불구하고 도입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이런 걱정을 반영한다.

외자 유출이 경제위기를 부르거나 키운다는 주장은 명백히 그르다. 경제위기가 자본 유출을 부른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해외로 먼저 탈출한 것은 토착 자본이고 외국 자본은 몇 주 뒤에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재정 긴축에 관한 얘기는 요령부득이다. 뚜렷한 주장은 “충분한 재정적 여유가 있는 정부들은 빚을 지고 사는 것이 낫다”는 주장인데, 과연 도움이 되는 얘기일까? 개인이 지든 정부가 지든 빚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번 경제위기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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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짧고 주제는 사소하고 시의성도 없어서 이 글은 좀 느닷없다. 저자들은 셋이지만 IMF의 한 부서 소속이다. IMF의 역할이 길게 소개되고, IMF 총재에 대한 칭찬과 경쟁적인 유럽중앙은행(ECB) 전 대표에 대한 험담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IMF의 자기변호라는 느낌이 든다.

하긴 IMF로선 이런 글이 필요할 것이다. 국제기구라서 관료주의적이고 세계적 기준을 강요해야 하니 고압적일 수밖에 없다. 유럽 사람들이 주도하니 지역적·인종적 편견도 심하다. 그래서 한 나라에 내렸던 처방을 그대로 다른 나라들에 강요했다. 동아시아 외환위기 때 IMF 총재 미셸 캉드쉬가 보인 오만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제 IMF는 왜소하다. 세계 경제가 커지면서 영향력은 줄었다. 텃밭 유럽에서도 독일연방은행과 ECB에 밀린다. 게다가 유럽연합(EU)에선 논리적 정책을 펼 수 없다. 독일과 그리스를 함께 만족시킬 정책이 나올 리 없다. 기껏해야 경제적 논리에 정치적 현실을 가미한 타협안들뿐이다. 그것들은 전에 IMF가 어려운 나라들에 호기롭게 강요했던 정책들과 거리가 멀다. 2011년엔 현임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뉴욕에서 성추행으로 체포되기까지 했다. 비록 풀려났지만 IMF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그래서 이런 글이 나온 듯하다.

위기를 맞은 나라들에 강요했던 가혹한 정책들을 버려야 하는데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고백하기 싫으니 ‘신자유주의 과제’가 잘못됐다고 슬쩍 떠넘긴 것이다. 신자유주의 과제라는 것은 없다. 자유주의라 불리는 사회 철학에 무슨 과제가 있겠는가? 특정 사회의 자유주의자들이 문제들을 다룰 때 자유주의에 따라 경제학 지식을 이용해 현실에 맞는 정책들을 다듬어 낼 따름이다. IMF의 처방이 가혹했다고 비판을 받았지, 신자유주의 과제라는 것이 어디 따로 있어서 비판을 받았는가?

다행히 저자들은 “신자유주의 과제가 그런 정책들의 입안자들보다 비판자들에 의해 많이 사용되는 표지(label)”라고 말함으로써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 지식인들임을 보여 준다.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사회 철학의 바른 이름은 경제적 자유주의(economic liberalism)다. 자유주의의 원리가 경제 분야에 적용된 것이다.

저자들이 명확히 말했듯이 경제적 자유주의를 충실히 따르면 사회는 발전한다. 희망이 없다던 아프리카가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 개신교 윤리가 사회 발전의 동력이라는 막스 베버의 주장은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이제 경제적 자유주의가 동력임이 드러났다. 유럽의 개신교 사회들에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먼저 자라났을 따름이다.

자유주의는 개체들이 높은 지능을 지닌 인류와 잘 어울린다. 꽉 짜인 군체(colony)가 기본 단위인 개미나 벌과 같은 진사회성(eusocial) 종들엔 적용될 수 없다. 그리고 경제활동을 통해 시장을 발전시킨 인류에게만 경제적 자유가 뜻을 지닌다. 그래서 경제적 자유주의는 가장 깊은 수준에서 인간적이다.

복 거 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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