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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부자·권력자 위한 건축에 지쳤다’는 반 시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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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지난달 28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개막했다. 개막 하루 전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58·사진)와 현지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그는 막 공항에 도착해 캐리어를 끌고 점심 자리에 왔다. 식사 후 다시 일본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요즘 매주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곳은 구마모토현. 지난 4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반은 “지진 피해자를 위한 거주지를 호당 700만엔 예산으로 짓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사무실에서 실제 건설을 위한 모형 제작도 끝났다고 했다. 현장 공사는 이달부터 시작된다. 지진이 발생한 지 두 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행보가 빠르다.

“재난 복구 프로젝트에는 타이밍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돈을 쓰면서 먼저 시작합니다. 후원금을 기다리다가는 타이밍을 놓치기 쉬워요. 그렇게 하다 보면 후원금이 모이고 프로젝트가 이어집니다.”

반이 건축가로서 사회 공헌에 앞장서기 시작한 것은 1994년이었다. 르완다 내전 때 200만 명의 난민을 위해 종이 파이프로 임시 거주지를 만들었다. 종이를 건축자재로 선택한 이유는 쉽게 구할 수 있고, 저렴하고, 재활용이 가능해서였다. 이후 그의 종이 대피소는 전세계 재난 현장에 등장하고 있다. 건축가라면 한시적 용도보다는 자신의 디자인 철학이 담긴 건축물들을 더 남기고 싶을 터. 하지만 반의 생각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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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게루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만든 피난소. 종이파이프·천으로 가림막을 만들었다. [중앙포토]


“돈과 권력있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적인 건물(monument architecture)을 만드는데 지쳤습니다. 건축가로서 사회적인 책임을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지식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쓰기로 했습니다.”

반은 선구자다. 그가 20년 넘게 해온 사회공헌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의 주요 이슈가 됐다. 자신의 작품에만 천착했던 건축가들이 반처럼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 집 짓기에 나섰다. 난민이나 산촌벽지의 저소득층처럼 지금껏 절대 건축주가 될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고민이 쏟아졌다. 잡돌로 만든 벽돌, 소똥으로 만든 집 등 아이디어는 참신했고, 해법에는 힘이 있었다. 문제를 풀 수 있는 전문가가 전면에 나섰다는 데 의미도 있다. 건축의 사회적인 역할에 세계가 눈뜨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건축은 오랫동안 부동산과 건설의 영역으로 다뤄졌다. 그러나 건축과 연관된 사회 이슈가 산재해 있다. 재난 현장뿐만이 아니다. 낙후한 도심 재생, 젠트리피케이션(동네 상권이 살아나면서 임대료가 치솟아 원주민이나 임대 상인이 쫓겨나는 현상), 청년 주거 문제…. 건축은 캔버스가 아닌, 사회 속에 새겨지고 그 사회를 만든다. 반의 외침처럼, 국내 건축가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싶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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