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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난파선 탈출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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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교수이자 박근혜 정부의 인수위원 출신인 홍기택은 솔직하고 담백한 태도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장점이 있다. 박 대통령이 그를 인정하고 중용한 데에는 이런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과는 2007년 대선후보 시절부터 ‘경제 과외교사’로 만났다고 한다. 2013년 홍기택은 산업은행 회장에 취임하고 첫 국회 국정감사를 받을 때 야당 의원들이 낙하산 인사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는 “저는 낙하산으로 왔기 때문에 오히려 부채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럼 본인이 낙하산임을 인정한다는 말이냐’는 반문에 홍기택은 멋쩍은 표정으로 “그걸 제가 답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국감장에선 폭소가 터졌다. 그는 산업은행 회장 내정 때부터 “내가 낙하산은 맞다. 문제는 성공하는 낙하산이냐, 실패하는 낙하산이냐 하는 점이다”라는 낙하산론을 폈다. 그는 3년간 산업은행 회장을 지내다 베이징에 본부가 있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부총재로 나갔다.

그제 경향신문에 기록된 홍기택의 말도 솔직하고 담백했다.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의 자금 투입과 관련해서) 2015년 10월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당시 최경환 부총리, 안종범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으로부터 정부의 결정 내용을 전달받았다. 산업은행은 들러리였다.” 대우조선의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기로 결정한 책임자는 자기가 아니라 최경환·안종범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박 대통령의 내치는 최경환·안종범 두 개의 기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고, 최경환 의원은 새누리당과 정치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힘을 쓰는 것은 대통령이 깊이 신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무너지면 대통령이 입을 상처도 크다. 내부자의 폭로는 휘발성이 강하다. 내부자는 권력의 참여자이며 공동운명체의 일원인 까닭이다. 조직에서 배신자 소리를 들을지언정 대중은 내부자의 말에 진실이 담겼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홍기택의 발언 폭탄은 임종룡이 조심스럽게 해체하고 있다. 최경환·안종범은 뒤에 물러서 있다. 임종룡은 “대우조선 자금지원은 나와 산은이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이해조정은 필연적 과정이다. 조정 역할을 내가 했다”고 총대를 멨다. 홍기택은 산은이 들러리였다고 주장했지만 임종룡은 산은이 주도적 참여자였다고 반박한 것이다. 두 사람의 발언은 모순처럼 보여도 이해할 수 있다.

임종룡은 사전에 산은 실무자들과 긴밀하게 협의했다는 건데 홍기택이 그 과정에서 소외돼 있었다면 서별관회의 때 스스로 들러리라고 느꼈을 것이다. 결국 홍기택의 들러리 인식은 막중한 책임을 맡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신은 이너서클이 아니라는 소외감이 쌓인 탓으로 보인다. 성공한 낙하산이 되려 했으나 관료와 권력의 은밀한 소통구조에 끝내 끼어들지 못한 경계인의 한계를 보는 듯하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발생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게 정권의 임기 말 현상이다. 4·13총선 뒤 수세에 몰리던 박 대통령이 ①국회 문제 정리(서청원 의원 국회의장 포기 선언) ②청와대 정무수석 개편(김재원 수석 임명) ③12조원을 투입하는 조선 구조조정(유일호 경제부총리 발표) ④검찰 부패특별수사단의 대우조선·산업은행 등 전면 압수수색(김수남 검찰총장 재가)으로 국정의 새 면모를 선보인 그날, 홍기택 발언이 튀어나왔다. 일종의 난파선 탈출 증후군이다. 실세는 못 느끼는 소통부재와 본인만 느끼는 소외의식이 결합돼 집권 공동체에서 하선하려는 움직임이다.

야당 국회의원으로 성공적으로 이동한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 김병기 전 국정원 인사처장이 있다. 이탈자가 한 명 두 명 늘기 시작하면 집권세력 내부에 불신과 불안과 분열이 스멀스멀 커져간다. 세우기는 어려워도 무너지기는 쉬운 게 임기 말 권력이다. 심리적인 문제는 민심으로 풀어야 한다. 사정이나 고강도 긴장 조성으론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난파선 탈출 증후군은 대통령의 비전과 의지를 국민이 얼마나 지지해주는가에 따라 악화될 수도 경감될 수도 있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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