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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은 슬픈 사랑 노래…과거 잊지 말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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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구 한중미디어연구소장이 지난 3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장병 묘역에 앉아 수첩에 비명(碑銘)을 채록하고 있다. 그는 “여름에는 눈물과 땀이 동시에 얼굴에 흘러내릴 때도 많다”고 말했다. [사진 최정동 기자]

초로의 남성이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묘비 앞에 주저앉아 수첩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제61회 현충일을 사흘 앞둔 3일,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의 제44 장병 묘역에서 만난 조재구(64) 한중미디어연구소장의 모습이다.

‘보고 싶은 네 얼굴. 꿈에라도 보고파. 불러보고 싶은 네 이름. 저 바다로 향하여 소리높여 불러 본다.(1974년 충무항에서 순직한 해군 일병 윤OO의 묘)’

조 소장은 국립현충원의 비명(碑銘)들을 채록하고 있다. 틈날 때마다 현충원에 들러 묘비와 묘비 앞 추모 비석 등에 새겨진 유족들의 헌사를 담는다. 그의 수첩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부터 6·25와 베트남전쟁 전사자, 연평해전·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국군장병, 그리고 소리 없이 스러져 간 호국영령들을 기리는 짧은 글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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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제2 연평해전 전사자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합동 묘역. [사진 조재구]

그는 31년째 매달 네댓 차례 현충원이 있는 서울과 대전을 오간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은 아니다. 6·25 전사자인 작은아버지를 참배하러 31년 전에 찾아간 현충원에서 목격한 장면이 계기가 됐다.

“한 비석 앞에 젊은 여인이 앉아 있었어요. 근처 개울서 떠온 물로 비석을 오랫동안 정성스레 닦더군요. 주위에는 서너 살 남짓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지루한 듯 놀잇감을 찾고 있었죠. 그 모습이 송곳처럼 가슴을 찔렀어요. 한 서린 역사의 현장이 거기 있었어요.”

유족들이 남겨놓은 글귀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조 소장은 “유족의 아픔이 그들만의 아픔으로 멈춰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그 아픔을 공유하고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달려왔다”고 말했다. 중복되거나 지나치게 종교적인 내용 등은 제외하고 1000편 가까이 글을 모았다. 그중 165편을 추려 지난달에 『님은 조국의 별이 되어』(mcn미디어)를 출간했다. 판매 수익금은 모두 보훈 가족들을 돕는 데 쓸 계획이다.

조 소장은 3일에도 오전 일찍부터 현충원에 와 있었다. 그를 따라 역대 대통령 묘역부터 애국지사 묘역, 장병 묘역, 경찰 묘역까지 현충원 곳곳을 거닐었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와 박혔다.

‘나의 무덤엔 묘비가 쓸데없다. 고향에 묻히어 한 줌 흙 되면 그뿐.(1964년 서거한 애국지사 노성원의 묘)’

‘엄마 누나 가슴에 웃는 얼굴로 새근새근 잘 자라 우리 광진아. -엄마하고 누나가. (1969년 월남에서 전사한 육군 병장 김광진의 묘)’

유족과 지인들이 남긴 비명에는 먼저 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자랑스러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래서 조 소장은 이를 ‘죽은 이에게 남은 이가 바치는 사랑 노래’라고 표현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비명이 있어요. ‘만날 때까지 -어머니로부터.’ 다섯 글자만으로도 어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그 어떤 문학 작품보다 마음에 사무치지 않나요?”

조 소장은 “아무도 하라고 한 적 없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우연히 이 일을 자신이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기에 하는 숙제”라고 말했다. 덕분에 그는 1박2일 주말 여행으로 아내와 대전 현충원을 즐겨 가는 무드 없는 남편이기도 하다. “과거를 망각한 이들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그는 다시 펜과 수첩을 꺼내 들었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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