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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가면 가만있겠능교” vs “다들 밀양이 될 끼라 생각”

영남권 신공항 유치를 놓고 부산과 대구의 경쟁이 치열하다. 왼쪽은 2일 부산에서 열린 가덕 신공항 유치염원 촛불문화제, 오른쪽은 4일 대구에서 개최된 밀양 신공항 홍보전. 송봉근 기자, [사진 남부권 신공항 추진위]



가덕도냐, 밀양이냐.



[영남 신공항 전쟁] 현지 르포

신공항 입지 발표를 앞두고 영남권이 들썩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부터 10년을 끌어온 신공항 후보지 선정 발표(24일께)가 임박하면서 부산(가덕도)과 대구(밀양)를 중심으로 한 유치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산의 정도가 더 세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부산에 불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2일 오후 7시30분 부산 서면 쥬디스태화 앞 광장은 여야 구분이 없었다. 김해공항 가덕이전 시민추진단이 주최한 ‘가덕 신공항 유치염원 범시민 촛불문화제’ 제일 앞줄에 새누리당 김세연·하태경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김영춘·최인호·전재수·김해영 의원과 함께 촛불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가덕신공항 안 되면 민란이 일어난다’ ‘대구공항은 쓰지도 않으면서 투기욕심 부리는 대구 OUT’이라고 적힌 손팻말도 눈에 띄었다. 행사는 참가자 3000여 명이 1.6㎞가량 가두행진을 벌여 송상현광장에 도착한 뒤 야광 종이비행기 날리기 퍼포먼스를 벌이고야 끝났다.



“고정장애물, 평가항목서 사실상 제외” 부산 여론이 과열된 건 대구·경북(TK) 출신인 박근혜 대통령이 TK가 밀고 있는 밀양을 낙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지난달 25~27일 진행된 신공항 입지용역 전문가 자문회의가 끓는 부산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익명을 요구한 부산 측 자문위원은 2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비행기 이착륙에 가장 중요한 ‘고정장애물’이 평가항목에서 사실상 제외됐다. 이는 밀양에 유리한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가덕신공항추진 범시민운동본부 박인호 상임공동대표는 “평가기준 가중치는 당초 5개 시·도가 함께 논의하기로 했는데 현재 비밀사항이 돼버렸다”며 “불공정 평가를 시정해 달라는 게 우리의 요구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더민주 부산시당 가덕신공항 유치추진위원장인 최인호 의원은 “밀양으로 결정되면 시민불복종운동을 진행할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 강주열 남부권 신공항 범 시·도 추진위원회 위원장은 3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부산이 저렇게 죽기 살기로 덤비는데 우리도 가만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밀양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그는 “지난해 1월 유치경쟁을 하지 않겠다는 5개 시·도 지사들의 합의 때문에 지금까지는 자제했다”며 “시민들이 ‘우리도 쎄리뿌자(힘껏 때리자)’고 항의전화를 걸어와 대응키로 결정했다”고 했다. 위원회는 4일 대구백화점 앞에서 시민들에게 밀양 신공항 홍보 팸플릿을 돌렸다. 경북·울산·경남 등 영남권의 다른 도시에서도 홍보 캠페인에 나서기로 하는 등 대응 수위를 차츰 높일 계획이다.



경쟁 열기는 정치권을 넘어 일반 시민들에게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역 앞에서 만난 양모(68)씨는 “(신공항이) 밀양으로 가믄 부산 사람들이 가마이(가만) 있겠능교. TK 시·도지사들이 즈그 돈 아이라꼬 밀양 편드는 긴데 혼을 내줘야지”라고 말했다. 김종구(65)씨는 “대선 전에 박근혜 대통령이 ‘가덕도 신공항 해주겠다’고 못을 안 박아주믄 인자 내가 나서서 새누리당 몬 찍게 할 끼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평생 새누리당만 찍었다는 김모(78·여)씨도 “여가(가덕도가) 된다카마 모르지만 그리 안 된다카믄 (다음 선거에선) 마음이 바끼겠지”라고 했다. “밀양에다 하믄 (가덕에 짓는 것보다) 돈이 1.5배가 더 들어간다대. 가덕도에는 산 안 깎아도 되고, 나는 장소(활주로)만 만들어 놓으마 되잖아”(정도근씨·68)라며 구체적인 수치를 꿴 시민을 만나기도 어렵지 않았다.



부글부글 끓는 부산과 비교하면 대구는 차분한 편이다. 개인사업을 한다는 류중규(40)씨는 “주변에서 신공항 얘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강주열 위원장은 “대구 사람들이 나서는 걸 꺼려서 적극적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박모(52)씨는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밀양이 될 끼라 생각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다른 건 몰라도 신공항은 해주겠지. 안 그러면 우예(어떻게) 할 낀데, 이런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한상돌 대구관광협회 회장은 “TK에서 대통령이 5명이나 나왔는데 지금까지 대구에 해준 게 뭔가. 대구가 전국 7개 특별?광역시에서 GRDP(지역내총생산)가 매번 꼴찌”라고 말했다. 이어 “이명박 전 대통령이 죽인 신공항을 다시 살린 사람이 박 대통령이다. 알아서 잘 결정할 것으로 대구시민들은 믿는다”고 했다. 김영철 계명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겉으론 차분하고 조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다르다. 공항에 대한 열망은 대구가 부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는다”며 “밀양이 떨어질 경우 대구 사람들은 진짜 죽기 살기로 나설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구선 백지화 또는 연기 시나리오 걱정 대구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정부가 사업을 또 한 번 백지화하거나, 발표를 미루는 것이다. 백지화할 경우 부산이 민자·외자를 들여와 독자적으로 신공항을 추진할 수도 있고, 발표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경우 밀양 유치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대구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이모(52)씨는 “부산에서 촛불집회 한 거 보고 다들 ‘이러다 부산에 밀리는 게 아니냐’고 웅성거린다. 우리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지역이기주의 싸움으로 비칠까 봐 참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과 밀양 간 다툼으로 경남은 유탄을 맞게 됐다. 대구에서 내세운 신공항 후보지 밀양은 경남에 있다. 그런데 김해시의회는 지난달 18명 만장일치로 밀양 신공항 유치 반대 결의안을 채택했다. “산지 훼손 등 환경 파괴와 지역주민의 소음 피해가 예상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홍준표 경남지사는 “밀양 신공항 유치와 관련해 김해시 의원들의 집단행동은 심히 유감스럽다”고 비난했다. 홍 지사는 대구·경북·울산·경남 등 밀양을 지지하는 4개 시·도지사들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언론은 신공항 문제를 TK와 PK의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는지 의아스럽다”며 “신공항의 당사자는 PK끼리 경쟁이고 TK는 간접적 이해관계자일 뿐”이라고 썼다.지도를 펼쳐보면 태백산맥 끝자락의 ‘영남알프스’가 경북 경주와 청도, 울산, 경남 밀양과 양산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다. 같은 경남이지만 해발 1000m급의 영남알프스 봉우리들을 경계선으로 남쪽 지역은 가덕도를, 북쪽 지역은 밀양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편이다. 영남권에서도 부산과 대구가, 그리고 영남알프스 이남과 이북이 갈라서 신경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영남권 대분열의 배경엔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인해 지방이 소모적 정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경제적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2011년 동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도 (인천·김포공항 수요가 줄어들까 봐) 수도권 등에서 신공항을 백지화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김해공항 가덕이전 시민추진단 조성제 상임공동대표)이라거나 “공항이 아니면 다 망한다는 환원주의적 사고방식이 너무 안타깝지만 그만큼 지역경제가 엉망이니 심정은 이해가 간다”(김영철 교수)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지낸 성경륭 한림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영남권 신공항 사업은 이미 정부의 정책관리 실패작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신공항 입지 기준이 뭔지, 가중치는 어떻게 둘 건지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가 사전에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부산과 대구의 의견을 반영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신공항 부지 선정 이후에 벌어진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승자와 패자가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항 건설에서 나오는 개발이익을 5개 지자체가 나눠 갖는 이익공유제도 거론되고 있다.



 



 



부산=추인영 기자, 대구=이철재 기자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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