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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릇서 영감얻은 볼 서양서도 사랑받고 있죠


영국 테이블웨어 ‘덴비’ CEO 라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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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1위 테이블 웨어 브랜드인 ‘덴비’의 세바스티안 라젤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오목한 밥·국 그릇에서 영감을 얻어 볼 제품을 21개 종류로 늘렸는데, 서양권에서도 대단한 인기라고 말했다.



그릇을 포함한 테이블웨어는 생활 수준과 밀접하게 관련 있다. ‘배를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서 벗어나면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궁리하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어떻게 먹을 것인가’라는 화두와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에는 식재료·조리법으로 음식의 질을높이거나 아름다운 테이블웨어를 활용해 식사 경험 자체를 끌어올리는 게 포함된다.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영국 테이블웨어 브랜드 ‘덴비’의 최고경영자(CEO) 세바스티안 라젤을 만났다. 그는 지난달 덴비 한국법인의 출범을 알리기 위해 방한했다.
영국 테이블웨어 1위 브랜드인 덴비는 미국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 해외지사를 열었다.
그는 한국 소비자의 안목에 대해 칭찬과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덴비는 1809년 영국 더비셔 지방에서 설립돼 207년째 이어지고 있는 테이블웨어 브랜드다. 이 지역의 고급 점토를 반죽해 불에 굽는 스톤웨어(도자기류)인데, 최소 20번의 수작업을 거쳐 핸드메이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세계 40여 개 국가에 수출하고 있지만 해외 지사는 북미와 한국 두 곳에만 있다. 한국 시장 규모를 감안했을 때 이례적인 선택이다.

 
북미 다음으로 한국 지사를 설립한 이유는.
“한국은 아시아의 트렌드 세터로 명성이 자자하다. 패션과 뷰티에 관한 트렌드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빠르게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다는 건 한국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지역까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성공하면 몇 년 뒤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릇 트렌드도 그렇다는 얘긴가.
“뷰티 산업은 한국 기업들이 워낙 강했지만 테이블웨어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도자기의 역사를 가진 나라여서 소비자의 도자기 제품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다. 그래서 200년 넘은 역사를 가진 브랜드가 주는 퀄리티와 헤리티지, 장인 정신을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 글로벌 브랜드를 선호하는 태도까지 어우러져 매력적인 시장이다. 우리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미리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이 그릇의 트렌드 세터가 된 것은 소셜미디어 때문일까.
“흥미로운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 소비자들은 소셜미디어 사용에 있어서 가장 앞서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한국 음식과 덴비 그릇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인들이 업로드하는 사진 양도 엄청나다. 덴비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오는 전 세계 포스트 중에서 75%가 한국에서 올린 사진들이다.“
 
한국 소비자가 그만큼 많은가.
“덴비 소비자의 75%가 한국에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인의 소셜미디어와 사진 공유가 유난히 활발하기 때문이다. 그릇에 음식을 담을 때 조화로움이 중요하다는 걸 우리 경영진에게 일깨워준 것도 한국 소비자들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그릇만 생각하다 보면 음식과의 조화를 잊을 때도 있다. 덴비는 패턴이 많지 않은, 단순한 외관이 특징이다. 패턴이 많으면 음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모양새가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점을 한국 소비자들이 올린 사진에서 보고 배운 것 같다.”
 
아이디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
“한국에서 배운 것을 영국과 미국 시장에도 적용해 본다. 덴비는 한국 소비자를 위해 밥그릇과 국그릇, 반찬 그릇 등 여러 종류의 볼(bowl)을 만들었는데, 이런 볼이 이제는 서양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한국에서 김치를 담은 볼에 서양에서는 딥(dip·찍어 먹는 소스)을 담아낸다. 밥·국 그릇에 서양인들은 후무스(hummus·으깬 병아리콩과 오일을 섞은 중동 음식)를 낸다.”
기존 서양 식탁에는 볼 종류가 없나.
“전통적으로 서양 식단에서는 볼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시리얼 볼, 샐러드 볼, 디저트 볼 등 세 종류 정도 있다. 한국에서 영감을 받아 덴비는 전 세계적으로 21 종류의 볼을 내놓고 있다. 2012년 한국식 밥·국 그릇을 내놓은 지 4년 만에 7배로 늘렸다. 조금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느새 우린 볼과 사랑에 빠졌다.(웃음) 한국 소비자들이 올린 사진에서 낮고 넓은 볼, 깊고 오목한 볼, 국수를 담은 그릇 등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다른 나라 소비자 반응은.
“서양 식탁은 기본적으로 접시 문화인데, 아시아 문화와 음식에서 영감을 얻은 볼 문화가 본격 확산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볼 판매는 매출의 50%에 가깝다. 과거에는 10% 미만이었다.”
 
국물 있는 음식이 적고, 음식 문화가 다른데.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컴포트 푸드(comfort food·위로가 되는 음식) 현상이다. 파스타이든, 라면이든 어떤 음식이라도 볼에 담기면 아늑하고 따뜻하며 편안하고 다정한 느낌을 준다. 자연과 함께 하는 야외 식사 트렌드에서도 볼은 유용하다. 다양한 크기의 볼에 여러 종류 음식을 조금씩 담아 타파스처럼 차리는 식이다.”
 
그밖에 한국 소비자들에게 배운 게 있다면.
“영국과 미국 소비자들은 대체로 그릇을 세트로 구매한다. 그런데 한국 젊은 소비자들은 매우 창의적이다. 여러 라인에서 한두 가지씩 가져와 믹스 앤 매치를 통해 각자 마음대로 스타일링 한다. 영·미 소비자들에게는 눈이 번쩍 뜨일 새로운 트렌드이다.”
 
테이블웨어와 관련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영국 사람들에게 덴비는 온 가족이 모이는 일요일 만찬에 등장하는 식기였다. 격식을 차린, 최고의 한 끼를 먹을 때 사용했다. 오늘날 식사 장면은 더 글로벌해지고 캐주얼해졌다. 격식을 강조하는 테이블웨어의 시대는 당분간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밥·국 그릇은 어떻게 만들었나.
“작년 한국에 와서 일반 가정을 방문해 찬장까지 열어보며 소비자들과 의견을 나눴다. 작은 아파트에 찬장이 빼곡하고, 그 안에 여러 개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겹쳐서 보관할 수 없는 그릇은 한국에선 팔릴 수 없겠구나 생각했다. 작은 디테일이 큰 차이를 만든다.”
 
브랜드는 오래됐지만, 디자인은 현대적인데.
“오랜 역사와 유산, 장인정신이 현대적인 소비자 생활과 제대로 만나면 강력한 조합이 된다. 최근 한국 지사 출범을 기념해 새로 선보인 ‘내추럴 캔버스’ 라인은 소박하지만 유려한 동양의 식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60년대 덴비를 대표하는 갈매기 모양의 ‘셰브런’ 패턴을 앉혔는데 모던한 느낌이 잘 어우러졌다.”
요즘 테이블웨어 트렌드는.
“덴비의 강점은 중요한 자리에 사용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말쑥하지만, 매일 사용해도 될 정도로 캐주얼하다는 점이다. 이게 요즘 트렌드다. 요즘 소비자들은 특별한 날을 위한 것과 매일 쓰는 것을 구분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격식 있는 제품, 값비싼 식기는 대부분의 시간을 찬장에서 보내게 된다.“
 
100% 영국에서 생산하는 핸드메이드 제품인데 가격은 최고가는 아니다.
“덴비는 매일 쓰는 제품이니 가격이 그에 걸맞아야 한다. 오랜 생산 경험과 제조 노하우,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덕분에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연간 600만 개 제품을 장인 225명이 만든다. 점토 반죽, 틀에 붓기 등 기계화된 공정도 있지만, 손잡이를 붙이고 유약을 묻히는 등 단계마다 장인의 손길이 더해진다. 제품의 핵심 경쟁력은 더비셔 지방의 점토다. 앞으로 25년간 쓸 수 있는 분량의 점토를 지난해 채굴해 보관하고 있다.”
 
덴비의 목표는 뭔가.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다. 식탁을 차리고 음식을 서빙하고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는 기쁨을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좋겠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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