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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점진통일, 가능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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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북한 문제에 관한 제 특강이 끝날 무렵 선생님께서 던지신 “점진통일, 과연 가능하겠습니까”란 질문에 이제 보다 자세히 답하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통일은 가능하지만 우리가 이룬 경제발전이나 민주화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이며 점진통일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과정을 다 통제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고 복잡한 외교적 문제도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점진통일은 남북이 먼저 경제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다음에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순차적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우리나라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도 점진통일에 기초해 있습니다. 즉 1단계인 화해와 협력, 2단계인 남북연합을 거쳐 3단계에서 통일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방안에는 북한의 비핵화,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 등 핵심적인 문제가 고려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방안이 나왔던 1994년에는 북핵 문제가 시작되는 즈음이었고 동유럽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체제 이행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지금 관점에서 보면, 핵을 가진 채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북한과 연합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구상입니다.

햇볕정책처럼 경제 교류를 하면 자연스럽게 비핵화와 체제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믿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비핵·개방·3000이 제시한 대로 우리가 경제적 인센티브를 주면 북한 정권이 자발적으로 비핵화와 체제 전환을 할 것이라는 믿음은 동화 수준입니다. 북한의 핵 고도화가 상당히 진전된 현시점에서는 핵 문제와 북한 문제를 분리해서 투트랙으로 가자는 의견도 대안이 되기 어렵습니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사안의 시급성을 알지 못한 채 지금 같은 북한 정권을 대상으로 너무 고상한 정책을 펴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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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좌절감 때문인지 북한 붕괴를 유도해 급진통일을 하자는 사람도 있습니다. 4차 핵실험 이후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국민 다수는 여전히 점진통일을 지지하는 듯이 보입니다. 구글 검색창에 점진통일과 급진통일을 입력하고 검색된 자료의 수를 헤아려 보니 점진통일이 64%, 급진통일이 36%입니다. 이는 급진통일의 경제적 비용과 정치·사회적 혼란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남북을 분리시켜 점진적으로 통일하자는 발상 역시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은 대북제재에 집중하면서도 그 이후를 생각하며 대북정책의 틀과 전략을 다시 짜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대북정책은 단기적으로 작동 가능하고, 중기적으로 지속 가능하며, 장기적으로는 통일 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작동 가능하려면 남북한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경제 교류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그 교류가 북한 체제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도록 설계돼야 합니다.

새로운 대북정책이 작동할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90년대 이전과 달리 현재의 북한 경제는 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있고 무역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북한 주민과 권력집단의 생명줄인 시장 활동과 무역을 김정은이 중단시킨다면 경제뿐 아니라 정권이 붕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둘 수밖에 없다면, 북한은 밑과 밖으로부터 밀려드는 시장의 힘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맞게 될 것입니다. 또 이 시장의 힘은 북한 정권의 군사적 도발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대북정책이 지속 가능해집니다.

만약 북한에 주식시장이 생긴다면 북한 핵실험은 주가를 폭락시킬 것입니다. 또 남북과 주변국이 경제적으로 밀접히 연결된다면 사업을 염려하는 북한 돈주들과 시장 활동을 걱정하는 주민들이 군사적 도발을 싫어할 것입니다. 더욱이 북한 도발이 중국의 경제적 이익에 큰 타격을 주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중국도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 주식시장이 생긴다는 것은 먼 미래에나 가능할 일이지만 방향은 그렇게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두는 경제적 연결망이 평화의 보루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북한 권력자의 마음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면하는 제약 조건을 변화시키는 정책입니다.

좋은 통일은 북한의 체제 이행, 경제성장과 더불어 남북 경제 통합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가능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복잡한 과제를 해결한 사례는 아직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대북정책은 북한과 통일에 대한 체계적 지식에 기초하기보다 지도자의 성향과 표 계산, 구시대적 이념에 휘둘려 왔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지식, 좋은 통일의 비전을 가진 지도자와 우리 사회의 역량이 결집된다면 점진통일로 가는 길을 새로이 개척할 수 있습니다. 저도 여쭙니다. 더 나은 통일방안이 있습니까.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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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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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