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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대선 연못에 발령된 경계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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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교수·사회학

몇 년 전 대선 열기가 한창 달아오르던 가을 아침, 모 언론사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전화 받으셨어요?’ 확신에 찬 기자의 질문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기자는 집요했다. ‘혹 전화를 받는다면 수락하실 건가요?’ 단도직입적 공세, 5초 궁리 끝에 내가 답했다. ‘전화로 거절하는 건 예의지국의 선비가 아니죠, 일단은 심사숙고의 예를 갖춰야겠죠.’ 그날 오후 강의실 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난리가 났다. 얼마나 울려댔으면 배터리가 나갔을까. 언론에 속보로 뜬 걸 나만 몰랐다. 수락했다는 오보 말이다.

언론은 거두절미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제주 관훈클럽 간담회에 운집한 언론사들은 유엔이고 뭐고 안중에 없었다. 출마의 희미한 징후를 잡는 것이 목표였다. 반기문 총장도 그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웬일? 평소의 눙치는 외교화법을 성큼 넘어섰다. ‘한국 시민으로서 역할을 결심할 것이다.’ 기자들에겐 야인(野人)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이다. 야인의 대척점엔 조정(朝廷)이 있다. 요 한마디는 즉각 ‘출마선언’으로 번역돼 전국에 타전됐다. 반 총장이 둘을 말했다면, 기자들은 대여섯으로 확대했고, 언론 헤드라인은 열을 뽑았다. 둘을 말했기에 오보는 아니다. 출마가 기정사실화됐다. 언론은 돌아가는 길을 봉쇄했다. 후보 탄생, 그것도 대어(大魚)다. 잔챙이가 파닥거리는 대선 연못에 경계경보가 발령됐다.

내년 1월 1일, 임기를 마친 반 총장은 어떤 형식으로 한반도에 상륙할지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환영하는 구름 인파에 손을 흔들며 민항기 트랩을 내려 와야 할지, 잠수정을 타고 아무도 몰래 잠입해 광화문광장에 깜짝 출현할지 말이다. 아니면 부산이나 여수에 상륙해 서울까지 민심대장정을 벌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다. 금의환향은 따 놓은 당상이니 견제세력의 심사가 복잡해졌다. 해방 직후 김구와 임시정부 일행의 귀국을 작은 이벤트쯤으로 격하하려 했던 것처럼 여야 잠룡들은 어렵게 구축한 교두보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해야 할 입장이다. 지금은 애써 태연한 척들 하지만 한여름 무럭무럭 피어 오를 유권자의 기대감이 12월 성탄절 즈음 산타 선물 보따리 같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면 잠룡들의 낭패감은 극에 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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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초조한 사람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그는 뭇 서민의 인기를 등에 업은 정계 구원투수이자 신데렐라다. 반 총장의 등판은 신데렐라 안철수에게서 마술구두를 빼앗아 구데렐라, 아니 하녀로 복귀시키는 땡땡이 종소리다. 감각이 느린 문재인 전 대표는 역시 반응을 안 했고, 무대 김무성은 ‘두고 봅시다’로 놀란 내색을 감췄다. 박원순 시장은 유엔결의안을 들먹이며 일종의 반칙으로 규정, 경계심을 보인 반면 ‘반기문 목장의 혈투’에 빗대 한판 붙어 볼까 하는 프로 근성을 드러낸 이는 불사조 박지원이었다. 정치 초입, 그 폭풍의 언덕을 넘지 못할 거라 은근히 기대하면서 말이다.

사실 열렬한 환영인파 뒤에는 혹독한 유격훈련을 거쳐야 하는 게 한국 정치판이다. 철인 7종 경기 같은 장애물을 돌파하고, 금융 거래, 부동산 매매, 가족 문제를 포함해 감춰둔 사생활을 드러내야 한다. 혹시 신상털기에서 걸리면 초주검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내성은 길러뒀을 거다. 그의 별명이 기름장어(slippery eel) 아닌가. 아무리 오물을 던져도 티 나지 않은 얼룩소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페인트 깡통을 던져도 말끔한 방수 피부를 자랑하는 게 장어 아닌가.

부동산 투기의 대명사인 트럼프가 미국 대선을 뚫는 판에 이런 한국판 검증은 좀 구태의연하다. 국제정세 혹은 국제담론과는 아예 문 닫고 살아온 우물 안 개구리들이 유치한 이익투쟁으로 합창·제창하는 정치판의 소음·잡음에 이미 식상한 유권자들의 가슴을 글로벌 지평으로 넓게 펴준다면 더 바랄 게 있겠는가. 로컬 쟁점에 매몰된 한국을 뉴욕에서 바라보니 한심스럽고 창피한 생각마저 든다는 반 총장이 글로벌 도끼로 한국 정치를 내려친다면 속 시원할 거다. 그럴 수 있을까?

유엔의 내부 평가가 어찌됐든 그는 대외 경계심과 내향심리가 유난히 강한 한반도에서 세계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복닥거리는 내부 엉킴을 외부 시선으로 풀어헤치는 것은 ‘지난 일을 경계하여 훗날 우환을 없애려는(懲而毖後患)’ 임진년 재상 서애 선생의 깊은 시름이었다. 하회마을 류성룡 고택 방문도 징(懲)과 비(毖)의 시대 과제가 무엇인지를 스스로 각오하는 발걸음이었을 거다. 돌아가는 길은 봉쇄됐다. 기왕 내친 걸음, ‘세계시민’의 수장인 그가 한국 정치판의 좀스러운 입씨름과 구차한 행위를 바꾸는 것, 글로벌 공생체제의 요건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봉쇄의 의미는 크고 깊다. 대선 연못, 입 큰 배스가 설치면 잔챙이 붕어도 몸집을 키운다.

송호근 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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