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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벽돌폰에서 스마트폰까지 사진으로 보는 휴대폰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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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폰'부터 스마트폰까지 휴대전화기 진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여주 '폰 박물관'이 지난달 26일 개관했다. 초대 관장 이병철(66)씨가 15년간 수집한 전화기는 무려 3300여 종. 전화기 역사에 획을 긋는 각종 분야별 최초 기종들이 즐비하다. 낯익은 전화기부터 진귀한 전화기까지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하다 보면 추억과 감동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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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 지구상 최초 전화기 발명자는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안토니오 무치라는 사람이 사실상 최초 발명자다. 무치는 벨보다 16년 앞서 임시특허를 냈다. 병든 아내를 돌보기 위해 전화기를 제작했던 그는 돈이 부족해 임시 특허 등록을 했다. 그러는 사이 벨이 정식으로 특허 등록을 하자 무치는 소송을 냈고, 승소 직전 아쉽게도 무치가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벨이 공식적 최초 발명자로 인정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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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박물관에 들어서면 스웨덴 에릭슨사가 1895년 생산한 ‘자석식 벽걸이 전화기’가 전시돼 있다. 김구 선생의 목숨을 구한 사연이 담겨진 전화기와 같은 기종이다.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으로 격분해 있었다. 황해도 안악군에서 우연히 스친 일본인을 일본군 정보장교로 여긴 김구 선생은 그를 응징했다. 이때가 1896년 김구 선생이 21살 때다. 3일 후 체포된 김구 선생은 사형 선고를 받아 인천 교도소에 수감됐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처지가됐다.

1897년 7월 고종은 '국모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을 죽였다'는 범행동기를 가상히 여겨 어전회의에서 김구 선생의 사형집행 정지명령을 내렸다. 사형집행 3일 전이다. 이때 서울-인천 전화선이 개통됐다. 전화선 개통이 3일만 늦어졌더라면 김구 선생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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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폰은 한 때 부와 특권(?)의 상징이었다. 자동차 안에서 통화할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 포함해 348명에 불과 할때 도 있었다. 1984년 4월 차량 이동전화 서비스가 시작되자 서민아파트 한 채 값인 400만 원을 내고도 신청자가 몰리자 추첨으로 뽑기도 했다. 당시 대졸자 초임이 30만원선. 세계에서 네번 째로 도입된 모토롤라 AMPS방식 카폰은 3년만에 가입자가 1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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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미국 일간지 USA Today가 1982년 이후 25년간 미국인의 삶을 바꾼 발명품 25개를 조사했다. 1위가 휴대전화. USA투데이는 당시에 휴대전화가 인간의 삶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것으로 평가했다. 세계 최초 상용 휴대전화는 모토로라가 1973년 개발한 다이나택(DynaTAC)시리즈다.

당시 다이나택을 개발한 모토로라 엔지니어 마틴 쿠퍼는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지 107년 만에 전화기는 선을 버리게 됐다”고 언급하며 휴대전화 시장의 서막을 알렸다. 1983년 전 세계에 출시, 상용화된 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x는 일명 ‘브릭폰(brick phone, 벽돌폰)으로 불렸다. 무게는 1.4㎏, 배터리 지속시간은 1 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지만 가격은 3995달러(약 37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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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올림픽 개막과 함께 한국 휴대전화 역사에 기적이 일어났다 . 당시 북한의 위협 등으로 무선 통신에 대한 규제와 제약으로 휴대전화에 관한한 한국의 휴대전화 제조 기술과 기반은 모두 열악했다. 삼성전자 연구원 40명은 모토로라 다이나택 8000x 10대를 구입해 분해와 조립을 거듭하며 연구에 몰입했다. 마침내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47명의 IOC위원에게 SH-100 모델을 선보이며 휴대전화의 지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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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이르러 휴대전화는 본격적으로 대중화시대를 열었다. 1989년 선두주자 모토로라는 350g짜리 마이크로택(Micro TAC)을 출시했다. 휴대전화에 '폴립'과 '진동' 모드를 최초로 도입하는 혁신적인 모습으로 휴대전화기 시장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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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문자 메시지(SNS)는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다. 영국 컴퓨터 엔지니어 닐 팹워스가 1992년 12월 3일 영국 이동통신사 보다폰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이 회사 간부에게 보낸 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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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까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삼성전자는 세계 1위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로라를 넘어 설 수 없었다. 그 해 8월 휴대전화 시장에 도전장을 낸 삼성은 SH-770 일명 '애니콜'을 내놨다. '어디서나 잘 걸린다'(Anywhere Call)라는 마케팅 전략을 앞세워 국내 최초 자체 개발에 성공한 애니콜은 단숨에 국내시장에서 세계 1위 모토로라를 꺽고 '애니콜 신화'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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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들어서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가로본능, 울트라 에디션,블랙 라벨 등 각종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앞세워 휴대전화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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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애니콜 SCH-E100(왼쪽)은 2001년 5월 선보인 세계 최초 3G 휴대전화다. CDMA2000 1X EV-DO방식 휴대전화로 31만 화소 외장 카메라 기능을 탑재하고 촬영한 사진을 포토메일로 보낼 수 있는, 한 때 최강 3세대 휴대전화다. 2006년 5월 IT강국 코리아의 위상을 한층 더 높여주는 삼성애니콜 SCH-W200(오른쪽)이 출시됐다.

바로 세계 최초의 HSDPA(High Speed Down-link Packet Access) 상용화 서비스가 우리나라에서 시작 되었다. '삼성애니콜 SCH-W200(오른쪽)은 위성 DMB을 지원하는 3.5세대 단말기로 새로운 이동통신의 세계를 열었다.

사진·글 =오종택 기자 oh.jongta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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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