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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설움’ 직접 들으려…법원, 내달 소록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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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있는 옛 한센인 감금시설. [프리랜서 오종찬]


한센인들의 100년 한(恨)이 서린 소록도에 판사들이 직접 찾아가 재판을 한다. 피해자 엄모씨 등 139명이 국가배상 청구소송 진행 과정에서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는 소록도 병원시설 등을 보고 판단해달라”고 요청하자 담당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엄씨 등은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소록도병원에서 1950~70년대 강제단종(정관수술)·낙태수술을 당했다”고 주장해왔다.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 강영수)는 다음달 20일 특별기일을 지정해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에서 현장 검증 및 양측 증인심문을 진행한다고 29일 밝혔다. 한센인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공식적으로 소록도를 찾는 건 처음이다.

특별기일에는 소록도에 사는 피해 한센인이 증인으로 출석해 발언한다. 재판부는 단종·낙태수술이 이뤄진 병원 수술실 등 소록도 시설을 시찰할 계획이다. 현장 재판을 잡은 데는 강영수(50·사법연수원 19기) 재판장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법원 관계자는 “소록도에 있어서 서울고법까지 오기 어려운 증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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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소록도병원에서 1962년부터 43년 간 봉사한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


소록도병원에서 43년간(1962~2005년) 봉사활동을 했던 마리안느 스퇴거(82) 수녀가 증인석에 설 가능성도 있다. 그간 재판부는 정부 측이 증인으로 신청한 마리안느 수녀를 접촉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마리안느 수녀는 현재 소록도에 머물고 있다. 60~70년대 소록도병원장으로 재직했던 조창원 전 원장의 증언을 듣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조 전 원장은 소록도 환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실제 모델이다.

소록도가 한센인의 섬이 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16년부터다. 일제는 그해 5월 한센인 700여 명을 격리하기 위해 ‘소록도자혜의원’을 세웠다. 환자들은 불임시술과 낙태수술을 강요받았다. 강제수술은 해방 이후 중단됐다.

하지만 한국 정부 수립 이후엔 전염병 관리 명분으로 본인 동의하의 격리 및 수술이 계속됐다. 소록도병원에는 90년대 초반까지 단종수술을 한 기록이 남아 있다. 낙태수술의 강제성 여부를 두고는 피해자와 정부 입장이 엇갈린다.

정부 측은 “감염 병동 내에서 일부 출산 억제 규정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국가가 낙태를 종용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이다. 하급심 판례는 “80년대까지 사실상 강요된 형태의 낙태수술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센병 환자 격리에 대한 법적 근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전염병예방법’이 개정된 2006년부터다. 국무총리실 산하 진상규명위원회는 2013년 최종 6462명을 한센병 피해자로 인정했다. 현재 피해자 540명이 5건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광주지법 순천지원이 2014년 19명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이 사건은 현재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나머지 4건은 서울고법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하급심 배상액은 대체로 3000만~4000만원 선이다.

2013년 소송을 낸 엄씨 등도 지난해 1심(서울중앙지법)에서 1인당 3000만~4000만원씩 총 53억10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인에 대해 합리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않고 사회 편견에 편승해 전면적인 출산금지 정책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이로써 피해자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법의 소록도 특별기일을 놓고 한센인들 사이에선 우려와 희망이 엇갈렸다. 지재운(68) 한센인총연합회 광주전남지부장은 “한센인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은 국가의 당연한 책임이다. 법원의 방문도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반겼다. 반면 서울고법에 재판이 계류 중인 강선봉(77)씨는 “정부가 대법원에까지 상고한 사례가 있는 터에 이번 현장 방문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한센인 국가배상 청구 소송 일지

● 1916년 5월 일제, 한센인 700여 명 소록도에 강제격리. 국립소록자혜의원(소록도병원) 설립

● 1948~90년대 국립소록도병원서 정관수술 등 시행 기록 발견

● 2007년 10월 ‘한센인 피해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지원법’ 제정

● 2009년 3월~2013년 7월 국무총리실 산하 진상규명위, 6462명 피해자 인정

● 2011년 10월 강모씨 등 피해자 203명 서울중앙지법에 첫 국가배상 청구 소송 제기. 피해자 540명이 소송 5건 진행 중

● 2014년 4월 광주지법 순천지원, 피해자 19명에게 총 6억7000만원 첫 국가 배상 판결 (정부 상고로 대법원 계류)

● 2016년 5월 서울고법, 국립소록도병원 첫 현장검증 결정

이유정·김준희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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