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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의 에코 사이언스] 가습기 살균제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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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최근까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만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가슴을 치는 그들의 사연을 들을 때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돌이켜보면 나 자신에게 아쉬운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4년 환경분야 취재를 시작했지만 그해 살균제가 등장한 줄은 몰랐다. 2003년 아내가 살균제라는 게 있다는 얘기를 꺼냈지만 그때도 “됐네요”라고만 하고 그냥 넘겼다. 기자가 되기 전 미생물학을 10년씩 공부했지만 더 알아보려는 생각조차 못했다.

올 들어 검찰 수사로 사건이 부각돼서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진작했어야 할 일을 적어도 5년이나 미뤘던 셈이다. 미국 환경청(EPA)의 가습기 사용법 매뉴얼을 인터넷에서 찾은 것도 얼마 전이다. 91년 만들어진 이 매뉴얼에는 “세정제·살균제 사용 후에는 가습기를 수돗물로 여러 차례 헹군 다음 작동해야 한다” “가습기 사용 도중 호흡기 질환이 나타나면 가습기 사용을 중단하고 진료를 받으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초음파식 가습기는 물속 오염물질까지 공기 중에 날려보낸다는 설명도 있었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게 농약 묻은 사과를 그냥 먹는 것과 다름없음도 알게 됐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 하는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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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환경부는 뭘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동안 환경부 관계자들은 “과거 법이 미비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화학물질의 독성을 어떻게 미리 다 파악할 수 있느냐”고 변명해 왔다. EPA가 구체적인 독성과 무관하게 세정제·살균제를 물탱크에 섞어 쓰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가습기 제조 회사도 가습기의 작동 원리를 감안했다면 소비자들이 살균제를 섞어 쓰는 것을 막아야 했지만 오히려 가습기에 살균제를 끼워 주기도 했다. 가습기를 홍보하던 사람 중에는 2007년 에 살균제가 위험하다며 인터넷에 댓글을 단 사람도 있다.

6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약 허가 신청서를 평가하던 프랜시스 올덤 켈시 박사는 윗사람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탈리도마이드’란 약품을 깐깐하게 심사했다. 덕분에 각국에서 모두 1만 명의 탈리도마이드 기형아가 태어났지만 미국에서는 17명에 그쳤다. 그가 ‘20세기 미국의 여성 영웅’으로 불리는 이유다.

살균제에 관한 한 켈시 박사 같은 사람이 한국엔 한 명도 없었다. 나 같은 기자나 공무원·전문가 등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재앙을 막지 못했다. 그게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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