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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믿기 어려운 정부의 조선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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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기자들 사이에는 언론보도도 누가 발표한 것인지 유심히 살펴야 헛다리를 짚지 않는다는 영업비밀이 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금융위원회와 산업·수출입은행의 발표 기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기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과거의 구조조정 정석은 ‘신속한 옥석 가리기→책임 규명→구제금융 재원 마련’의 수순이었다. 이번에는 거꾸로다.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재원 논란부터 불거져 뒤죽박죽이 됐다. 그 배경에는 정부와 국책은행들의 물타기 의도가 어른거린다. 청와대도 옥석 가리기와 책임규명을 피해 가려는 눈치다.

진실을 알려면 돈 흐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중공업은 13조원의 사내유보금에다 현대오일뱅크 지분만 처분해도 5조원 이상을 확보한다. 영업이익도 흑자로 돌아섰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꺼달라”고 큰소리치는 배경이다. 삼성중공업도 “우리는 통원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중환자실에 드러누운 뇌사상태의 대우조선해양과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정부와 채권은행단도 “돈 많은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성의를 보여 달라”는 수준에서 압박하고 있다. 두 회사는 부채비율 등 재무구조가 안정적이고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플러스다.

현재 조선산업 위기는 정확히 말하면 대우조선의 위기다. 부채비율만 7300%이고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도 마이너스다. 배를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현실이다. 대우조선은 1998년 이후 세 차례나 7조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받았다. 지금 매우 해괴한 대목은 진보 쪽과 관변 학자들이 똑같이 대우조선에 우호적인 현상이다. “조선 3사 체제를 유지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친(親) 노조 성향의 진보학자들이야 항상 구조조정엔 결사반대였다. 그런데 왜 관변 이코노미스트까지 “일본의 조선 구조조정 실패를 반복하면 안 된다”며 핏대를 세우는 것일까.

정부와 국책은행은 대우조선 구조조정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과거 구조조정은 당국이 민간기업들의 실패를 수술하는 구도였다. 이번 대우조선은 최대주주가 국책은행이고 정부가 경영 실패의 당사자다. 옥석 가리기는커녕 물귀신 작전으로 물타기에 팔을 걷어붙이는 이유다. 정부는 노동자 폭동이 겁나고, 국책은행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는 게 두렵고, 대우조선 노조는 “왜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느냐”며 배짱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책은행으로선 현대·삼성중공업을 함께 물고 들어가야 대우조선 사태를 희석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90년대 일본의 조선 구조조정이 과연 실패였을까? 당시 도쿄 특파원이던 필자가 목격한 현실은 정반대다. 일본 조선산업은 플라자 합의로 엔화 환율이 50%나 폭락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조선업은 환율에 민감하고, 세계 시장의 80%가 단순표준인 살물선(벌크화물선)·유조선·컨테이너 선박이어서 진입장벽이 낮다. 일본 입장에선 한국의 젊은 조선 숙련공(평균 35세)도 공포의 대상이었다(일본은 평균 46세). 일본 조선업계가 그때 엄청난 다이어트를 안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외환위기 이후 1998~2010년 엔-원 환율이 1대 12~15원이었을 때 한국 조선산업에 밀려 쑥대밭이 됐을 것이다. ‘잃어버린 20년’이 아니라 아예 멸종됐을지 모른다.

제대로 된 구조조정은 썩은 것을 과감히 도려내는 외과수술이다. 그래야 한정된 사회 자원을 신산업으로 돌려 새살을 돋게 하고 일자리를 만든다. 미국의 금융(80년대)-IT(90년대)-바이오·인공지능(현재) 등도 불황을 먹고 자라 왔다. 지금 우리 사회도 안 속으려면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정부와 국책은행이 진짜 구조조정을 하는 것일까? 혹 공적자금으로 3~4년 버텨보고, 그래도 안 되면 차기 정부에 부담을 떠넘기려는 의도는 아닐까? 세계 조선시황의 기적적인 회복보다 오히려 대우조선이 STX조선처럼 공적자금만 잡아먹고 법정관리로 갈지 모른다. 국민 혈세로 외국 선주들과 고임금 귀족노조만 배불리는 꼴이다. 배임이 있다면, 이런 게 우리 사회에 대한 진짜 배임이 아닐까 싶다.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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