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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넘침은 모자람과 똑같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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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고등학생인 아들은 최근 생활지도 선생님이 교복에 대한 규칙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한다고 매일 투덜거린다. 하얀 교복셔츠 안에 색깔 있는 반팔티를 입으면 벌점을 받는다. 점심 먹으러 급식실에 갈 때도 체육교복이 아닌 정식 교복을 입고 넥타이나 재킷을 꼭 착용해야 한다. 학생으로서 반듯하게 행동하고, 학교의 명예를 중시하고, 규율을 따르는 교육을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활동량이 엄청나고 매일 크는 청소년의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교복은 하루 종일 입고 있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체육시간 직후에 그 교복을 다시 입는 것은 거의 고문에 가깝다는 불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5층 교실에서 지하 급식실로 이미 내려온 학생에게 교복 때문에 다시 5층 교실에 다녀오라는 교사의 지시는 지나치다는 외침에도 100% 동의한다. 그래도 아들을 구슬려 본다. 그 방법은 지나쳐도 선생님이 좋은 취지에서 그러신다고. 하지만 솔직히 의문이 든다. 과연 그 방법밖에 없을까?

때로는 지나치거나 방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빤히 알면서도 밀어붙일 때가 있다. 그 취지나 목적이 훌륭하다는 이유에서다. 세칭 김영란법이 그렇다. 부패가 만연한 불공정사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대한민국을 공정투명사회로 만들겠다는 숭고한 취지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실제 그 법을 둘러싼 논의에서 부패방지라는 취지에 반대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못 봤다(최소한 겉으로는). 동시에 그 법에 위헌적 요소가 있으며 지나친 측면이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공무원도 아닌 언론인이나 사립학교 교원의 직무와 상관없는 개인적인 식사, 경조사, 친교활동, 사회활동까지 제한한다는 이유에서다. 그 법 지지자 중에 일부도 이런 문제점 지적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론은 항상 ‘그래도 우선 해보자,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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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을 둘러싼 이런 한국 사회의 논란은 집단사고 현상을 닮았다. 흔히 우리는 혼자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서 결정하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이런 집단의사결정이 훨씬 바보 같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 조건에는 어떤 숭고하고 의미 있는 목적을 가지고, 스스로가 윤리적으로나 지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라는 역설적 상황이 포함된다. 집단응집성까지 강하다면 금상첨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 결과다. 당시 미국의 코앞에 소련의 미사일을 배치하려는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에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고 결코 그냥 둘 수 없었다. 결국 카스트로 정부 제거를 위해 쿠바를 침공하지만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왜? 침략작전이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미국인들에게는 악의 축인 카스트로 정부를 제거한다는, 너무나도 긴급하고 당연한 과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권선징악이 당연하니 스스로 실패해서도 안 되는, 실패할 리도 없는 전쟁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가능한 모든 상황을 세심히 고려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군가 작전에 대한 반대의견을 얘기하려고 하면 간첩 취급을 당했다. ‘카스트로 편이냐’ ‘그럼 카스트로를 그냥 두자고?’ 등의 의심과 공격을 가했다. 그러니 속으로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참모들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결국 말도 안 되는 작전에 동원된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김영란법을 반대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간첩이 된다. 마치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를 그냥 두자는, 아니 그걸 계속 즐기고 싶어 하는 부패한 기득권의 저항이 되는 것이다. 현재 김영란법을 반대하는 주요 논리는 그런 의심을 부추긴다.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니 하지 말거나 완화하자는 주장을 한다. 언제까지 먹고살기 위해서 부정부패를 감수하자는 얘기를 할 건가. 이제는 그런 결핍의 논리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오히려 이 법이 부분적으로는 정의롭지 못하고 부정부패 척결에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논의가 맞다. 부정부패 척결만큼이나 ‘직무와 관련 없는’ 개인의 사적 활동의 자유와 권리도 사회적 정의 실현에서 중요한 덕목이다. 자기는 언론인·교원이 아니라고 그들의 권리는 무시돼도 된다는 논리는 결코 정의롭지 않다. 정작 권력형 비리에 항상 등장하는 정치인은 다 빠져나가고, 하청업체에 갑질과 청탁으로 문제되는 대기업 직원들은 왜 모두 제외되었나?

주변을 보면 재미있게도 학교에서의 지나친 규제와 처벌을 반대하는 성향의 사람들이 오히려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선의의 피해자가 있어도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바른 교육보다 부패척결이 더 중요해서 그런 걸까? 이 글은 부정부패를 그냥 두자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어차피 뭐 하나 갖다 주는 사람 없는 월급쟁이 인문학자가 더 정의롭고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하자는 제안이다. 과한 것은 모자란 것만큼이나 나쁘기 때문이다.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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