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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수조원대 부실 눈 감고…성과급 잔치 열어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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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산업은행 9435만원, 수출입은행 9242만원’.

조선·해운 부실 책임론에 휩싸인 두 은행 직원의 평균 연봉이다. 314개 공공기관 중 박사급 인력이 많은 연구기관을 빼면 전체 연봉순위 3~4위다. 부실이 쌓이는데도 매년 연봉을 늘린 방만경영의 결과다. 정부가 두 은행의 자본확충 전제조건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내건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간 두 은행의 연봉을 끌어올린 주체는 다름 아닌 정부다. 금융위원회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산업은행에 2년 연속(2013~2014년) A등급을 줬다. 총 6등급 중 S등급에 이어 둘째로 높은 등급으로, 은행 직원은 기본연봉의 90%(기관장 100%)를 성과급으로 받았다.

금융권에선 이런 평가 결과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산은은 2013년 STX조선해양에 물려 1조4473억원의 적자(당기순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그 걸로도 모자라 STX조선해양에 4조5000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는 내용의 자율협약을 맺었다. 결국 STX조선은 자율협약 체제 3년 만인 이달 27일 법정관리를 신청해 회생과 청산의 기로에 놓였다. 부실기업을 지원하느라 혈세 4조5000억원을 날린 국책은행에 정부가 성과급 잔치를 열어준 격이 됐다.

수출입은행도 마찬가지다. 2014년은 수은 전·현직 임직원이 3조원대 모뉴엘 대출사기 사건에 엮여 줄줄이 처벌을 받던 때다. 평가결과 발표 전인 지난해 상반기엔 경남기업·성동조선 대출 부실까지 겹쳤다. 그런데도 수은은 경영평가에서 2013년 A등급, 2014년 B등급(직원 기준 성과급 75%)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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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식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온 이유는 산은·수은의 감독 체계에 구멍이 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애매한 경영평가 방식이 문제다. 산은·수은은 다른 공공기관(공기업·준정부기관)보다 평가 강도가 느슨한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있다. 공기업·준정부기관은 주무부처와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평가를 받지만, 기타공공기관은 주무부처의 평가만 받으면 된다. 더구나 예산·인사·이사회 운영 같은 민감한 항목도 평가받을 필요가 없다. 경영공시 이행, 고객만족도 같은 항목을 평가받는다. 이렇다 보니 수조원대 부실이 터졌는데도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는 모순이 생겼다.

애초 두 은행을 기타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건 국책은행의 중요성을 감안해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되 최대한 자율성을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대했던 효과보다는 부작용이 더 커지는 형국이다. 허술한 경영평가로 두 은행 임직원이 성과급을 받는 사이 정부·정치권의 낙하산 인사와 ‘부실기업 떠넘기기’가 심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두 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해 책임을 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공기관에서 해제해 자율권을 주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부가 두 은행의 정체성을 명확히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은행에 대한 왜곡된 금융감독체계도 문제다. 산은법·수은법의 제한 규정 때문에 금융감독원이 산은·수은에 대한 검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산은법엔 금융위(산은), 수은법엔 기재부·금융위(수은)가 필요할 경우에만 금감원에 검사를 위탁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검사를 해도 제재 권한이 없다 보니 검사의 실효성이 크지 않다.

이런 실정이니 금감원은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대 부실이 드러났는데도 “금융위의 검사 위탁 요청이 없다”며 눈치만 보는 형국이다. 반면 기재부와 금융위는 “금감원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얼마든지 검사할 수 있다”며 금감원의 소극적인 태도를 탓한다. 기재부·금융위·금감원이 서로 책임을 미루기에 좋을 뿐 실효성은 떨어지는 구조다. 기재부와 금융위의 ‘제 식구 감싸기’를 막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구조조정의 속도를 끌어올리려면 금융감독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체계 개편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감원에 직접 검사 권한을 부여하되 감독 실패시 책임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2의 STX조선·대우조선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게 바로 산은·수은이 ‘부실기업 하치장’이라는 오명을 벗고 명실상부한 국책은행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돕는 길이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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