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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박 대통령 특사로 남미 다녀와…MB 주중대사 제안은 거절


임기 마치는 박병석 국회부의장

| 나와 당 다른 두 대통령이 파격 제의
현직 야당 의원이 특사로 간 건 처음


국회 의원회관 8층 화장실에서 마주쳤다. 박병석(64) 국회부의장은 거울을 들여다보다 필자를 보고 풀썩 웃었다. 급하게 대전에서 올라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그의 어릴 적 별명이 ‘대추방망이’다. ‘어려운 일에 잘 견뎌내고 빈틈이 없다’는 말이다. 아직 그대로다. 머리카락 한 올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기 싫어한다.

그는 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인터뷰를 한 25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퇴임 기자회견을 하며 19대 국회를 결산했다. 박 부의장은 대전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가 됐다. 부국장 겸 경제2부장을 할 때 후배들이 기사를 놓치는 건 용서해도 게으른 건 용납하지 않았다.
 

대전 역에서 5분 만에 후루룩 마치고 올라왔어요.”


| 1년에 KTX 300번 타고 지역구 오가
국민은 무서운 존재라는 걸 절감

 
기사 이미지

박병석 국회부의장은 25일 “이제까지 충청도 출신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에 충청인의 열망은 있지만 반기문 총장이 세계적 지도자로서 명예를 지키느냐, 나라 경영을 해보고 싶으냐 하는 것은 본인이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강정현 기자]


그는 1년에 KTX를 300번 탔다고 했다. 이날도 급하게 지역 행사에 다녀오느라 약속 시간을 15분 늦췄다.
 

총선을 마치니까 6.1㎏이 빠졌어요.”

박 부의장은 안 보이던 주름이 드러난다며 다시 웃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공천으로 대전 서구갑에서 내리 5선을 했다. 대통령·시장·구청장 선거에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지역이다. 그런 그에게도 이번 총선결과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민의 민심은 바다고, 정치인은 그 위에 떠 있는 배다’라는 생각을 절실히 했습니다. 바다는 정치라는 배를 순항시킬 수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구나, 국민은 무서운 존재라는 것 절감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서는 호남에서 참패한 것이 아쉽겠죠.
“우리가 아픈 부분입니다. 어떻게 호남 민심을 회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과제죠. 다만 영남에서 8석을 얻었고 충청에서도 14(새누리) 대 12(더민주)예요. 이 두 가지는 소득입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의 책임 공방에 대해 묻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국회의장 선거를 앞두고 주류인 친노(親盧·친노무현)를 자극하는 게 부담스러운 듯했다.

“지금 우리 내부에선 왜 졌는지 냉엄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누구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얘기하는 건 현재로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졌나요.
“지난 대선 때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졌다는 허탈감입니다. 이 체제로 다음에 정권 교체가 가능하냐는 문제가 있어요.”
3당 체제가 유지될까요.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양당 체제 폐해에 관한 국민의 선택이죠. 이제는 양보하고 타협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하지 못합니다.”
대선도 3당 체제로 치러질까요.
“지금은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의 3당 체제는 아닐 겁니다. 오히려 새로운 당의 출현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 여는 청와대, 야는 강경파가 협상 막아
이걸 극복 못하면 국민 신임 못 얻어

 
19대 국회가 무얼 잘못해 국민이 심판했다고 생각합니까.
“협상을 해보면 여당은 항상 청와대에 막히고, 야당은 강경파에 막혔어요. 그것을 극복하지 않는 한 국민 신임을 얻기 어렵습니다. 다행히 선거가 반성할 계기가 됐어요.”
국회 윤리위가 제 기능을 못하니까 애먼 의원들까지 싸잡아 욕먹지 않나요.
“그렇죠. 국회가 자정(自淨) 능력이 없어서 국민이 그렇게 봅니다. 외부의 혹독한 심판과 대가를 요구할 겁니다. 새 국회는 의장부터 그런 걸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새누리 친박과 더민주의 친노가 배타적이고 공격적으로 협치와 반대되는 행동을 해 국민이 싫어하는 것 아닐까요.
“난처한 질문인데… 친박·비박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노 문제는 실제보다 확대됐습니다. 친노의 가치, 추구하던 목표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다만 그것을 자기들만 독점하려 하면 패권주의죠.”
계파 내 강경 의원들의 무례한 언행이 계파 전체의 이미지로 고착된 것 아닌가요.
“가치가 신념으로 변했을 때 그런 식으로 표출되거든요. 이거 (국회의장) 투표 앞두고 난감한데….”
당내 중진들이 따끔하게 말하고 바로잡아 줘야 하는데 오히려 홍위병으로 이용해 사태를 악화시킨 것 아닌가요.
“중진들이 나설 땐 나섰어야 했는데 소홀했던 측면이 있죠.”
김영란법에서 국회의원들은 빠져나갔죠.
“노블레스 오블리주죠. 법 적용과 관계없이 국회의원은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저는 24시간 누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절제와 감시가 없으면 공직 생활을 못합니다.”
국회선진화법은 그대로 가나요.
“몸싸움을 막으려고 나온 것 아니겠어요. 일부 심의 기간이 너무 길지 않으냐는 문제가 있는데, 저는 큰 틀은 유지하되 운용상 일부는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상시청문회법을 반대하는데(27일 거부권이 행사됐다).
“20대 국회도 최악일 것이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는 건데, 20대 국회는 그러지 못합니다. 야당이 그걸 정치적 무기로 활용한다? 한두 번은 되겠지만 계속 하면 국민이 야당을 버립니다.”
상시청문회법 때문에 행정부가 마비될 수 있다는 말도 하는데 세종시가 문제 아닌가요.
“장기적으론 국회가 옮겨야 하고, 단기적으론 국회 분원을 설치해야 합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이 옮겨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웬만한 상임위는 가서 할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공무원에게 감시도 되고, 자극도 되죠.”

| 저출산 고령화 국가 존립 문제
범국가기구 만들어 지속 추진해야

 
20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꼭 해결해야 되는 과제가 두 가지입니다. 장기적으론 저출산 고령화. 저출산 고령화는 지도자의 확고한 신념 없이는 못 해요. 자기 임기 5년 동안 재정을 투입해 성과가 안 나오잖아요. 그래도 국가의 존립 문제이기 때문에 의지를 갖고 예산을 집어넣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는 범국가적 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다음은 경제 양극화입니다. 그중에서도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번 투표 성향에서도 드러났듯이 국민 갈등의 근원적 요소가 될 수 있어서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아선 안 됩니다. 또 하나는 통일에 대한 확고한 의도와 기반이 필요합니다.”

|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비전 위해
87년 체제 근본적인 개편 필요

 
장기 정책들은 정권마다 뒤집어 버리죠.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선 대통령 의지에 맞설 사람이 없어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비전을 만들기 위해선 87년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이 필요합니다.”
충청권에서 반기문 대망론이 뜨거운데.
“우선 충청 대통령 나오지 못한 데 대한 충청인의 열망이 있습니다. 반기문 총장은 세계적 지도자 중 한 명입니다. 본인의 명예를 지키느냐, 나라 경영을 해보고 싶으냐 하는 건 본인이 선택해야죠.”
지역에서 반기문 총장과 손을 잡으라는 요구가 없습니까.
“저는 16대부터 선거를 치렀습니다. 자민련과 민주당에서 모두 와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대전은 자민련이 석권할 때죠. 그런데도 2번(더민주)을 택한 건 저의 신념이었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반 총장이 나오면 어떻게 하자는 얘길 하겠죠. 그렇지만 제 신념에서 벗어날 생각은 없습니다.”
KTX를 1년에 300번 탔다는 건 중앙정치에는 소홀한 것 아닌가요.
“정당 지지도가 불리한 지역입니다. 그러니 300번 이상 기차를 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의정을 소홀히 했느냐. 그렇진 않고, 270개 시민단체가 주는 우수국감의원상을 13번 받았습니다. 가끔은 기차를 하루에 네 번도 탔습니다. 차창에 달이 비치면 정치인으로서 보람은 있지만 인간 박병석은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 헌신이 없으면 공직 생활을 못합니다. 이번에 지역구에 중앙정치를 더 할 테니 양해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18대 국회가 88일 동안 등원을 못하고 있을 때 임태희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막후 협상을 벌여 완전히 타결하고 여야 영수회담까지 끌어냈다고 소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기재부 장관부터 경질하자는 당내 의견이 있었지만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며 지급보증동의안부터 처리하도록 관철한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다른 당 의원들로부터도 자신이 신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당이 다른 두 분의 대통령으로부터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는 청와대에서 주중대사 제안을 두 번이나 받았으나 거절했다고 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대통령 특사로 보내 다녀왔다고 했다. 현직 야당 의원이 대통령 특사로 나간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S BOX] 어릴 적 ‘대추방망이’ 별명 얻게 된 이유

‘정치를 하는 목표가 뭐냐’고 묻자 박 부의장은 “대통령이냐를 묻는 거냐”고 되물었다. 어릴 적 그의 꿈은 대통령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기에 대통령을 하겠다고 적어놓았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1953년부터 족보를 출판하는 회상사(回想社)를 운영했다. 한때 우리나라 족보의 90% 이상을 여기서 만들었다.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전국의 유명한 문중 대표들이 찾아와 자고 갔다. 그분들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밤중에 갑자기 저를 세워놓고 ‘글 잘하는 아들보다 말 잘하는 아들이 좋다’고 하시며 웅변을 시키곤 하셨어요.”

부친은 “창과 방패는 똑같은 무기지만 창은 사람을 죽이고 방패는 사람을 살린다. 불가피하게 무기 장사를 하게 되면 창보다는 방패 장사를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상대방을 공격하는 일은 피한다.

그의 별명이 ‘대추방망이’가 된 경위는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호출했다. 박 부의장이 입을 앙 다물고 선생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단다. 어머니가 “선생님 눈을 꼭 쳐다봐야 한다”고 말한 때문이다.

현재 회상사를 맡고 있는 그의 형 박병호 대표도 시의원과 민선 구청장을 지냈다. 하지만 형은 새누리당 소속이다. 성향이 달라 당은 달리했지만 박 부의장의 선거를 부인 다음으로 많이 도와줄 정도로 사이가 좋다고 한다.

부인 한명희씨는 대전고 학생회장 시절 만났다. 1년에 100번의 데이트를 하고 100통의 편지를 보내며 8년을 사귀었다.

글=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최선욱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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