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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뻔한 신파인데 왜 자꾸 눈물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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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예술사,
신파성으로 읽다

‘장한몽’에서 ‘별들의 고향’ 까지
20세기 대중문화 관통한 키워드
관찰자의 시점으로 명쾌하게 분석

이영미 지음, 푸른역사
680쪽, 3만8000원

1970년대 청년문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영화 ‘별들의 고향’은 설정만 보면 꽤 신파적이다. 특히 여주인공 경아가 살아온 이력이 그렇다. 무책임한 애인 때문에 낙태를 경험한 경아는 부유한 홀아비와 결혼했다가 그같은 과거가 드러나 이혼당하고 현재 호스티스로 전전하는 처지다. 결말에서도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당대의 관객은 이 영화를 낡은 신파가 아니라 새로운 감수성의 젊은 영화로 받아들였다. 이 책의 저자인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그 이유를 어린애처럼 명랑하고 자기표현에 솔직한 경아의 면모에서부터 찾는다. 유사한 상황에서 자기연민과 자학에 빠져드는 신파극의 전형적 주인공과는 분명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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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동명의 신파극 등을 스크린에 옮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36)와 ‘장한몽’(69), 그리고 속편이 줄줄이 이어진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68). [사진 푸른역사·중앙포토]


이쯤에서 짐작하듯, 저자의 관심은 한국대중문화에 신파성이 미친 일방적 영향이 아니다. 50년대 여성의 성적 욕망을 긍정한 정비석 등의 대중소설, 60~70년대 포크송과 청춘영화, 신파적 화풀이 대신 복수를 꿈꾸는 80~90년대 만화와 TV드라마 등 시대별로 다른 장르에 초점 맞춰 신파성에서 벗어난 시도를 함께 조명한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건 신파가 20세기초 일본에서 전파된 신파극과 그 특징인 과도한 비극성에 국한된 게 아니라 20세기 한국대중문화 전체를 돌아보는 요긴한 키워드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장한몽’, ‘불여귀’, ‘쌍옥루’ 같은 초기 신파 대표작의 원형 분석부터 시작해 신파의 특징을 학술적으로 구축한다. 그에 따르면 신파는 영웅이 아니라 서민적 욕망을 지닌 약자가 주인공이란 점에서 서구 멜로 드라마와 통하지만, 그와 달리 주인공에게 죄의식과 피해의식이라는 언뜻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런 혼재된 감정이 나오는 건 주인공이 외부 세계의 힘에 스스로 굴복·순응하거나, 저항도 못하고 패배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예컨대 ‘장한몽’의 심순애는 김중배와 혼담이 오가는 사이 적극적인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는다. 정작 결혼 뒤에는 잠자리를 거부하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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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맨발의 청춘’(64), ‘별들의 고향’(74), ‘바보들의 행진’(75) 같은 청춘영화는 이와는 다른 감성과 연출을 선보였다. [사진 푸른역사·중앙포토]


달리 말하면 신파의 비극은 ‘죄 아닌 죄’에서 비롯되곤 한다. 초기 신파의 여주인공은 불치병에 걸렸다거나(‘불여귀’), 상대가 유부남인줄 미처 몰랐다거나(‘쌍옥루’)하는 것이 죄가 되어 결혼이 파탄난다. 특히 후자의 장치는 60년대말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에도 등장해 엄청난 흥행성공을 불렀다. 물론 전개는 달랐다. ‘쌍옥루’의 여주인공이 본처의 존재를 알고 미쳐버린 것과 달리 ‘미워도 다시 한번’은 아이를 본처에게 맡겼다가 결국 되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절절한 모성애를 부각시켰다.

학술서의 틀을 갖춘 이 책이 여느 독자에게도 흥미를 돋운다면, 그 이유는 오랜 대중문화연구자로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개별 작품에 대한 유려한 분석에서 찾아야 할 듯 싶다. 특히 60년대 여대생 작가 박계형의 소설 ‘젊음이 밤을 지날 때’가 던진 파장, 80년대 김수현 드라마의 말 많은 인물들이 지닌 함의 등을 짚어내는 대목은 단연 매력적이다. 죄의식과 피해의식이 공존하는 신파적 특징을 80년대 운동권 문화에서 찾아내는 대목도 흥미롭다.
 
[S BOX] 뒷골목 건달과 여대생의 사랑…신파서 벗어난 60년대 청춘 영화

돈 많고 신분 높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여자가 신분상승을 이루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요즘 TV에도 흔하디 흔하다. 신애라·차인표 주연의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그 효시로 꼽힌다. 한데 60년대 청춘영화는 반대였다. ‘맨발의 청춘’처럼 뒷골목 건달 남자(신성일)와 여대생(엄앵란)이 사랑에 빠지는 설정이 다수였다. 당시 여대생은 “부잣집 딸을 의미하는 기호”로, 요즘 TV의 대기업 후계자 못지 않게 자주 등장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 무렵 신데렐라 스토리가 부상한 배경을 “자본주의적 근대사회에서 돈을 벌고 계층상승하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죄의식이 사라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분석한다. 그럼 왜 ‘신데렐라 맨’, 즉 남자였을까. 당시만 해도 부잣집에 시집가는 설정은 해피엔딩보다는 30년대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같은 며느리 고생담의 시작이 되기 십상이었단 설명이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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