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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일요일 저녁 일곱 시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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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영문학

지난 5월 8일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변월룡(1916~90) 특별전을 보았다.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겨우 들어갔는데도 전시실은 관람객으로 넘쳐났다. 고려인 출신 러시아 화가인 그의 그림엔 식민·전쟁·분단·혁명·냉전·디아스포라의 세월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일요일 외출은 분단과 자본과 가난의 그늘을 지나왔다
소비·풍요 환상의 뒤에 분단·가난의 현실 숨겨져 있어


소위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델을 북한 미술계에 전한 것으로도 유명한 그의 그림 중 특별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1953년 9월의 판문점 휴전회담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정전협정이 발표된 지 두어 달 후 판문점 회담장의 모습을 감정 개입 없이 사진처럼 재현한 작품이었다. 푸르고 흰 보가 덮여 있는 테이블과 기능만 남은 앙상한 의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을 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 저 회담장에서, 지금까지도 분단체제 극복의 성과를 내지 못한 무수한 회의가 무려 63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온 것이다.

선뜻 구입하기에 만만치 않은 가격의 화집은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도심의 오래된 왕궁에,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수많은 사람이 일요일 저녁을 즐기기 위해 ‘사회주의’를 지향한 화가의 그림을 보러 몰려들다니, 어찌 보면 뜨악한(?) 모습이었다. 정치판은 여전히 전근대적 색깔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문화판은 ‘그따위 것’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물론 변월룡의 그림은 (사회주의적 슬로건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객관 현실’의 총체적 재현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말이다.

변월룡 전을 보고 나와 집으로 가기 위해 숭례문 쪽으로 걸어갔다. 덕수궁을 나오자마자 현대사의 다양한 갈등과 사건들이 집회의 형태로 계속 기록되고 있는 서울광장이 왼쪽으로 보였다. (무엇인지 모를) 행사를 위한 흰 천막들이 여기저기 세워져 있을 뿐 오늘은 구호를 외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경찰버스도 보이지 않았다. P호텔은 광장과 비스듬히 덕수궁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서울 시청 뒤로 거대한 옥외광고판들과 굴지의 언론사 빌딩들이 거인들처럼 서 있었다.

숭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금융, 재벌회사 사옥 등 자본의 위풍당당함을 자랑하는 빌딩들이 줄지어 있다. 이 건물들은 현대판 신전(神殿) 같다. 자본이 신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머리 조아려 그곳에 들고 싶어 하는가. 자본은 공간을 낭비함으로써 위력을 자랑한다. 사옥 앞의 넓은 입구는 도심의 금싸라기 땅값을 생각하면 거의 광장 같았고, 대리석으로 치장한 그 입구의 모퉁이에서 한 취객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일요일 저녁 저 사람은 무슨 일로 저기서, 저렇게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남대문 지하상가를 건널 때 문득 시계를 보니 저녁 일곱 시였다. 아직 날도 채 어두워지기 전인데 지하도는 벌써 노숙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종이상자를 펴고 지하도 바닥 여기저기에 진을 치고 있는 그들은 초여름 밤의 한기를 이기는 방법을 이미 체득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종이상자를 이리저리 엮어 무릎 높이 정도의 벽까지 사방에 세우니 그들의 방 아닌 방들은 마치 종이로 만든 작은 관(棺)들 같았다. ‘탈근대’ 노숙인답게 어떤 이는 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선으로 그에게 전해진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자본의 달디 단 꿈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를 목이 메도록 찾고 있는 어린 아들의 울음소리였을까. 마지막 부탁을 거절하는 친구의 냉담한 목소리였을까. 몇 해 전 말 달리며 전 세계를 두드렸던 ‘강남 스타일’이었을까.

일요일 저녁 나의 외출은 본의 아니게 분단과 자본과 가난의 그늘을 지나왔다. 이렇듯 분단·자본·가난의 문제는 의도와 무관하게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코드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촘촘히 규정하고 지배하는 그물망이다. 일상생활은 “환상과 진리가 교차하는 곳”(앙리 르페브르)이다. 소비·환락·풍요의 환상 뒤에 분단·자본·가난의 현실이 숨겨져 있다. 분단은 사상의 ‘대중적’ 성장을 제어하고, 자본은 부와 가난을 동시에 생산한다. 환상 앞에서의 무기력이 진리 앞에서의 동력으로 바뀌는 날은 언제 올까.

오민석 시인·단국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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