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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다이어리] 녹색아버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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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키즈팀장

5월 아침 햇살은 충분히 뜨거웠다. 노란 조끼를 입고 꽉 끼는 남색 모자를 쓰고 약간은 너덜너덜해진 깃발을 들고 수신호를 보내려니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초등 2학년인 큰아이 학교에서 올해부터 녹색어머니는 필수다. 지난해까진 학급당 5~6명 자원을 받았던 걸 모든 엄마가 참여하게 바꾼 것이다. 두세 번을 맡은 엄마들도 있었지만 나는 워킹맘이라고 배려를 받아 하루만 섰다.

초록 불이 켜지기도 전에 손주를 이끌고 횡단보도로 돌진하려는 할머니, 점멸등이 켜졌는데 목발을 짚고 황급히 건너는 아이, 당장 건너는 사람이 없다고 신호도 깃발도 무시하며 횡단보도를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적어도 등·하교 시간에는 참아줬으면 좋겠는데, 교통질서 참 안 지킨다는 걸 절감하며 예정된 30분이 후딱 지나갔다. 미약하나마 녹색어머니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 아이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학교에 갈 수 있기에 그간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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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어차피 늦은 출근길, 학교로 뛰어가 장비를 반납하고 헐떡거리며 둘째 유치원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달려갔다. 친정엄마와 함께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노라니 전업맘도 어린 자녀가 있다면 녹색봉사건 뭐건 쉽지 않겠다 싶었다. 지난해까지 ‘독박’을 쓴 녹색어머니들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비 오는 날, 더운 날, 추운 날의 처절한 경험담과 노하우가 한가득이다. 몇 명만 부담을 떠안기보다 모두가 분담하는 건 분명 좋은 방법 같다.

그런데 왜 ‘녹색어머니회’인가. ‘녹색부모회’라면 엄마·아빠가 1년에 하루씩만 나눠 봉사하면 될 텐데 말이다. 경기도 용인 포곡초등학교는 올해로 8년째 녹색아버지회가 운영되고 있다. 학교에서 요청한 적은 없으나 통학길이 위험해 몇몇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 전통으로 이어졌다. 포곡초 임규영 교사는 “격주 금요일마다 봉사하는 아버지를 보며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한다. 양성평등 관념도 생겨 교육적 효과가 크다. 아무래도 남자가 서 있을 때 주민들이 질서를 더 잘 지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출장 간 아내 대신 녹색아빠 됐다” “내가 굳이 하겠다고 했는데 역시 잘한 것 같다”는 개별적인 경험담도 적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 아이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아버지들의 자부심은 ‘어머니’ 사이즈라 꽉 끼는 조끼를 입고 깃발을 든 인증샷에서도 드러났다. 다른 것도 아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일이다. 더 많은 녹색아버지들이 당당하게 등장하길 바란다.

이경희 키즈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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