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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자 5인이 본 이재용 2년] 방향 뚜렷하게 잡았으니 길게 보고 밀고 나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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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방산 계열사 6개를 팔았다. 광고 회사도 매각 협상 중이다. 건설·외식 사업도 매각설이 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권을 잡은 지 불과 2년 사이에 삼성 그룹에 일어난 변화다. 사업구조만 정비하는 게 아니다. 최근엔 “삼성전자에 스타트업 문화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다. ‘관리의 삼성’에 자유롭고 신속한 조직 문화를 심겠다는 것이다.

사내외에 좀 더 구체적인 비전 공유할 필요... “파는 속도에 비해 사는 속도 느리다”

지난 2년 간 이 같은 변화를 지휘한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을 경영학자들은 어떻게 평가할까. 삼성, 또는 정보기술(IT) 산업에 정통한 경영학자 5명에게 물었다. 삼성식 경영을 이론으로 정리한 책 [삼성웨이]의 공동저자 송재용·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IT 경영을 전공한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 삼성 신경영 2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주제 발표를 맡았던 장세진 카이스트 교수, 삼성화재 사외이사를 두 차례 역임한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다. 사업구조 개편에 대해선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조직문화 개선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다. 각론으로 들어가선 주문사항이 쏟아졌다.

 
l 세계 1등으로 키울 사업만 … ‘옵티멀(optimal) 경영’
학자들의 평가를 바탕으로 이재용식 경영을 묘사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뽑았다. ‘최적의 상태’를 뜻하는 옵티멀(Optimal)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철학을 정리하는 키워드가 ‘마하 경영’이라면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은 ‘옵티멀 경영’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2002년 임직원들에게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부터 엔진·소재·부품까지 바꿔야 가능한 것처럼 초일류 기업이 되려면 체질과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경묵 교수는 “이 부회장의 최대 성과를 경영학적 용어로 설명하자면 사업 구조 최적화(optimization)”라며 “삼성이 세계적으로 키워갈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방향을 뚜렷하게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최적화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사석에서 밝힌 경영 철학과도 일치하는 키워드다. 이 부회장은 한 미국인 경영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계열사 매각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같이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를 판다고 얘기하지 않겠다. 각 회사에 최고의 주인을 찾아주려는 것이다(I would not say I’m selling the business. I would say I try to find the best owner for that business).” 풀어 쓰자면 이런 의미다. “삼성이 세계 1등으로 키울 수 없는 계열사라면 삼성이 최고의 주인이 아닌 것이다. 그 회사를 더 키울 수 있는 주인을 찾는 것이 해당 회사에도, 삼성에도 좋다.” 이 부회장은 실제로 매각된 계열사의 임직원에 대해서 “당장은 삼성의 우산 아래 있다는 데 안도감과 자긍심을 느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주인을 찾는 게 임직원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식 최적화의 속도가 왜 이리 빠를까. 학자들은 “이 부회장에게 당면한 경영 환경이 개편 작업을 머뭇거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규모의 경제를 앞세우면 무슨 사업을 시작해도 돈이 되던 고성장 시대엔 대기업 그룹의 ‘문어발식’ 경영이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와 달리 세계 1등만 살아남을 정도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저성장 시대에는 몸집을 줄여 선택과 집중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재용 교수는 “고도 성장기엔 다양하게 사업을 벌여 매출을 키우고 수익을 불리는 게 중요하지만 똑같은 전략이 지금은 통하지 않는다”며 “금전적인 투자는 물론 시간·에너지의 투자도 성장 가능성이 큰 사업에 몰아줘야 효과를 볼 수 있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산업 기반이 전혀 없던 1930년대에 회사를 일군 이병철 선대 회장이 ‘사업보국(事業報國)’을 핵심 이념으로 삼았던 것이나,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혁신을 주문했던 이건희 회장의 ‘마하 경영’ 철학이 모두 당시의 시대 정신을 반영했던 것처럼 이 부회장의 옵티멀 경영 역시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란 얘기다. 송재용 교수는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는 배경을 두고 “한국 경제가 장기 불황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있는 시점이란 게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주력 사업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고서는 저성장 시대에 글로벌 경쟁을 감당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대기업 그룹이 수직계열화를 통해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는 시대도 저물었다고 봤다. 송 교수는 “반도체처럼 핵심 부품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수직계열화가 아니라면 광고·시스템통합(SI)·건설 같은 기업을 모두 보유할 필요가 없다”며 “모든 그룹이 광고·건설·SI 기업을 보유하니 세계적 기업이 하나도 안 나온다”고 말했다.

 
l “현재 아닌 미래 보고 판다 … GE식 구조조정과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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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사업 구조 개편이 미 최대 회사인 제너럴일렉트릭(GE)을 떠올리게 한다는 해설도 많았다. 4월에 GE의 이노베이션 포럼에 참가한 이병태 교수는 “1등을 못하는 사업은 정리한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철학은 잭 웰치 전 GE 최고경영자가 늘 강조해오던 내용”이라며 “현재의 수익성보다 미래의 성장성을 보고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 잭 웰치의 주장이었다”고 말했다. GE는 2007년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던 플라스틱 사업부를 팔았고, 2009년엔 NBC유니버셜의 지분을 매각했다. 지난해엔 금융사업부를 모두 팔겠다고 발표했다.

수익을 내는 사업이어도 성장성이 더디거나 리스크가 크면 이를 정리하고, 더 성장성이 높을 것 같은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삼성이 매각한 화학 계열사들이 좋은 실적을 내는 것을 두고 “실패한 구조 개편”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 5명의 교수 전원이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장세진 교수는 삼성이 한화·롯데에 넘긴 회사들이 대부분 큰 폭의 흑자를 낸 데 대해 “흑자를 내는 사업은 다 들고 가야 한다는 생각은 틀렸다”며 “흑자를 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과 거리가 먼 사업을 정리하는 게 구조조정”이라고 설명했다. 적자 내는 사업은 누구나 사려 하지 않기 때문에 팔기 어려우니 적자를 내는 사업을 정리하는 게 구조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조조정을 통해 무엇을 얻는 걸까. 장 교수는 “신규 사업에 투자할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영자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 최고경영자들은 잘 안 되는 사업에 더 시간을 쓰게 마련인데 삼성의 경영진도 결국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장 교수는 “CEO들을 성장 가능성이 큰 바이오나 전자, 금융에 배치해 에너지를 쏟게 해야지, 장래성 없는 사업에 매달리게 하면 곤란하다”며 “결국 전략은 희소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용 부회장도 지인에게 “(우리의) 에너지는 제한돼 있다”며 효율적 자원 배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6~7년 전부터 “우리가 어떻게 한다 해도 화학에서 1등할 수는 없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선택과 집중’이 향후 삼성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확신을 가졌다는 얘기다.

 
l “사는 속도가 느리다 … 기업 인수로 새 영역 개척을”
구조조정이 ‘선택’의 과정이라면 신성장동력을 찾아 ‘집중’하는 것이 다음 과제다. 이 부회장은 그룹의 3대 발전 축을 전자·금융·바이오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들 분야에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비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몇몇 경영학자들은 “신생 기업 인수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묵 교수는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이 아직 이렇다 할 사업을 인수하지 못했다”며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의 글로벌 기업은 엄청난 속도로 인수·합병(M&A)을 하면서 신규 영역으로 뻗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구글은 10년 사이에 180여 개의 회사를 인수했는데 유투브나 안드로이드, 딥마인드 등 새 회사를 인수할 때마다 새 영역을 개척했다”며 “삼성이 초일류가 되려면 변신 속도가 더 빨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파는 속도가 아니라 사는 속도가 느리다”며 “아직도 제조업 마인드로 제품을 직접 만들어서 팔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플랫폼을 만들어 새 사업을 해야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종자)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용기를 팔고 의전을 없애는 등의 실용주의 행보는 모두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추진하는 ‘스타트업 컬처’ 도입이 삼성에서 가능하겠느냐는 의구심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이병태 교수는 해외 기업으로는 드물게 다양한 사업 분야를 보유했던 GE 역시 한국 대기업 그룹과 비슷한 관료주의·폐쇄주의에 시달렸다며 “경계없는 기업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 최대 숙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직 문화를 바꾸려면 장기적인 리더십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GE의 이사회는 최고경영진을 선임할 때 20년 안팎의 임기를 보장해 준다”며 “전략적인 관점에서 기업 문화와 포트폴리오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이런 장기적인 리더십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소비자가전 부문에서만 5500명의 직원을 감원하는 등 비용 절감 노력에 나선 것이 창조·혁신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창조적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겠다는 선언과 비용 절감 노력은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감원이 조직 문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감원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흔히 원가 절감을 하는데, 이 부회장이 선언한 창조와 혁신을 하려면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에 몰입하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며 “언제 잘릴지 모르는 이들이 일에 몰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가격 경쟁은 전형적인 패스트 팔로어식 전략이라는 것이다. 감원해서 마련한 돈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면 혁신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신 교수는 “그게 전형적인 제조업 시대의 사고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l “원대한 비전 공유하는 리더로 거듭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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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회장이 그룹 전체에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이 부회장 역시, 자신의 역할이 그룹의 큰 그림을 그리는 ‘선지자적 리더’ 임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그룹을 지휘하고 처음 출시된 갤럭시S6에 대해 ‘이재용폰’이라는 별명이 붙자 “이건 (제 역할이) 아니잖아요”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 주변 핵심 임원의 전언이다. “데일리 오퍼레이션(daily operation, 일상 업무)은 부사장·전무에게 맡기고 사장단은 3년 후, 5년 후 먹거리를 고민하라”고 강조했던 이건희 회장의 리더론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경영학자들의 분석이다.

송재용 교수는 특히 이 부회장이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 삼성이 1990년대 이후 어떻게 글로벌 일류로 치고 나갔는가. 이 회장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 이 회장은 회사도 잘 나오지 않았다. 대신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항상 고민했다. 일상적인 의사결정은 전문 경영인에게 상당 부분 위임했다. 삼성이 어떤 그룹보다 전문경영인 시스템이 잘 발달한 이유도, 이건희 회장이 자잘한 사업을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큰 틀의 방향만 설정하고 오너의 시각에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역량이나 사업이 무엇인지만 고민했다.”

송 교수는 최근 삼성의 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의 이재용 부회장의 전략적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을 만났을 때, 자신을 ‘사업 포트폴리오 매니저’라고 소개하더라”며 “자신은 단위 사업을 다 관여하지 않는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다만, 사회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크다고 우려했다. 이런 압력을 다 의식하면 단기 성과에 집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 교수는 “긴 호흡으로 봐야 하는데, 2년 지났다고 평가하는 것도 사실 이르다”며 “단기 성과에 집착하면 비용을 줄여 수익을 올리는데 치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R&D,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 역량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강화했던 것처럼 길게 봐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 부회장이 비전을 그룹 내외부와 공유하는 작업에 다소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의 구조조정이나 조직 문화 혁신 작업을 두고 “큰 방향은 맞지만 사내·외에 구체적으로 방향이 공유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다들 사후적으로 매각이나 조직 개편 등이 단행된 후 ‘이 방향 같다’고 짐작만 한다는 것이다. 흔히 불확실성 탓에 불안감이 조성된다. 잭 웰치 GE 회장이 그런 걸 조절했다. 명확한 비전의 정리와 공유. GE에 급진적인 변화가 있을 때, 잭 웰치 표현에 따르면 ‘입에서 냄새가 날 정도로’ 아침부터 밤까지 되풀이해서 그걸 말했다. 신 교수는 이건희 회장은 화두를 던지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유명했지만 이 부회장은 그때와는 소통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교수는 “당시는 지금처럼 경제 상황이 복잡하지 않아서 화두만으로도 서로 이해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좀 더 정교하고 세련되게 다듬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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