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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 STX서 다 손 뗀 뒤에도 정부·산은 "정상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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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 한때 세계 4위, 8위 조선회사였다. 그러나 이젠 법정관리로 가게 됐거나 조만간 갈 가능성이 큰 한계기업으로 전락했다. 두 회사 모두 주채권은행이 국책은행이다. 시중은행이 중도에 자율협약 채권단에서 탈퇴했다는 점도 빼닮았다. 시중은행엔 일찌감치 울린 위험 경고등이 국책은행과 금융 당국엔 작동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수출입은행은 구조조정의 기본조차 몰랐습니다. ” 2010~2011년 국민은행의 여신그룹 부행장이었던 L씨는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행은 2011년 9월 주채권은행인 수은이 성동조선에 자금 지원을 추진하자 채권단 탈퇴를 선언했다. 삼정KPMG의 실사보고서를 근거로 삼았다. 성동조선의 존속가치가 2200억원, 청산가치가 1조4700억원이란 내용이었다.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크면 회사 문을 닫는 게 이익이란 의미다.

L 전 부행장은 “살릴 수 있으니 도와달라고 해야 할 판에 청산가치가 더 크게 나온 보고서를 가지고 지원하라니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은은 딜로이트안진에 실사보고서를 다시 의뢰했다. 이번엔 존속가치(1조9200억원)가 청산가치(1조3200억원)보다 크게 나왔다. 연간 수주 물량에 대한 전망(삼정 31척, 안진 48척)이 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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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은과 금융 당국은 이를 근거로 국민은행에 채권단 복귀를 요구했다. L 전 부행장은 “퇴직하는 날(2011년 12월)까지도 금융감독원 고위 간부가 불러 압박하더라”고 전했다. 수은은 그해 12월 말 국민은행을 빼고 7300억원을 성동조선에 지원했다.

이후 채권단은 2013년 1조6300억원의 출자전환을, 지난해엔 72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추가 지원에 반대한 우리은행마저 지난해 10월 채권단에서 빠져 나왔다. 당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보수적으로 봐도 2019년엔 성동조선이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성동조선은 지난해 11월 이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STX조선의 법정관리 결정 과정에서도 금융 당국과 산업은행의 부실 감지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25일 “STX조선은 이대로 두면 이달 말 부도가 난다”며 자율협약을 중단하고 법정관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4월 26일 금융위원회는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 발표에서 STX조선에 대해 “정상화 방안을 재수립하고 충실히 이행 중”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불과 한 달 뒤 닥칠 STX조선의 부도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오판한 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산은은 지난해 12월 STX조선 채권단에 4000억원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인력·설비 감축을 통해 중소형 조선사로 탈바꿈하면 최소 1년간은 정상 운영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러나 시중은행(우리·KEB하나·신한)은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올해 1월 채권단을 탈퇴했다.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자금을 지원하면 신규 수주가 들어온다는 게 산은의 논리였는데, 우리가 보기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며 “하루라도 빨리 관계를 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은은 채권단에 남은 수출입·농협은행과 함께 4000억원을 투입했다. STX조선은 상반기 단 한 건의 신규 수주도 하지 못 했고 결국 법정관리 전환을 추진하게 됐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는 “한 달 전까지 괜찮다던 STX조선이 법정관리에 간 건 금융 당국과 국책은행이 서로 부실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이라며 “선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했다면 지금처럼 청산 위기에 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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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미 지난해 초부터 한국 조선업의 이상 징후를 경고했다. OECD는 지난해 1월 ‘한국 조선업과 관련 정부 정책 분석’ 보고서를 통해 “ 많은 조선사가 파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며 “사실상 조선사의 소유권과 감독권을 쥐고 있는 한국 정부도 위기에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4~2009년 한국 조선업계의 매출 대비 이익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지만 2012년엔 일본(7.4%)·중국(9.1%)보다 낮은 5.1%로 떨어졌다. 이익 대비 부채 규모는 2007년 150%에서 2012년 600%로 치솟았다. 보고서는 “정부가 몇몇 대형사에 안전망이 있다는 신호를 주면 모럴 해저드를 불러오거나 스스로의 혁신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한애란·이수기·이태경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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