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세상읽기] 정치의 위기, 경제의 위기

기사 이미지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세계 경제 침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전 세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011년부터 1만 달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래픽 참조> 이른바 중진국 함정이다. 경제 발전 초기에는 고속성장하던 경제가 1만 달러 근처에 도달하면 성장이 정체된다는 의미다. 세계 경제가 중진국 함정에 빠졌기 때문에 앞으로도 상당 기간 성장이 정체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그랬다. 1인당 GDP가 1만 달러가 된 게 1995년. 이전 7년간 평균 성장률은 7.1%였지만 이후 7년 평균 성장률은 3.6%에 그쳤다(배리 아이컨그린 외, 『기적에서 성숙으로』, 2013년).
 
기사 이미지

위기설이 난무하지만 사실 우리 경제, 그리 비관할 정도는 아니다. 올해 2%대 성장하면 2012년부터 5년 연속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저성장인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건 맞다. 세계 경제 부진 속에서 우리보다 나쁜 나라가 더 많다. 지난해 우리는 겨우(?) 2.6% 성장에 그쳤다. 그런데도 소득 2만 달러를 넘는 나라 중에선 우리가 세 번째였다. 수출 역시 지난해 8%나 줄었지만 세계 순위는 6위로 상승했다.

그런데도 위기설이 설득력 있는 건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 성장을 고(高)성장이라고 부러워할 날이 곧 올 것 같아서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일본처럼 제로 성장이나 마이너스 성장이 되면 안 된다는 절박감에서다. 우리는 일본처럼 벌어 놓은 자산도 별로 없다. 일본보다 훨씬 힘든 ‘잃어버린 세월’이 될 거다. 그럼에도 일본화 우려는 근거 있다. 일본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이다. 인구절벽은 정확히 20여 년 간격을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국가 운영 시스템도 일본을 본떴다. ‘한국주식회사’는 ‘일본주식회사’에서 나왔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이 위기 상황에서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다. 재정과 통화 등 단기 부양책은 물론이고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 노동·금융·교육개혁 등 중장기적 구조개혁도 시행했다. 그런데도 일본화를 막지 못했던 건 구조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노벨 경제학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거론됐던 일본 경제학자 모리시마 미치오에 따르면 정치의 몰락 때문이다. 경제의 성공 여부는 정치에 달려 있는데 90년대의 경제 위기는 경제적인 면보다는 정치의 몰락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의 정치는 삼류, 경제는 일류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99년). 장달중 서울대 교수도 같은 분석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 리더십의 부재 탓이 크다고 한다(『일본은 회생하는가?』, 2003년). 국가 시스템을 개혁해야 했지만 이를 주도할 정치적 리더십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90년대의 일본은 정치 위기의 시대였다. 93년 자민당 55년 체제가 무너지면서 연립정권이 시작됐지만 정권에는 관료 집단을 통제할 리더십이 없었고, 정치권은 정책보다 권력게임에만 관심 있었다. 구조개혁이 방향과 일관성을 상실하면서 결국 실종된 까닭이다.
 
기사 이미지

이런 구조개혁이 중요한 건 생산성 때문이다. 생산성은 장차 경제 성장을 담보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GDP는 크게 노동과 자본, 생산성으로 구성된다. 이 중 노동은 기대할 게 별로 없다.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년 후부터는 노동이 오히려 성장을 저해한다고 전망한다. 자본에 기대할 것도 별로 없다. 5년 후부터 자본의 성장 기여도 역시 급락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건 생산성뿐이다. 게다가 생산성은 개선 여지가 많다.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일본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한참 처진다. <그래픽 참조> 구조개혁에 성공한다면 앞으로도 2~3% 성장은 너끈히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화 우려도 사그라든다.
 
기사 이미지

[일러스트=김회룡]


구조개혁의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은 일본에서 보듯이 강력한 정치 리더십이다. 개혁은 필연적으로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개혁의 피해자인 기득권층의 반발은 특히 거세다. 이를 딛고 개혁에 성공하려면 국민에게 개혁의 당위성을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적절한 시기에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일본은 이런 리더십이 부족했기에 구조개혁에 실패했다.

그럼 우리는? 불행히도 기업 구조조정의 경우 책임지고 주도할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구조조정의 당사자인 노조의 마음을 사는 데 더 열심이다. 이렇게 되면 구조조정은, 단언컨대 실패한다. 일본이 2000년대 초반 보였던 행태라서다. 겉으론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 실제로는 반대하던 이중적 행태 말이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인력과 자원을 신수종산업으로 옮기는 구조조정을 정말 우리 정치권에 기대할 수 있을까.

구조조정이 안 되면 다른 개혁이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규제·노동·연금·교육개혁은 더 어려운 숙제라서다. 자, 이제 결론이다. 지금 이대로는 구조개혁과 생산성 제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화는 불가피하다. 그래도 개혁하겠다면? 그래도 기댈 곳은 정치밖에 없다. 정치에 좌절하면서도 “비전을 가진 정치인들이 나타나 주도권을 장악하기”를 열망한 모리시마 미치오의 심정이 이해되는 까닭이다. 말을 빙빙 돌려 그렇지, 정치가 제 역할을 하면 저(低)성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